【여수(전남)=최갑천기자】30년이 넘은 합성고무공장이라는 편견은 공장 입구에 들어선 순간 사라졌다. 매케한 냄새와 지저분한 설비들이 어지럽게 눈앞에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뜻밖이었다. 13만㎡ 면적의 공장은 매년 한 차례씩 진행하는 '대정비'를 마치고 재가동에 들어간 직후여서인지 모든 설비와 파이브 라인이 조용하지만 생동감이 느껴졌다.
지난 18일 찾은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내 금호석유화학 여수 제1고무공장(여수 1공장)은 침체의 늪에 빠진 석유화학 시장 상황에서도 세계 최대 합성고무 생산기지로서 '제2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떡방앗간'같은 고무공장
1979년 가동에 들어간 금호석화 여수 1공장 입구에는 그룹의 중장기 경영목표인 '비전 2020'을 담은 대형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공장은 지난 달 초부터 한 달간 진행한 대정비 작업이 끝난 직후였다. 길게는 35년된 생산설비도 있었지만 노후된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형 생산기술팀 차장은 "고무 원료를 사용하는 설비이다보니 일년에 한 번씩 대규모 유지보수기간이 필요하다"며 "대정비 기간에는 모든 생산직원들이 각각의 설비에 배치돼 외부 청소작업을 철저하게 점검한다"고 말했다.
합성고무 공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됐다. 우선, 인근 여천NCC와 해외에서 공급받은 기초 원료인 혼합C4에 용제를 첨가해 고열의 스팀을 가하면 합성고무 원료인 부타디엔(BD)이 추출되는 BD 공정이다. 스팀은 2.5㎞ 떨어진 자체 열병합 1발전소에서 파이프 라인을 통해 공급받는다. 추출한 BD는 배관을 통해 대형 원형탱크에 저장된 뒤 생산공장으로 옮겨져 촉매, 중합, 응고, 건조, 성형 등을 거쳐 최종 생산물인 합성고무(BR)로 만들어진다. 이날은 여수공장의 주력 제품인 하이시스부타디엔고무(HBR) 생산이 한창이었다. 가로 60㎝, 세로 30㎝, 높이 22㎝의 HBR 덩어리는 공정 직후 따뜻하고 말랑말랑해 '큰 백설기'같았다. 주로 타이어에 쓰이는 범용 고무인 HBR은 자동화 포장공정을 거친 뒤 컨테이너에 실려 차량으로 출하됐다.
이제형 차장은 "HBR을 비롯해 제1공장에서 생산되는 합성고무양은 일평균 1000t으로 컨테이너 60개 분량"이라며 "여수공장 제품의 70%가 중국 등 해외로 수출된다"고 전했다. 금호석화 여수 1공장(29만t)과 2011년 준공한 인근 2공장(22만t)은 연산 51만t의 합성고무를 생산하는데 HBR이 29만t을 차지한다. HBR은 세계 3위 생산능력을 자랑한다.
■고기능성 제품으로 일낸다
금호석화는 HBR 등 범용 제품은 중국산 저가 공세에 직면했다. 이 위기를 고기능성 제품 전략으로 극복하고 있다. 여수 1·2공장에서 생산되는 솔루션 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SSBR)와 네오디뮴 부타디엔고무(NdBR)가 차기 핵심 제품이다. 두 제품 모두 타이어의 에너지효율성을 높여주는 고부가가치 합성고무들이다. 금호석화 NdBR 제품은 2006년부터 테일러메이드의 골프공 코어 소재로도 공급되고 있다. 여수 1·2공장은 SSBR은 6만t, NdBR은 4.5t의 연산 생산능력을 갖춰 글로벌 선발 업체들을 맹추격중이다.
장갑종 여수공장장(상무)은 "SSBR은 작년부터 상업생산에 들어갔는데 품질은 이미 선두인 일본 기업들을 따라잡았고, 생산능력도 일년새 88% 향상됐다"며 "NdBR은 생산능력이 올해 26% 개선됐고 내년엔 18%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상무는 "범용 제품은 중국 등과의 경쟁이 치열해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프리미엄 합성고무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며 "전세계적으로 환경보호 차원에서 '타이어효율등급제'가 추진되는 등 고기능성 합성고무 시장은 향후 성장세가 밝다"고 설명했다.
■국가대표 '안전 공장' 만든다
장 상무는 "어려울때일수록 조직문화, 역량, 리더십을 잘 갖춰놔야 미래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며 "특히, 220명의 공장 직원들이 주인의식과 안전의식이 생활화되는 공장을 만드는데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유해물질 등 워낙 위험요소가 많은 사업장이라 이를 줄이는 실천적 방법들을 찾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여수공장은 일부 작업에만 적용하던 사전 위험성 평가시스템을 올해부터 모든 작업에 확대하는 등 안전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노력덕분에 사고위험이 높은 화학공장이지만 여수공장은 2003년 3월부터 지난 6월 28일까지 '무재해 16배수'를 달성하며 창사 이래 무재해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장 상무는 "분기마다 공장을 찾는 박찬구 회장의 현장경영 의지 등 경영진의 솔선수범이 생산직원들의 안전의식과 주인의식 고취에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실제로, 박찬구 회장은 지난 9월에 이어 이날도 여수 1공장을 방문해 현장을 일일이 둘러보고 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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