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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만 야구전문기자의 핀치히터] 한국 프로야구도 에이전트 제도 도입할 시점이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25 17:52

수정 2014.11.25 17:52

솔직히 스캇 보라스가 마음에 들진 않았다. 박찬호가 에이전트 스티브 김과 결별하고 그와 계약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애써 농사지은 이는 스티브 김이었다. 씨 뿌리고 거름 주고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제대로 열매가 맺혔는가 싶었는데 정작 과실을 챙긴 쪽은 보라스였다. 박찬호의 대형 계약으로 보라스는 대략 30억원의 거금을 챙겼다.


스캇 보라스는 공공의 적이다.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돌아서서 그를 욕한다. 뒤집어 얘기하면 그만큼 유능하다는 뜻이다. 2001년 이맘 때 스캇 보라스의 사무실에 초대 받았다.

보라스는 대략 200쪽 가량의 하드케이스로 만든 두툼한 책자를 보여주었다. 박찬호에 대한 자세한 소개로 채워져 있었다. 내용을 살펴보고 감탄했다. 이 정도면 어느 구단이라도 지갑을 열지 않을까 싶었다. 당시 박찬호는 마이클 햄튼, 대런 드라이포트 등과 비교되고 있었다.

그들과 견주어 박찬호가 어떤 장점을 가졌는지 책자는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3자책 이내의 투구) 부문이었다. 당시 만해도 퀄리티스타트는 그리 중요시 되지 않았다. 보라스는 박찬호의 장점인 퀄리티스타트를 최대한 부각시켰다. 결국 박찬호는 5년간 총 6500만달러(약 715억원)에 텍사스와 계약을 맺었다.

보라스는 악마로 불린다. 구단 입장에서 그렇다. 선수에겐 오히려 산타크로스다. 보라스로 인해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 대폭 올라갔지만 파이의 크기도 덩달아 커졌다.

필라델피아는 최근 연평균 1억5000만달러에 TV 방송사와 중계권료 협상을 매듭지었다. LA 다저스는 매년 3억2000만달러를 방송국으로부터 받는다. 팀 전체 연봉(필라델피아 1억8000만달러, 다저스 2억3500만달러)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다.

방송사들이 구단에 천문학적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스타 파워 때문이다. 그 일등공신으로 보라스를 꼽고 싶다.

국내 자유계약선수(FA)의 사전 접촉 문제로 시끄럽다. FA 최대어 장원준(원 소속 롯데)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26일까지는 롯데 아닌 타 구단은 장원준을 만나선 안 된다. 하지만 이 규정을 제대로 지키는 구단이 몇이나 될까.

심정수(전 삼성), 김주찬(KIA), 정근우(한화) 등 대형 FA 계약에선 과연 사전 접촉이 없었을까. 내가 하면 아름다운 로맨스도 남이 하면 턱없는 불륜이다. 모르긴 해도 롯데 역시 그동안 무수히 사전금지 조항을 어겼을 것이다.

이제는 국내에도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할 시기가 됐다. 선수와 구단이 장시간 체력을 소모하며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은 여러모로 낭비다. 그 과정에서 온갖 비정상이 만들어진다.

변호사이기도 한 김선웅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국장은 "롯데의 CCTV 사건도 따지고 보면 구단이 선수들을 너무 잡으려는 데 원인이 있었다.

에이전트라는 중간 조정자를 두면 국내 프로야구의 비정상적인 관행이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전직 KBO 고위관계자는 "올 봄 정부 차원에서 이에 관한 논의가 있은 것으로 안다.
에이전트 도입은 시간문제인데 이제 그 때가 온 것 같다"며 각 구단이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김광현(SK)과 양현종(KIA)은 실망스런 포스팅 금액으로 인해 메이저리그행에 제동이 걸렸다.
박찬호 소개서 같은 책자가 만들어져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에 뿌려졌을까. 아쉬운 마음이다.

texan50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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