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38) 거친 파도 헤치고 섬에 가면 "아이고, 의사선상님 오셨어유~"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충남 병원선 501호
내 이름은 '충남 501' .. 의사 3명에 간호사 3명 등 모두 18명이 28개 섬을 매달 한차례씩 돌아다닙니다. 3층 배지만 둘러보는데는 5분도 안걸립니다. 그렇다고 얕보지는 마세요. 내과·치과·한방과에 임상병리과·방사선실·약제실까지 필요한 건 모두 있습니다

'충남 병원선 501호'는 한 해 7800㎞를 이동하며 섬 주민 4100여명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의료진과 병원선 관계자들이 외연도를 떠나며 주민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충남 병원선 501호'는 한 해 7800㎞를 이동하며 섬 주민 4100여명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의료진과 병원선 관계자들이 외연도를 떠나며 주민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 보령(충남)=윤경현 기자】 충남 보령 외연도에 사는 50대 여성 임모씨는 지난 8월 피검사를 받은 결과 고지혈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중성지방 수치가 높다며 아직 약을 쓸 단계는 아니고 3개월간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조절을 해본 후 다시 검사해보자고 했다. 외딴섬에 사는 주민들이 배로,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려 육지의 병원을 다니기란 참 힘들다. 이를 해결해주는 것이 병원선이다. 병원선은 여러 섬을 순회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주민의 건강을 챙겨주는 '건강 돌보미' 역할을 한다. 국내 병원선은 지난 1978년 인천, 충남, 전북, 전남, 경남 등 섬이 많은 5개 지역에서 운행을 시작했다. 전남은 수요가 많아 배를 두 척으로 늘렸고, 전북은 새만금간척사업 등으로 수요가 줄어들자 다른 용도로 전환됐다.

배 타고 한해 7800㎞ 달립니다…
배 타고 한해 7800㎞ 달립니다…

충남도는 1971년 '섬 돌보기호'(6t급)를 시작으로 1978년 135t급 병원선을 취항, 22년 동안 운항했다. 이어 2001년 4월에는 사업비 26억7000만원을 들여 160t급 병원선을 새로 건조했다. 보령시와 서산·당진시, 서천·홍성·태안군 등 6개 시·군에 흩어져 있는 28개섬을 매달 한 차례 이상 돌아다닌다. 의사 3명과 간호사 3명 등 모두 18명이 4100명에 이르는 주민의 건강을 보살피고 있다. 지난 11일 오전 충남 보령의 대천항에서 외연도로 가는 병원선 '충남 501호'에 동승했다.

■한 해 7800㎞ 이동…연인원 23만명 돌봐

3개층으로 이뤄진 병원선은 한 바퀴 둘러보는 데 5분이면 충분할 만큼 규모가 작았다. 하지만 덮어놓고 얕볼 정도는 아니다. 내과, 치과, 한방과에 임상병리실, 방사선실, 약제실까지 필요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의료기기와 집기가 모두 끈으로 묶여 있는 점이다. 파도에 배가 흔들릴 때를 대비해 바닥과 벽에 고정해 놓은 것이다.

충남 병원선은 지난해 연인원 23만5000명의 환자를 돌본 데 이어 올 들어서도 현재까지 20만명이 훌쩍 넘는 진료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1991년부터 병원선에서 근무 중인 최건용 사무장(56)은 "과거 섬 주민이 모두 2만명 가까이 됐던 적도 있다"며 "인구가 줄었으나 의료수요는 오히려 더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층이 육지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섬에는 대부분 60대 이상의 노년층만 남았고 이들 대부분이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 만성질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배에서 내려 마을회관으로 갑니다…
배에서 내려 마을회관으로 갑니다…

오종명 선장(56)은 "대부분이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고 뭍으로 한 번 나오기 힘드신 분들이 많다"면서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 드리기 위해 여름에는 조금 더 일찍 가서 늦게 오려고 노력한다"고 거들었다.

섬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무조건 방문하는 것이 충남 병원선의 원칙이다. 태안·당진·서산에 있는 섬들은 한데 묶어 2박3일로 돌고 나머지는 그날 나갔다가 그날 들어온다. 최 사무장은 "인구(1100여명)가 제일 많은 원산도는 한 달에 네 차례, 삽시도와 마을이 앞뒤로 나눠져 있는 효자도는 각각 두 차례 들어간다"며 "하루에 4개섬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남의 경우 두 척이지만 워낙 섬이 많아 1년에 한 번밖에 못 가는 섬도 있다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일하는 곳이 '선상'이다보니 의사(공중보건의)들이 지원을 꺼릴 수밖에 없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지기 전인 파고 2∼3m에도 안전한 범위 내에서 진료를 나가야 하고 자칫 날씨가 좋지 않으면 사나흘씩 발이 묶이기도 한다. 오 선장은 "태안에 있는 가의도까지는 배로 5시간이나 걸린다"며 "날씨가 좋을 때는 무리가 없으나 파도가 심할 때는 이동 자체가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20년 넘게 일해온 최 사무장조차 '배타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할 정도다. 배를 타본 경험이 적은 의사들의 고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진료를 하다 보니 의료기기를 자신의 다리에 묶은 채 환자를 치료하는 경우도 있단다.

최 사무장은 "근무환경이 열악한 만큼 의사들에게는 1년만 근무하고 다른 곳으로 갈 때 희망하는 곳으로 우선 배치하는 혜택을 주고 있다"면서 "병원선 역사가 40년에 육박하지만 연장신청을 해 2년 간 근무한 의사는 지난해까지 일했던 내과의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특히 근무 중인 공중보건의들은 '세월호 침몰 참사'가 일어난 지난 4월 16일이 첫 근무였다. 당연히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오 선장이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가족들이 병원선을 방문했을 때 '절대로 안전하니 믿고 맡겨달라' '책임지고 안전을 보장하겠다'며 안심시켰다"고 거들었다.

병원선 운영에 들어가는 돈은 1년에 약 7억5000만원이다. 진료비와 약값이 모두 공짜여서 1년에 약값으로 1억8000만원이 소요된다. 어선과 달리 관공선은 면세유도 받을 수 없어 기름값이 무려 2억5000만원이나 되고 수리비도 2억원가량 필요하다. 충남 병원선은 지난해 186일을 운항, 항해거리가 7802㎞에 달했다.


내과 담당 정항심 간호사(54)는 "약값이 무료라 옆 사람이 받아가면 당장은 필요없는데도 '나도 달라'며 우기는 어르신이 있다"며 "마음 같아서야 주고 싶지만 예산이 한정돼 있어 적정선에서 통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과 진료하며 할머니 고민도 들어주고…
내과 진료하며 할머니 고민도 들어주고…

■섬 어르신, 내과 거쳐 한방과로 '순례'

대천항을 떠난 지 두 시간여 만인 오전 11시께 외연도 앞바다에 도착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파도도 잔잔했다. 한방과 정희정 간호사(43·여)는 "병원선에서 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멀미는 적응이 안 된다"며 "오늘은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원래는 항구에 배를 대고 진료를 보지만 오늘은 물이 많이 빠져 배를 대기 힘든 만큼 의료진이 섬으로 가 진료를 하기로 했다. 오 선장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본선까지 못오는 경우도 있어 육상진료를 한다"며 "거동 못하시눈 분들에게는 왕진도 간다"고 말했다.

배에서 이른 점심식사를 마치고 최 사무장과 내과, 한방과를 맡고 있는 의사·간호사들이 출발 채비를 했다. 배 안에서만 진료를 볼 수 있는 치과는 진료에서 빠지는 대신 환자들이 필요한 약의 조제를 맡기로 했다. 병원선에 붙어 있던 작은 선외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주민회관에 임시진료소가 차려졌다. 이인엽씨(82·여)는 병원선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벌써 30분째 기다리고 있었다. 이씨는 "날씨가 따뜻할 때는 그나마 괜찮지만 쌀쌀해지면 뭍으로 나가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라면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고맙지만 더 자주 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한방과 진료하며 다리도 풀어드립니다…
한방과 진료하며 다리도 풀어드립니다…

환자들이 하나둘 들어오더니 10여분 만에 환자 수가 10명을 넘었다. 최 사무장이 접수를 맡고 내과 담당 정 간호사는 연신 혈압을 쟀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느냐"는 최 사무장의 질문에 대다수 어르신은 "안 아픈 데가 없다"고 대답했다.

환자들은 세세한 것 하나까지 하소연하듯 털어놨다. 내과 전문의인 강화평 선생(31)은 이를 천천히 다 들어주고 원인과 예방책을 자세히 설명해줬다. 환자 한 명을 보는 데 짧게는 5분, 길게는 20분이 걸렸다. 내과 담당인 정항심 간호사는 "의사가 환자를 본 뒤 처방을 내리면 간호사가 이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배로 보내고 배 안에서 약을 조제해 진료가 모두 끝날 즈음 일괄적으로 갖고 와서 나눠주는 식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는 40대 여성환자가 감기몸살 때문에 찾아왔다. 진료를 끝낸 후 "남편이 일하러 가서 오늘도 오지 못했다"며 혈압약을 대신 받아가려 했다. 내과 담당 정 간호사가 만성질환자 리스트를 꺼내 "6월 이후 나오지 않았다"고 확인해줬다. 강 선생은 "여긴 약국이 아니다. 3개월 이상 진료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남 창원이 고향인 강 선생은 평생 배를 탄 것보다 병원선에 와서 지낸 6개월 동안 더 많이 탔단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이 섬 저 섬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알게 되고 '병원선이 기다려진다'는 말을 들으면 뿌듯하다"며 "어떤 분은 '외부에서 받는 진료보다 잘 맞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초 당진의 대난지도를 찾았을 때였습니다. 80대 할머니가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다'고 하시는 거예요. 청진을 했더니 심잡음이 들렸고 엑스레이에서 심장기능이 떨어진 것을 발견했죠. 응급실에 갈 것을 권유했지만 '자식들에게 부담주기 싫다'며 한사코 거부하시더군요. 결국 소견서를 쓰고 아드님에게 연락했습니다. 몇 달간 안 보여서 전화를 드렸더니 병원에서 치료받고 오셨다고 하더군요. 좋아졌다고, 고맙다고 하시는데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강 선생은 "환자에 따라 기민한 대처가 필요하고, 약을 바꾸거나 자주 봐야 하는 케이스가 있는데 병원선은 정해진 스케줄이 있어 '다음 주에 오세요'라고 말할 수가 없다"면서 "그런 면에서는 아쉬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내과를 거친 어르신들은 줄줄이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한방과를 찾았다. 슬쩍 문을 열어보니 어르신 대여섯명이 무릎과 허리에 침을 꽂은 채 일렬로 누워있었다. 한의사 김건웅 선생(26)은 "한결같이 허리·무릎·어깨가 안 좋다고들 하신다"며 "대다수는 처음부터 한방을 찾기 위해 오신 분들이 아니라 내과를 보기 위해 오셨다가 한방, 치과가 있으니 들렀다 가는 '병원 순례'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오늘 같은 육지진료에서는 여건이 좋지 않아 한방의 경우 침만 쓸 수 있다"며 "파도가 치면 환자도, 의사도 힘들지만 오히려 장비가 갖춰진 배에서 진료할 때 양질의 치료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오후 3시가 넘어가자 환자의 발길이 뜸해졌다. 병원선에서 약을 조제해 가져왔다.

마을회관 앞 슈퍼마켓에 맡겨두면 환자들이 직접 찾아간단다. 이날 충남 병원선이 진료한 환자는 내과 48명, 한방과 10명 등 모두 58명이었다. 생업에 쫓겨 진료를 보지 못하고 한 달치 혈압약 등을 대신 받아간 사례도 상당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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