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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부의 이야기를 기록한 역사가, 사마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01 16:57

수정 2014.12.01 16:57

[fn논단] 부의 이야기를 기록한 역사가, 사마천

"평범한 사람은 상대방의 재산이 자기보다 10배 많으면 헐뜯고, 100배 많으면 두려워하고, 1000배 많으면 그의 심부름을 하고, 1만배가 많으면 그의 종이 되는데 이것이 세상 만물의 이치다." 2100년 전 부(富)에 대한 사람의 마음을 꿰뚫으면서 부를 오래 지키려면 적절한 나눔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친 역사가가 있었다. 그는 부자 되는 방법에 대해 "세상의 이치를 알면 인간의 이치를 알고, 인간의 이치를 알면 자연히 돈의 이치도 알게 된다"고 했다.

그는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을 관찰하고 이렇게 요약했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은 노동을 하고, 약간의 재물이 있는 사람은 지혜를 써 경쟁하고,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은 시기를 노린다.

이것이 재산 증식의 대강이다." 부자들의 흥망사를 살펴보면 그 속에 돈의 이치가 담겨 있다. 상인들이 재물을 늘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이다.' 이재에 성공한 사람들은 성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시장의 변화를 빨리 읽어 때를 잘 고르는 사람이다.

부자 이야기를 역사서 안으로 과감히 끌어들인 인물은 사마천이다.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에 중국 한나라 산시성 룽먼에서 태어나 기원전 86년에 59세로 사망했다. 천문을 살피고 역서를 만드는 관리였던 아버지 사마담은 자신이 못다 쓴 역사서를 아들이 써주기를 원했다. 사마담은 아들에게 고서를 탐독하고 중국 전역을 돌아보며 선현의 이야기를 모으도록 했다. 그런데 사마천이 역사책을 쓰기 시작할 무렵, 뜻밖의 사건에 휘말린다. 흉노 토벌에서 항복한 한나라 장수 이릉에 대해 사마천이 중과부적으로 패하긴 했지만 훌륭한 장수라고 변호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말에 진노한 한 무제가 그를 사형에 처하도록 명했다. 당시 사형을 면하는 방법은 거액의 속전을 납부하거나 궁형을 택하는 것뿐이었다. 돈이 없는 사마천은 생식기를 잘라내는 치욕적 형벌인 궁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목숨을 부지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역사책이 '사기'다. 13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사기'는 황제에 관한 기록인 본기(本紀) 12권, 연대표인 표(表) 10권, 국가의 제도와 문물을 논한 서(書) 8권, 제후의 이야기인 세가(世家) 30권과 인물들의 이야기인 열전(列傳) 70권으로 구성돼 있다. 열전 가운데는 부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화식열전'이 들어있다.

'화식열전'은 춘추 말부터 한나라 초기까지 상공업으로 재산을 모은 부자 52명의 기록이다. 그가 부의 역사를 쓰게 된 것은 아무 계급과 관직도 없으면서 정치를 어지럽히거나 백성을 괴롭히는 일 없이 정당한 거래로 재산을 모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인의 주된 관심은 윤택한 삶, 즉 부에 있다. 그런데 역사책의 기술은 오늘날까지도 왕조가 어떻게 바뀌고 정권이 어떻게 넘어갔나 하는 정치 문제에 집중돼 있다. 2100년 전 공자의 유학이 지배하던 한나라 시절에도 인간의 본성과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며 부자들의 삶을 역사서에 포함시켜 연구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부를 추구하면서도 부자들을 경시하는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경영지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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