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김방은 예화랑 대표 "사람들이 미술과 더 친해질수 있게 문턱 낮출것"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08 17:18

수정 2014.12.08 22:41

서울오픈아트페어 창립멤버.. 작품 선정 독창·창의성 중요

김방은 예화랑 대표 "사람들이 미술과 더 친해질수 있게 문턱 낮출것"

김방은 예화랑 대표(43·사진)와 미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운명'이나 '숙명'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김 대표의 어머니(고 이숙영 예화랑 대표)는 서양화를, 큰이모는 조소를, 작은이모(이승희 예화랑 공동대표)는 동양화를 각각 전공했다. 아버지(김태성 예실업 대표)도 지난 1983년 화랑협회장을 지냈을 만큼 미술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김 대표는 중학교 시절 미술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작가가 아닌 갤러리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너무도 성에 차지 않았던' 대학 졸업작품이 그의 진로 변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단다. 그는 "미술은 창조가 기본인데 당시 그림을 그리면 유명 작가의 작품과 비슷해 스스로 실망을 많이 했다"며 "그러면서 '계속 작가를 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가 들었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방향을 틀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1994년 유학길에 올라 영국 에섹스대에서 갤러리경영학(석사)을 공부했다. '미술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 미술사를 깊이 있게 배웠다. 그리고 3년 후 한국에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일하며 '갤러리스트'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예화랑은 1978년 서울 인사동에서 시작해 1982년 신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남 지역에 문을 연 첫번째 화랑이었다. 2005년에는 건물을 새로 올렸다. 당시 김 대표는 장윤규 건축가와 함께 설계를 구상할 만큼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비정형 건물에 베이스패널(시멘트 압축 패널)을 외장재로 사용한 파격적인 건축물이 탄생했고 예화랑은 독특한 외관 덕택에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가로수길의 '명물'이 됐다. 김 대표가 '대표' 직함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10년 8월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큰이모와 함께 '공동 대표'가 됐다. 김 대표는 "어머니가 운영할 때와 비교할 때 가장 달라진 점은 작가군이 다양해졌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갤러리의 맥을 그대로 이어가고 어머니가 추진하던 사업을 이어나가는 것은 온전히 김 대표의 몫이 됐다. 2006년 시작 당시 창립멤버였던 서울오픈아트페어(SOAF)도 그중 하나다. 그는 "SOAF는 일반인들이 미술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했다"며 "해를 거듭할수록 관객들의 수준과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내년 5월로 예정된 10회 행사에서 새로운 것을 선보이기 위해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로 지난해 SOAF에서 BMW코리아와 함께 진행한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꼽았다. 플라스틱 액체를 캔버스에 여러 겹 칠한 후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어 그 위에 우레탄 도장으로 칠해 나가며 제작됐다. 특히 작가의 창의적 작품 활동에 고도의 기술력이 결합돼 한층 수준 높은 작품이 됐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가 작품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독창성과 창의성이다. 그 작가만이 할 수 있는 것, 작품 안에 울림이 있어 어떤 형태로든 감동을 주는 작품을 선호한단다. 가장 기분이 좋을 때는 작가들의 작품을 디스플레이한 직후다. 공간과 작품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느끼는 쾌감이 있단다.

그는 "대부분의 작업실은 그림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등 환경이 좋지 못하다"며 "그림이 갤러리에 오는 순간 빛을 발하는데 그림이 팔릴 때보다 더 기분이 뿌듯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전통적인 전시와 함께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함으로써 '움직이는 갤러리'를 만들고 싶다"며 "가능하다면 건축 단계부터 참여, 좋은 공간을 만들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미술관을 갖는 게 최종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미술이 권위적으로 보이는 게 싫다"면서 "한 명이라도 더 미술을 좋아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