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중앙은행(CBR)이 15일(현지시간) 밤 전격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CBR은 기준금리를 10.5%에서 17%로 6.5%포인트 올린다고 밝혔다. 불과 나흘전인 11일 1.0%포인트 금리인상 뒤 이뤄진 전격적인 조처다. 유가 폭락 등의 여파로 러시아 통화인 루블이 폭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루블은 이날 달러당 64.45루블로 추락해 1998년 러시아 채무불이행(디폴트)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지난 11일 기준금리 인상 당시 CBR의 대응이 크게 뒤처졌다며 조만간 추가 금리인상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루블 폭락으로 그 시기가 크게 앞당겨진 것으로 보인다.
CBR은 금리인상과 함께 환매조건부채권(레포) 금리를 11.5%에서 18%로 올렸고, 외화부족에 시달리는 은행들에 달러를 공급하기 위해 외화 결제 레포 경매 규모를 15억달러에서 50억달러로 확대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CBR의 이날 조처를 바닥없이 추락하는 루블 가치를 붙잡기 위한 '최후의 노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외환전문인 BK 자산운용의 캐시 린은 "이는 과거 다른 신흥시장 중앙은행들도 자국 통화를 방어하고, 단기 투기세력을 시장에서 몰아내는데 효과를 본 충격요법"이라면서 "기본적으로 러시아 중앙은행은 시장 흐름과 다른 쪽에 서 있다는 점과, 루블 붕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CBR의 급격한 금리인상은 경기침체 전망에도 불구하고 나온 고육책이다.
CBR은 이날 국제유가가 내년에도 배럴당 60달러 선에서 움직이면 러시아 경제는 내년 4.5~4.7%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비관했다. 이날 런던시장(ICE)에서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 근월물은 60.89달러에 거래됐다.
러시아는 루블 하락을 막기 위해 연초 750억달러(약 82조원)를 환율방어에 쏟았지만 거의 효과를 보지 못했고, 11월에는 시장 흐름에 굴복해 사실상의 자유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11월 이후에도 그러나 시장급변동을 막기 위한 스무딩오퍼레이션에 약 60억달러를 투입했다.
외환방어를 위한 실탄인 외환보유액이 아직은 충분한 상태이지만 시장 흐름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막대한 돈을 외환시장에 쏟아부었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대형 금융위기를 견뎌낼 정도인 4000억달러 이상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뜩이나 침체된 경제를 깊은 수렁으로 빠뜨릴 수 있는 금리인상을 피하려 안간힘을 썼던 러시아의 노력은 이달들어 유가 하락속도가 가팔라지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외환딜러들에 따르면 한 밤중 대폭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하기 전인 이날 CBR은 몇차례 외환시장에 개입했지만 루블 가치 급락을 막지 못했다.
일부 상점에서는 외환위기와 디폴트 당시처럼 물건 값을 루블이 아닌 달러로 표시하는 곳도 나타났다.
결국 CBR은 금리인상 카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런던 스탠더드뱅크의 티머시 애시 애널리스트는 이날을 '붉은 월요일'이라고 칭하고 시장이 공황에 빠져 러시아 은행들에서 예금인출 사태가 빚어질 위험성이 고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붉은 월요일'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1917년 10월을 일컫는 '붉은 10월'에 빗댄 표현이다.
그는 루블 폭락은 "단순히 유가 때문만은 아니며 경제제재, 지정학적 위험, 러시아 당국의 무기력한 정책대응이 얽혀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기업들이 채권 변제를 위한 달러 수요가 높아지는 것도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이전에 발행한 채권을 되돌려 막기 위해(차환) 돈이 필요하지만 경제제재로 해외 자본시장 접근이 봉쇄됐다.
러시아 회사채는 이때문에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수익률이 뛰고 있다. JP모건 체이스에 따르면 러시아 회사채 수익률은 이달초 평균 8% 수준에서 지금은 11%로 급등했다.
롬바르드 오디어 투자운용의 스위스 채권팀장 야니크 주퍼레이는 "우크라이나 상황과 그에따른 경제제재로 투자자들은 러시아 기업들이 통상적인 투자자 기초 없이 어떻게 빚을 차환할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루블 추락 속에 러시아를 빠져나가는 자금 규모도 커지고 있다.
CBR은 올해 러시아에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탈 자본 규모가 11월 예상치 1280억달러보다 60억달러 더 많은 1340억달러에 이르고 내년에도 1200억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후 이탈 규모가 줄어 2016년에는 750억달러, 2017년에는 550억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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