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未生)'이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미생'은 주인공 장그래가 프로 바둑기사 입단에 실패한 후 사회 초년병으로서 직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원작인 웹툰 '미생'은 직장인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누적 조회수 10억건을 기록했다. '미생' 단행본은 현재 기준 90만부가 판매될 정도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생'이란 바둑에서 '살아있지 않은 돌'을 의미한다.
미생에서 장그래는 인생의 목표이던 프로바둑 기사 입단 시험에 반집 차로 고배를 마신다. 미생에선 1989년 당시 한국 최강자 조훈현 9단과 중국 최강자 녜웨이핑 9단이 맞붙은 제1회 응씨배 바둑선수권이 소개된다. 결승에서 조훈현은 반집 차 승리를 거둔다. 일생일대 승부는 고작 반집으로 갈렸다. 반집은 장그래의 인생을 한순간에 직장인으로 바꿔놓았고 조훈현을 바둑 영웅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요즘 '미생'만큼 금융권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는 주인공은 '핀테크(Fintech)'다. 금융(Financial)과 정보기술(IT)이 융합된 핀테크는 높은 편리성과 낮은 수수료를 무기로 국내외에서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우리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세계 핀테크 투자는 지난 2008년 9억3000만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2009년 9억8000만달러, 2010년 19억8000만달러, 2011년 24억3000만달러, 2012년 27억달러, 2013년 29억7000만달러 등으로 5년새 3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외 핀테크 기업은 470여개에 달한다. 이처럼 핀테크시장이 일취월장하면서 관망하던 금융당국도 마음이 급해졌다. 급기야 금융당국은 내년 금융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핀테크를 제시했다. 규제를 대폭 완화해 핀테크를 신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금융당국의 전략이다. 여기엔 '금융 보신주의'로 인해 돈줄이 막힌 금융시장에 역동성을 부여해 경기활성화의 속도를 높이려는 금융당국의 판단이 녹아 있다. 규제 일변도 정책이 국내 핀테크시장을 글로벌 IT 공룡에 넘겨줄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핀테크분야 규제완화 대상과 속도다. 정부의 핀테크 규제완화의 주요 대상은 보안성 심사 기준 완화다. 일각에선 보안성 심사 폐지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당장 급한 핀테크시장 활성화와 소비자의 편리성을 위해 보안을 조금 양보하겠다'는 속내가 깔려 있다. 신중하게 고민해볼 일이다. 올 초 온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1억건 이상의 '금융권 개인 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 금융권을 강타한 '모뉴엘 금융사기 사건'이 터진 것도 불과 2개월여 전이다. 아직 금융사고의 후속 대책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유행가'처럼 등장한 신금융모델인 핀테크를 조기 육성하기 위해 보안장치를 섣불리 해제한다면 '제2의 개인정보유출 사고'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금융에서 보안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대마'다. 아직 '미생'인 핀테크가 '완생'이 되기 위해 편리성과 보안성이 균형잡히는 '신의 한 수'가 절실하다. 문득 미생에서 장그래가 내뱉은 독백이 떠오른다. "기초 없이 이룬 성취는 단계를 오르는 게 아니라 성취 후 다시 바닥으로 돌아가게 된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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