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기업인 다시 뛰게 하자 ] (6·끝) 기업인 사면 각계각층 한 목소리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05 17:47

수정 2015.01.05 21:42

"기업인 역차별 안돼… 경제 살리기 위한 대승적 결단 필요"




기업인 가석방·사면 문제는 한국 사회의 '신뢰 구축'을 위한 새로운 도전과제다. 기업인 가석방·사면 문제에서 경제 현실은 부인할 수 없는 고려 요소다. 저성장·저물가·저투자·엔저 압박은 올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너 기업 특성상 대규모 투자와 사업구조조정은 총수가 결정한다. 결국 총수 부재는 결정의 지연을 낳는다. 이 같은 현실적인 논리 뒤로 우리 사회가 좀 더 솔직히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반기업 정서에 대한 쏠림현상으로,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가 기업인 처벌에 균형추를 잃었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학계·시민사회계, 정치권, 경제계는 몇 가지 관점에서 기업인 가석방 문제에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 원칙에 맞게 하라" "국민과의 신뢰구축을 위해선 과거와 같은 무분별한 사면권 남용이 아닌 옥석 가리기를 하라" "과도한 배임죄 적용이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자세히 들어봤다.

■학계·시민사회계…현실과 원칙 조화 '옥석 가리기'

홍익대 김종석 경영대학장(교수)은 "법 앞에 평등이란 관점에서 기업인들에 대해 봐주는 것도 없어야 하겠지만 과도하게 벌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경제 논리나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 기업인을 가석방·사면해야 한다는 건 국민들에게 해묵은 논리가 아니겠느냐. 그러나 관례상 가석방 심사 기준에 충족이 되는데도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못하는 건 그 역시 역차별"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법당국이 법 집행에 있어 여론의 눈치, 국민정서에 휘둘리면 이 역시 모두에게 불편한 현실"이라며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아울러 배임죄 적용 문제 역시 언급했다. "한국에서 기업을 한다는 건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에서든 교도소 담장 위를 거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면서 "특히 전문경영인들이 그런 고민을 많이 토로한다"고 전했다.

전원책 변호사(전 자유경제연구원장)는 "과거 대통령 특별사면에 대해 기업인도 물론이지만 특히 정치권에 대해 남용된 측면이 있어 개인적으론 엄청나게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면서 "그러나 지금 어느 쪽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묻는다면 과연 모든 것을 규격화해 판단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여론의 중의를 모아 신중히 옥석을 가려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그러면서 "재벌이라고 해서 가중처벌할 순 없으며 한국의 오너 체제 특성상 오너가 자유롭게 활동해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투자가 활성화된다는 측면이 분명 있다"고 피력했다. 그는 "과거 사면권 남발은 정치적 완충작용이나 사회 대통합에 기여한 측면도 있으나 다른 한쪽으로는 현재 우리 사회에 유전무죄라는 부정적 인식을 드리웠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분명히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례로 한화그룹 같은 경우엔 김승연 회장 개인적인 횡령보다는 당시 기업을 살리기 위해 했던 하나의 판단이라는 점이 참작돼 석방됐는데,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인 사면복권은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 신중히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상속세법 등 기업 관련 법률의 개정 필요성도 강조했다. "상속세 부담을 낮추려고 주가가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게 우리 기업인들"이라며 "상속세를 낮춰주고 대신 탈세 등의 범법행위를 근절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전 국무조정실장)은 과거 한국 사회 경제발전을 주도한 기업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기업 정서 확산에 경계감을 드러냈다. 권 원장은 "기업의 투자행위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으로 더구나 대규모 투자행위는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기업인을 지탄하는 게 마치 선(善)인 양 여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권 원장은 "투자행위는 경영상 판단인데 성공과 실패로 나눠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배임죄로 벌한다면 과연 누가 투자할 수 있겠느냐. 이는 기업인들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모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과거 정부에서 기업인들이 배임죄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 대규모 해외 플랜트·건설 수주가 막판에 파기되거나 당장 미국 비자부터 거부당하는 사례를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권 원장은 "더욱이 가석방 요건을 충족해도 심사대상에서 배제하는 건 법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처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우리 경제는 방향전환과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라며 "오너 중심의 한국 기업 특성상 총수 부재는 난파 직전 선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빗댔다.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명지대 교수)는 "경제가 나쁘니까 가석방.사면하자는 논리는 아니다"라면서 선을 그었다. 조 대표는 "우리 사회는 기업인들이 일종의 '원죄'가 있다는 시선을 갖고 있다"면서 "그로 인해 일반인들보다 기업인들에게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횡령은 분명히 형법으로 다스려져야 하겠지만 배임은 우리나라하고 독일밖에 없는 데다 경영상 판단인 배임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정부…'법 앞의 평등 강조'

최근 정치권에선 기업인 가석방 문제에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기업인 가석방·사면 문제를 처음 거론한 것도 정치권이었다. 정부 내에선 3선 의원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업인 가석방 역차별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지난해 7월 새 경제팀 출범 이후 표면적으론 경제성장에 방점을 찍었지만 실상은 위기의식이 팽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두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와 대규모 재정정책에도 좀처럼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 데 대한 나름의 고심으로 해석된다. 이는 오너 중심의 한국 기업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총수 부재 시 현실적으로 대규모 투자 결정이 이뤄지기 어려운 데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도 신사업 발굴이나 사업구조조정에 미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 부총리는 "기업인에게 혜택을 줘서도 안되지만 역차별을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일반인들도 일정 형기가 지나면 가석방 등을 검토하는 것이 관행인데, 기업인이라고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지난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부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기업인이 사기를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정치권에서 협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갑윤 국회 부의장도 지난해 말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인 사면이 늦어지면 한국 경제의 활로를 찾을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음달 설 명절(2월 19일) 전에 사면(가석방)을 단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부의장은 "일부 재벌들의 일탈행위로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 안타깝지만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의장은 "어떤 기업인들은 가석방 조건을 다 갖췄지만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회가 기업인들에 대해 갖고 있는 좋지 않은 인식 때문에 일어나는 역차별로 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당에선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지원사격을 했다. 박 의원은 지난해 10월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기업인들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처벌받는 경우가 많아 사면과 가석방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지적했으며 지난해 말에도 기자들과 오찬간담회에서 "기업인을 우대하는 것도 나쁘지만 불이익을 주는 것도 나쁘다"면서 소신을 이어갔다.

사법부 수장인 양승태 대법원장도 최근 기업인 가석방 심사 역차별 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 1일 "기업인이라고 특혜를 줄 수도 없고, 역차별도 할 수 없다"며 "법 앞의 평등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는 말로 조심스럽게 기업인 가석방 문제를 언급했다. 양 대법원장은 '황제 노역' 논란 등에 대해 "가끔씩 법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때는 그간 쌓은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며 "우리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법원도 변하면서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애타는 경제계… 대한상의·경총 '총대'

경제계에선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총대를 멨다. 최근 박 회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형기를 채우는 것보다 경영에 복귀해 SK의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것이 국가.사회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간청했다. 사실 재계에선 그간 기업인 가석방·사면과 관련해 발언을 자제해왔다. 자칫 국민 정서를 거스를 경우 역풍을 맞을 것이란 우려가 상당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 회장이 작심발언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회장은 SK 최태원 회장의 경우를 들어 "(최태원 회장은) 사법절차를 거쳤고 판결도 나왔고 상당 기간 형기를 채웠다"며 "누구를 벌하는 것은 반성 또는 새로운 개선을 모색하자는 뜻도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회를 줘서 5대 그룹 중 하나가 획기적 변화를 일으키면 그것으로 그 사람을 교도소에서 밥 먹이는 것보다 가치 있는 투자가 아닐까 하는 간곡한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해 10월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직무대행은 경총포럼에서 "기업인 사면, 배임죄 적용 범위 제한, 무분별한 배임죄 적용 지양 등 기업 사기를 고양하고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특단의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논의의 물꼬를 텄다. 그는 "최근 어려운 경제상황과 간판 기업들의 큰 폭 실적하락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2000년 이후 지속되는 기업 투자환경 악화"라고 전제하며 "경영 판단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엄격한 배임죄 적용과 사회 전반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가 창의와 혁신의 기업가정신을 가로막아 '제2의 삼성전자' '제2의 현대차' 탄생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 직무대행은 "세계 각국은 자국 기업은 물론 외국 기업에도 규제완화, 세제지원 등 파격적인 우대조건을 제시하며 투자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기업가의 도전정신과 열정이 재평가돼 존중받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국내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이구순 팀장 양형욱 최진숙 장용진 차장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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