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유로존 경제위기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한 달 전 그리스 총선에서 신민당과 사회당이 겨우 연립정부를 구성했지만 2년 반의 긴축에 지친 시민들은 연일 시위를 벌였다. 당시 좌파연합 시리자는 긴축에 반대하는 공약을 제시해 기존 양대 정당을 위협하며 5월 총선에서 간발의 차로 2위로 등극했다.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그해 7월 구제금융 신청의 마지노선인 7%를 훨씬 넘어 유로존 위기가 확산되는 중이었다.
당시 유럽연합(EU)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의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위원장은 유로존 몇몇 중앙은행장과 긴급 비상회의를 했다.
톰슨로이터는 올 세계경제의 4대 변수로 미국의 금리인상, 유가 및 우크라이나 사태, 유로존 경제위기의 재발 등을 꼽았다. 그리스의 정치위기가 재발하면서 유로존, 유럽경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여주고 있다. 해결책은 그리스의 부채를 일부 탕감해주고 긴축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 성장촉진책도 동반해야 한다. 그러나 유로존 해결책을 주도하는 독일은 국제통화기금(IMF) 및 유로존 다른 회원국의 이런 요구에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해 왔다.
독일의 이런 강경 방침은 그리스의 정치 판도 재편에 촉진제가 됐다. 2010년 5월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기 전 의회에 진출하지 못했던 좌파연합 시리자가 이제 1당 자리를 넘보게 된 것은 경제위기 때문이다. 기존 정당에 실망한 그리스 시민들은 구제금융 거부와 연금삭감 중지 등을 내세운 시리자를 지지하게 됐다. 마르크스주의자 등 다양한 좌파가 연합한 시리자는 풀뿌리에서 출발해 시민단체에서 시민과 호흡하며 세력을 키워왔다. 구제금융 이후 그리스는 '철밥통'이던 공무원의 해고와 공공임금의 20~30% 삭감, 연금수령액 축소 등 금융지원에 부가된 조건을 이행해 왔다. 시민의 시리자 지지를 우매하다거나 시리자를 포퓰리스트 정당이라고 무시해버리는 것은 상황의 심각함을 모르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족국가, 세계화라는 세 개를 다 가질 수는 없다. 셋 가운데 두 개만 선택 가능하다는 게 미국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의 주장이다. 이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다.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은 노동조건 및 환경 등 각종 규제 철폐를 요구한다. 주권을 행사하는 게 민족국가이고 시민은 기본적 생활과 인권을 요구한다. 따라서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한다면 세계화를 버리고 민주주의와 민족국가를 선택하는 셈이다.
우리는 흔히 세계화는 일부에게는 손해지만 시민 전체에는 이익이라는 담론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그리스 위기는 이런 담론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리스가 세계화를 선택해 구제금융 조건을 계속 지킨다면 그리스 민주주의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 경제위기는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2500년 전 아크로폴리스에서 민주주의를 처음 시행했던 그리스는 21세기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민주주의의 귀중함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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