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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돌아온 장충체육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14 17:01

수정 2015.01.14 17:01

[fn스트리트] 돌아온 장충체육관

마땅히 즐길 거리가 없었던 1960~1970년대에 온 국민은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프로 레슬링과 복싱 경기에 열광하며 가난하고 고단한 생활의 시름을 잊곤 했다. 국내 최초의 실내체육관인 장충체육관은 숱한 명승부가 펼쳐진 스포츠 역사의 현장이었다. '박치기 왕' 김일은 1967년 프로레슬링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고 1975년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와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 함경남도 북청에서 월남한 김기수가 1966년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를 물리치고 최초의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에 오른 곳이기도 하다.

1980년대 농구대찬치에서 현대전자 이충희와 삼성전자 김현준, 두 '슛쟁이'의 대결이 벌어지는 날 '오빠부대'가 표 사려고 텐트까지 동원할 정도였다. 무명의 이만기는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며 초대 천하장사에 올라 전국적인 씨름 붐을 일으켰다.
장충체육관은 정치적 공간이기도 했다. 1971년 유신개헌을 단행한 박정희 대통령은 이듬해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체육관 선거'로 제8대 대통령에 올랐다. 이후 최규하, 전두환 대통령도 그렇게 선출됐다.

장충체육관은 서울시가 1955년 세워진 육군체육관을 개보수해 1963년 2월 문을 열었다. 필리핀이 지어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낭설이다. 서울시가 예산을 대고 당대의 건축가 김정수가 디자인, 최종완이 구조설계를 맡아 삼부토건이 시공을 했다. 당시로는 획기적인 철골 트러스트 돔 설계를 채택해 큰 화제를 모았다.

스포츠 메카로 명성을 떨치던 장충체육관도 1980년대 말 이후 실내 스포츠 경기가 잠실체육관 등으로 옮겨가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99년 민간에 운영을 맡기면서 스포츠보다는 콘서트, 마당놀이 같은 이벤트 행사가 빈번히 열리더니 나중에는 의류 '땡처리' 행사장으로 전락했다. 2007년 동대문운동장이 헐릴 때 함께 철거될 뻔했으나 서울시는 검토 끝에 리모델링을 결정했다. 그리고 오는 17일 2년8개월간의 공사를 마치고 장충체육관이 다시 문을 연다. 지하 1층, 지상 3층에서 지하 2층, 지상 3층으로 커졌고 연면적도 8385㎡에서 1만1429㎡로 늘어났다. 전체적으로는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다 한다.


장충체육관은 지난 60년간 굴곡어린 한국 현대사의 현장을 지켜온 증인이다. 역사적 가치를 지닌 명소가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니 더없이 반갑다.
항상 시민 곁에서 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복합 스포츠·문화공간으로 과거의 명성을 재현했으면 좋겠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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