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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저성장'의 신호들

전용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25 17:08

수정 2015.01.25 17:08

[차장칼럼] '저성장'의 신호들

그 책을 선물받은 지 9년 만에 다시 집어 들었다. 제목이 주는 왠지 모를 불안감(?) 때문에 이사와 몇 번의 책 정리에도 용케 책장 한쪽에 살아남았던 그 책. '노인들의 사회, 그 불안한 미래'란 제목의 책이다. 당시 한화증권 대표를 지냈던 진수형 현 한국IR협의회 회장이 출입기자와 간담회를 열고 선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 앞표지 바로 뒤에 2006년 1월 17일이라고 선물받은 날이 선명하게 적혀있다.

저자는 세계 최고 투자은행인 블랙스톤그룹의 공동창업자인 '피터 G 피터슨'이다. 리처드 닉슨부터 빌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미국 역대 대통령의 자문역을 맡았다.
그는 '미국은 더 늙기 전에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저서를 통해 이미 미국의 고령화 위기를 지적한 바 있다. 이 책을 통해 전 세계 고령화에 대해 경고하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1997년부터 집필했고, 한국에 선보인 것은 2002년이다.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던 것은 책을 선물받고 잠깐 책장을 넘길 때 힐끗 본 각종 그래프에서 반등하거나 꺾이는 분기점이 2015~2020년 사이였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996년 내놓은 자료에선 선진국에서 2000년에는 4.5명이 한 명의 노인을 부양했지만 2010년에는 4명, 2020년에는 3.1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하는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OECD가 2014년 조사·발표한 자료에서 이탈리아(2.78명), 일본(2.19명), 스웨덴(2.93명) 등은 이미 2020년 통계를 넘어섰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책 부록에서 2001년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 인구 추계'를 소개해 놨다. 2013년 인구가 5000만명을 돌파해 2023년을 정점으로 감소한다고 밝혔다. 실제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명을 돌파한 해는 2012년 6월이다.

책을 선물받기 불과 두 달 전인 2005년 11월, 당시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있던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증권거래소(현 KRX) 기자실을 찾았다.

리서치센터장이 돌아가며 정기적으로 브리핑한 탓에 그리 신경쓰지 않았는데 '저성장'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하는 바람에 눈길이 갔다. 그는 2006년 증시 화두로 '저성장'과 '재평가'를 제시하면서 "한국 경제는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어 기업들의 매출 증가세가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10여년 전의 얘기를 다시 꺼낸 것은 최근 우리나라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저출산.고령화'와 '저성장'이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시그널을 보냈지만 다만 외면했을 뿐이다. 그 결과가 고스란히 증권시장에 나타나고 있다.

몇 년째 박스피(박스권 코스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증시가 활력을 잃자 지난해 수많은 증권맨이 짐을 싸 여의도를 떠났다. 증권사가 몰려 있는 동여의도가 저출산과 저성장의 직격탄을 맞아 고사되고 있지만 국회 등 정치권이 자리를 잡은 서여의도는 이 같은 동여의도 상황을 모르는 척한다. 말 그대로 '강 건너 불구경'이다.

최근 인구통계는 '저출산.고령화' 가속화를 예측하고 있고 한국 경제를 이끄는 기업들의 미래를 담은 증권시장의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예측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예언의 영역이 아니다. 이런 예측들은 국민을 대신해 정치권이 있는 서여의도에 경고하고 있다.
제발 이런 소리 없는 경고를 정치권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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