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람이 물에 빠져 죽게 생겼는데 먼저 살려놓고 보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다. 물에서 꺼내기도 전에 보따리부터 달라는 격이니…." 한 경제단체 임원은 정부와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법인세 인상 논쟁이 현재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적절치 않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국내 기업들은 실적부진에 빠져 법인세 납부액마저 줄어들고 있다.
세수확충을 위해서는 경기부양 효과를 반감시키는 법인세 인상보다는 규제 철폐나 구조개혁 등을 통한 경제활성화가 우선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30대 기업 법인세 더 줄어든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재벌닷컴 등에 따르면 공기업 및 금융회사를 제외한 국내 주요 30대 기업의 연결재무제표 기준 2014회계연도 법인세 비용은 15조2577억원으로 추정된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법인세 비용은 4조4806억원으로 전년보다 43.2%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 감소액만 3조4089억원이다. 현대자동차는 2조7032억원에서 2조3018억원으로 14.8%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기아자동차 역시 1조115억원에서 8227억원으로 18.7% 줄었다.
정유화학·중공업 등 업황부진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SK이노베이션의 법인세는 3604억원에서 496억원으로 86.2% 급감할 것으로 예측됐다. 삼성중공업과 효성은 감소율이 각각 77.3%, 64.2%일 것으로 보인다. 에쓰오일, SK네트웍스, 두산중공업 등은 세전이익 적자전환 등의 이유로 법인세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법인세는 작년 실적 등을 기준으로 올해 낼 세금이 결정된다. 30대 기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1092조6112억원으로 전년보다 1.0% 감소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전년 대비 18.5%, 18.6% 각각 줄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영업이익과 순이익뿐만 아니라 이례적으로 매출까지 감소했다"며 "세전이익이 급감하면서 법인세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증세보다는 규제개혁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법인세 인상을 통해 세수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현재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법인세를 인상해도 세수 확대가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증세보다는 경제활성화를 위한 규제개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학수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재정여건을 고려하면 감세는 쉽지 않다"면서도 "규제완화 등 경제적 자유도 제고에 힘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사전규제를 사후규제로 바꾸는 방식으로 서비스산업 등의 진입장벽을 낮춰 경쟁국 수준으로 기업경영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내수시장이 작아 법인세율이 높아지면 기업의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수출 44.8%, 수입 42.5%를 합친 87.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8번째로 높다.
높은 무역의존도를 고려하면 한국의 법인세율 24.2%는 매우 높은 편이다. 법인세율 순위로 따지면 22위로 중하위이지만 무역의존도 30위 영국(24.0%), 24위 캐나다(26.1%)의 법인세율과 비슷하다. 한국을 제외한 무역의존도 상위 10개국의 법인세율 평균은 21.65%, 하위 10개국은 29.25%다. 특히 한국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7개국 가운데 법인세율이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벨기에(34.0%)와 네덜란드(25.0%)뿐이다.
ironman17@fnnews.com 김병용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