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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통일로 30년] <3부·끝> 2015년 통일준비 골든타임.. 통일 제언을 듣는다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02 17:03

수정 2015.03.02 17:03

"우리 정치·사회 시스템부터 '통일 친화적'으로 바꿔가야"

4 양창석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감사

양창석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감사 사진=박범준 기자 ■약력 △56세 △경북대 경영학과 △영국 런던정경대(LSE) 석사 △단국대 정치학 박사 △주미대사관 통일관 △통일부 정세분석국장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
양창석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감사 사진=박범준 기자 ■약력 △56세 △경북대 경영학과 △영국 런던정경대(LSE) 석사 △단국대 정치학 박사 △주미대사관 통일관 △통일부 정세분석국장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


"통일은 두 개의 국가가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우선 남북한의 제도를 어떻게 합쳐 나갈지 지금부터 연구해야 한다. 가령 우리 정치와 사회 시스템이 '통일 친화적'인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양창석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감사는 지금부터라도 통합을 염두에 두고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 이후 우리나라는 통합과 화합을 추구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현재의 정치 시스템으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밖에 의료체계, 군대 등을 통합하기 위한 제도들을 지금부터 연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양창석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감사는 지난 2013년 남북회담본부장을 끝으로 퇴임하기 전까지 통일부에서 31년간 근무한 북한 전문가다.
독일 통일 직후인 1992년부터 1995년까지는 독일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면서 독일 통일 주역들을 일일이 면담해 그 노하우를 습득했다. 그때 취재한 이야기들을 엮어 '브란덴부르크 비망록'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양 감사는 지금도 한달에 서너 차례씩 개성을 드나들면서 북한 사회를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그에게 과거와 지금까지 북한 시민사회의 변화와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모습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공직에 있을 때부터 업무상 북한을 자주 방문하고 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북한 주민의 삶이나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나.

▲1999년 11월 처음 북한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2007년 정상회담 때 마지막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또 지난해 개성 시내를 보고, 북한을 자주 왕래하는 사람들 말을 모두 종합해보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우선 북한 사회를 얘기할 때 평양과 비평양을 구분해야 한다. 평양을 기준으로 볼 때 1999년부터 2007년 사이 외형상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시내에 '유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아파트에 유리창이 없거나 한겨울에도 기차가 유리창 없이 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이 2005년 유리공장을 북한에 준공한 이후에는 대부분 유리창을 달고 있다. 또 주민의 옷차림이 완전히 바뀌었다. 요즘은 북한 시내에서 인민복 입은 남성과 개량한복을 입은 여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치사회적 변화로는 배급제가 폐지되고, 시장이 확대됐다.

―북한의 사회변화가 체제 불안정에 미치는 영향도 많을 텐데.

▲이것이 가져온 결과는 북한 정권의 주민통제 수단 약화다. 또 조선노동당의 권한 약화와 북한 사회 내에 빈부격차가 발생했다. 한쪽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는데 다른 쪽에서는 벤츠 같은 수입차를 타고 수입제품을 쓰고 고급 호텔에서 외식을 즐기는 계층이 생겨난 것이다. 공산주의는 '평등'이 기본 사상인데 이런 빈부격차는 기본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북한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도 급격히 변화했다. 북한은 지금도 남존여비 사상이 강해서 여성이 노동에 많은 부분을 전담했는데, 지금은 이런 구조가 바뀌고 있다. '장마당'에서 장사를 통해 경제권을 획득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자연스럽게 사회적 지위도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북한 드라마에 반영될 정도로 뚜렷하다. 또 시장이 확대되면서 외부 물자와 정보가 북한 사회로 대량 유입되고 있다. 특히 남한 제품과 영화, 드라마 등이 들어가 우리의 발전상을 북한 주민이 알게 됐다.

―북한이 생산력 증대를 위해 개혁조치들을 도입했다. 어떤 변화가 생겼나.

▲모든 것이 국가 소유이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인민생활 개선을 위해 '경제개선조치'를 취하면서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고,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 도입됐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2012년 6·28조치, 2014년 5·30 조치로 농장 운영에서 '분조제', 공산품 생산 현장에서 자율경영 보장 등이 실시됐다. 이런 제도 개선은 북한 사회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분조제는 과거 집단농장에서 수확해 배급하던 방식을 벗어나 4~6명의 분조에게 농장 구역을 맡기고 수확물의 70%를 국가에 내고 나머지는 본인들이 가져가도록 한 것이다. 일한 만큼 자기 몫이 늘게 되니까 퇴근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공산품을 생산하는 기업소와 협동조합에서도 과거에는 생산제품 종류와 수량을 모두 국가에서 지정해 줬지만 이제는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국가에 내야 할 분량을 제외한 나머지 이익은 모두 자신들이 나눠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런 제도 개선은 모든 부분에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방법인데, 북한 사회에서 이를 모두 반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당과 군부 등 소위 보수세력들이 반발심을 가질 수 있다. 무역이나 생산활동을 통해 경제력을 축적한 새로운 계층이 북한 내부에서 영향력을 키우면 군부와 노동당의 지배력은 줄어든다.

―통일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통일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개의 국가와 제도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인데, 우선 두 단계로 나누어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첫번째는 정치적 통일까지 과정을 민주적·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과제이고 둘째는 교육과 의료, 사회보장, 군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통합을 달성하는 것이다. 첫번째는 북한 정권 변화와 북한 주민의 대응, 주변국 정세 등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가 준비돼야 하는데, 우리 힘으로 이런 변화를 만들어내거나 이끌기는 어렵다. 그러나 두번째는 지금부터라도 당장 시작할 수 있다. 독일처럼 한국의 법과 제도를 통일에 일방적으로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남북한 제도를 융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현재의 정당시스템이나 의료, 교육 등에서 통합을 위해 우리 제도를 '통일친화적'으로 바꾸기 위한 연구를 미리부터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을 분야별로 총동원해 심층적인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 내 모습이 과거와 달리 변화한 부분이 있나.

▲2013년 개성공단 가동중단 사태 이후 정상화 조치에 합의했지만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인터넷 사용 허용과 상시통행 등은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 스마트폰도 여전히 쓸 수 없다. 그런데 평양은 외국인에 한해 선불 유심 카드를 판매하고 있다. 과거에는 입국하면서 모든 휴대폰을 맡겨야 했지만 이제는 선불 유심을 자신이 사용하던 스마트폰에 꽂으면 인터넷이나 모바일 메신저 등을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에서 유명한 메신저 애플리케이션도 쓸 수 있다. 개성공단에도 이런 것들이 허용되기를 희망해 본다.

―저서 '브란덴부르크 비망록:독일통일 주역들의 증언'(2011)을 낸 바 있다. 독일 통일에 대해 자세히 접하면서 느낀 점은.

▲독일 통일은 동독의 붕괴, 국제적 냉전 종식, 서독의 통일역량 등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서 이뤄졌다. 이는 확률적으로 매우 낮은 조합이며 결과다. 독일 사람들은 이를 '신의 축복'이라고 말한다.
북한 내부의 변화나 국제적 환경은 우리 노력으로 달성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스스로의 통일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할 수 있다. 경제적·재정적 능력과 사회복지 역량을 갖춰야 한다.
또 소통과 합의의 문화를 길러내는 것이 통일 준비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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