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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름] 한국 ICT의 비상을 기대하며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04 17:42

수정 2015.03.04 17:42

[이구순의 느린 걸름] 한국 ICT의 비상을 기대하며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기자로서 올해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는 오랜만에 흥분을 느끼는 행사다. 연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날아오는 소식은 '드디어 한국 ICT 기업들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구나. 곧 문제를 풀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지난 2~3년간 ICT 기자로서 본 한국ICT는 참 답답하고 우울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이 추락한다는 소식을 독자에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 통신사들은 매일 좁은 시장에서 서로 상처내고 할퀴는 싸움박질 기사를 쏟아냈었다.

'싸움의 방식이 이런 게 아닌데…. 이런 방법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는데…' 하는 생각에 기사를 쓰면서도 우울했다.


그런데 MWC 2015를 통해 달라진 한국 ICT기업들의 문제풀이 방식이 보인다. 달라진 문제풀이 방식은 '움켜쥐지 않는 것'이었다. MWC 2015 개막 전날 전 세계를 흥분시킨 삼성전자의 갤럭시S6. 디자인이나 기능이 최고인 것은 삼성전자의 작품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내가 흥분한 것은 갤럭시S6 공개 이후 들려오는 작은 소식들이다.

세계 최대 가구회사인 이케아가 갤럭시S6의 무선충전을 지원하는 가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스타벅스는 무선충전 테이블을 전 세계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세계의 카드사들은 삼성페이를 지원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갤럭시S6가 시장에 나오기 전부터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장동현 SK텔레콤 사장은 사장 취임 후 첫 공식 외부행사인 MWC 2015 참관에서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 부스들을 찾았다. 장 사장은 "스타트업들의 강점을 발굴해 이를 적극 활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과거 삼성전자나 SK텔레콤은 뭐든지 혼자 다 하려고 나섰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를 키우겠다며 국내 소프트웨어 인재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삼성이 혼자서 스마트폰도 만들도 소프트웨어도 다 만들겠다는 욕심이었다. 결과는 탐탁지 않았다.

SK텔레콤은 금융사업도, 콘텐츠사업도 혼자서 하겠다며 잇따라 서비스를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규제도 늘어났다. 역시 결과는 낙제점이었다.

그러나 MWC 2015라는 행사를 통해 보여준 모습은 확실히 달라졌다. 몇 년 전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출시했을 때 세계 음반업계가 스스로 움직이면서 아이폰의 콘텐츠가 되겠다고 나서는 생태계 조성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흥분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유레카'를 외치고 싶어진다. 사실 ICT산업은 이제 단순히 휴대폰 한 대 사서 전화 통화하는 산업이 아니다. 누구나 알 듯 자동차도 통신으로 움직여야 하고, 금융도 스마트폰 안에서 해결된다. 그러니 용빼는 재주를 가진 기업이라도 혼자서 ICT사업을 할 수는 없다.
이제 한국 ICT 기업들은 '모든 것을 움켜쥐려는' 방식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년간 풀리는 일도 없고, 좁은 우물 속에서만 아옹다옹하던 한국 ICT가 이제 다시 비상(飛上)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나도 이제 애플, 구글이 아닌 한국 ICT 기업들의 활약상을 기사로 쓸 수 있겠구나 싶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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