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를 바꾸는 손길 식수·교통난 해소 등에 대외협력기금 적극 지원 자바섬 젖줄 수질 개선도
원조 주는 나라로 印尼서 1호사업 시작으로 52개국 11조6000억 지원 각국들 "한국과 더 협력"

【 자카르타(인도네시아)=김승호 기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남쪽으로 40~50㎞ 거리에 있는 보고르. 이곳에는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던 1882년 당시 설립된 최초의 국립병원인 마르조에키 병원이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종합병원으로 탈바꿈했지만 장비와 의료진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의료수준은 낮을 수밖에 없었고, 인근에 사는 환자들은 대중교통으로 서너 시간 걸리는 자카르타로 나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의 도움을 받아 CT스캐너, 구급차, 치과용 장비, 유아용 인큐베이터 등 첨단장비를 들여놓을 수 있게 됐고, 암 등 치명적 질병을 제외한 상당한 수준의 진료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자카르타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여 거리에 위치한 반텐의 국가정보통신교육원. 2010년 문을 연 이후 국가 공무원뿐만 아니라 주부, 학생 등 일반인들에게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비롯해 방송기술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교육하고 있는 이곳은 총 사업비 2680만달러 가운데 2100만달러를 EDCF로부터 지원받아 해결했다.
특히 이 같은 실행력과 성과는 공적개발원조(ODA)와 더불어 우리나라-개발도상국 간 경제협력의 또 다른 축인 지식공유사업(KSP)을 통한 정책자문에서 비롯되고 있다.
■KSP, 韓 개발 노하우 씨 뿌리다
인구 2억4700만명으로 세계 4위, 넓이 190만㎢로 한반도의 약 9배, 동에서 서까지 비행기로 7시간이나 걸리는 광활한 국토면적과 수많은 지하자원으로 잠재력이 풍부한 인도네시아. 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 3510달러(2013년 현재), 자카르타 등 주요 도시 24시간 상습정체, 하루에 두세 차례씩 발생하는 정전사태, 식수가 불가능한 수돗물 등 갈 길이 먼 이곳에 우리나라의 KSP가 곳곳을 변화시키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총괄하는 KSP는 우리의 경제발전 경험을 토대로 개발도상국과 지식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 인도네시아에서만 2005년 첫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난해까지 총 46개 주제의 자문을 진행해왔다.
지난해엔 공공기관 관리방안, 신용보증제도, 세정개선, 행정개혁의 4개 사업이 실시되기도 했다.
외부 기관 참여도 활발하다. KSP사업에 민간 참여가 허용된 이후 삼정KPMG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가나, 미얀마, 파키스탄 등에서 KSP를 진행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삼정은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와 함께 인도네시아 현직 장관 등과 고위정책대회를 열어 개발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의 노력을 하기도 했다. KDI 하병진 전문위원은 "KSP는 특히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직들이 서로 만나 소통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협력과제를 모으고 이에 대한 실행방안을 찾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면서 "인도네시아의 경우 경제개발, 금융, 에너지, 보건, 물관리, 재정정보 등 여러 분야에서 자문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바섬 중서부의 반둥(상류)에서 서부인 자카르타(하류)로 흐르며 우리의 한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치타룸강도 KSP를 통해 수질개선 노력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인도네시아 국가개발기획부 압둘 말릭 수자원관리과장은 "치타룸강은 상·하류 주변에만 13개 도시에 걸쳐 총 3000만명가량이 거주하고, 하류에는 브카시 등 대규모 한인공단이 위치해 있어 식수·수자원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라면서 "(KSP를 통해)수질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었고, 한국을 방문해서 관련 정보를 많이 배워왔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는 2010년 인도네시아를 KSP 중점지원국으로 지정하고 수자원관리방안에 대한 정책자문을 한 뒤 반둥 상수도시스템 구축사업(2013년)과 치타룸강 유역 홍수예경보시스템 구축사업(2015년)을 각각 착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대규모 자금이 투자되는 치타룸강 유역 내 카리안댐 건설에는 EDCF을 통해 1억달러가 지원되기도 했다.
EDCF 자카르타 사무소를 총괄하고 있는 한국수출입은행 엄성용 소장은 "25~40년의 장기간 낮은 금리(0.01~2.5%)로 빌려주는 EDCF는 개도국의 경제·사회 인프라 건설을 돕는 증여성 차관으로 개별 나라들이 차관을 갚으면 이를 다시 다른 나라에 빌려주는 등 선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면서 "특히 인프라 건설에는 국내 기업이 참여하기 때문에 이들의 해외진출에도 매우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원조받던 한국 '원조 실천'
기재부에 따르면 1987년 처음 설립된 EDCF는 지난해 말까지 전 세계 52개국에 걸쳐 337개 프로젝트에 총 11조5965억원이 지원됐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1987년 당시 '파당시 우회도로' 건설을 위한 EDCF 1호 사업을 시작한 상징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EDCF는 지난해까지 인도네시아에만 19개 프로젝트에 6045억원이 지원됐다. 액수로만 베트남, 방글라데시, 필리핀, 캄보디아, 스리랑카에 이어 여섯번째다.
보고르 마르조에키 병원은 자카르타, 반둥, 발리에 있는 4개 종합병원과 함께 총 2400만달러의 EDCF가 지원돼 81종류의 장비, 총 1600여개가 새로 설치됐다. 이 병원은 하루 평균 700~800명의 현지 환자가 이용하고 있다. 에리 총병원장은 "(EDCF 지원 전에는)간단한 방사선 장비만 있어서 정밀진단이 불가능했지만 CT스캐너 등이 들어오면서 환자를 위해 정밀진단이 가능해졌고 의료의 질이 매우 높아졌다"면서 "특히 정신재활치료에 특화된 병원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의료 선진국, 특히 한국과 더 많은 연계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EDCF가 투입된 국가정보통신교육원 역시 세미나룸, 기숙사, 방송스튜디오, 강의실 등의 시스템을 갖추고 인도네시아의 ICT 교육 허브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교육원 건립에는 우리나라에서 KT가 시스템 공급으로, 중소기업인 대영유비텍이 컨설턴트로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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