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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넌 아직도 보기만 하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30 17:06

수정 2015.03.31 14:02

투자하고, 아이디어 내고.. '관객참여형 공연' 끝없는 진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4060 서포터즈 연습모습 보면서 주인공과도 인터뷰
쓰루 더 도어.. 엔젤 클럽 관객들을 투자자로 만들어 수익 공유
위키드.. 제작현장·오픈리허설 공개 제대로 입소문 나면서 최다관객 동원
오페라의 유령.. 팬텀 원정대 오래된 팬들 위해 필리핀 공연 초청
세종문화회관.. 시민평가단 SNS로 남긴 아이디어들 공연에 반영

'오페라의 유령' 팬필 멤버십 카드
'오페라의 유령' 팬필 멤버십 카드


1. 경기도에서 오토캠핑장을 운영하는 김은성씨(51)는 최근 예술의전당 기획 연극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4060서포터즈'로 활동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연극이 개막하기 전부터 백스테이지 투어, 연습실 참관 등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활동을 통해 공연예술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고 있다. 지난 27일에는 일일 기자가 돼 이 연극의 주인공인 배우 노주현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인터뷰 내용은 자신의 블로그에 포스팅했다. 김씨는 "인터넷을 통해 20~30대의 관객들이 공연문화를 즐기는 걸 보며 항상 부러운 마음이었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다"며 "중장년층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아주 반갑다"고 말했다.

2. 대학생인 김이레씨(23)는 세계 초연 뮤지컬 '쓰루 더 도어'의 투자자가 됐다.
수입이 없는 김씨가 큰 액수의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단지 한 장의 티켓 구매로 '엔젤 투자자'가 된 것이다. 김씨는 "세계 초연 뮤지컬의 투자자로서 작품에 더 애착이 가게 됐다"며 "5만점을 모아서 다시 한번 공연을 볼 생각이다"라고 했다.

진화하는 '참여형 공연'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기존의 관객 참여 공연이 무대와 객석을 허무는 연출, 출연·제작진과 대화 등 공연장 안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관객이 공연의 투자자가 되고 공연 기획의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관객이 공연에 깊숙이 관여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애착이 높아지고 이는 훌륭한 마케팅 전략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모양새다.

오는 4월 2일 개막하는 연극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개막하기 약 2개월 전부터 '4060 서포터즈' 운영으로 중장년층 관객을 공략하고 있다. '서포터즈'라고 하면 공연에 관심이 많고 블로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용이 능한 20~30대 젊은이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4060 서포터즈'는 적극적인 문화 참여에서 소외된 중장년층으로만 구성됐다는 게 핵심이다. 남선우 예술의전당 공연기획 담당자는 "문화생활 참여에 수동적인 중장년층들이 새로운 경험과 또래 간의 친목 도모를 통해 적극적인 문화소비층으로 변해가고 있고 이는 연극 관람층 확대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6월 7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쓰루 더 도어'는 "관객들을 투자자로 모신다"는 슬로건 아래 확실한 지지층을 구축하고 있다. 자금이 부족한 신생 벤처기업에 개인투자자들이 자본을 투자하는 '엔젤 투자' 개념을 공연 마케팅에 접목시킨 것. 지정된 회차를 예매하면 40% 할인과 함께 '엔젤 클럽'에 가입되며 이 회차가 매진될 경우 투자자는 티켓 정가의 10%를 포인트로 돌려받는다. 투자에 대한 수익금 개념이다. 매진이 되지 않더라도 지정회차를 예매하기만 하면 10%의 적립금이 발생한다. 제작사인 간프로덕션의 김민지 홍보팀장은 "세계 초연 뮤지컬이다보니 더 많은 관객들과 '쓰루 더 도어'가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하고 싶었다"며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4060 서포터즈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4060 서포터즈


사실 그간 '서포터즈'에 대해 관객들을 무임금 홍보 요원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반 관객들은 알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며 오히려 각광받는 추세다. 지난해 국내 뮤지컬 사상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위키드'는 제작현장과 오픈리허설 공개로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참여한 관객들은 너도나도 오픈 리허설 후기를 올렸고 공연 홍보에도 자연히 도움이 됐다. 오래된 팬층이 두터운 '오페라의 유령'의 경우 지난 2012년 25주년 기념 내한공연을 앞두고 '팬텀 원정대'를 뽑아 필리핀 마닐라 공연을 관람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설앤컴퍼니 노민지 과장은 "우리가 제작한 작품에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사랑해주는 관객에 대한 보답의 의미가 크다"며 "관람 후기나 활동 사진을 올리는 것은 자율적으로 맡긴다"고 말했다.

관객들의 공연 참여는 새로운 공연 기획의 아이디어가 되거나 재공연의 질을 높이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가령 세종문화회관의 '시민평가단'은 세종문화회관의 자체기획 공연, 전시, 축제 등을 관람한 뒤 개인 블로그나 SNS를 통해 후기를 남기고 평가서를 통해 새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이는 실제로 공연기획과 제작에 반영되기도 한다. 박향미 세종문화회관 홍보담당자는 "시민평가단의 활동은 단기간의 서포터즈를 넘어서 활동이 끝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세종문화회관 공연에 관심을 갖고 공연장을 찾는 관객층으로 유지된다"고 말했다.


성용준 고려대 소비심리학 교수는 "소비자의 행동 패턴이 '바잉(buying)'에서 '해빙(having)'으로 진화하듯 관객들도 공연과 관련된 경험, 자신의 기여도를 중시한다"며 "공연 제작사들이 이를 충족시킴으로써 관객의 공연에 대한 애착을 높이고 이는 지속적인 관람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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