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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연말정산, 평균의 함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07 16:58

수정 2015.04.07 16:58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8180달러로 집계됐다. 우리 돈으로 3000만원 꼴이다. 3인 가구라면 9000만원, 4인 가구라면 1억원이 넘는 큰돈이다. 우리집이 이렇게 큰 부자라고 느끼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1인당 소득은 산술평균값이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어느 마을에 딱 2명이 산다고 치자. 하나는 억만장자, 다른 하나는 하인이다. 주인은 연 10억원을 벌지만 하인은 연봉 2000만원을 받는다. 이 마을의 산술평균 소득은 5억1000만원이다.

미국 통계학자 대럴 허프는 '새빨간 거짓말, 통계'라는 책에서 "통계는 사물을 과장하거나 극도로 단순화하기 위해 자주 이용된다"고 말한다. 통계를 정직하게 활용하지 않으면 '황당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 마을의 평균소득 5억1000만원은 누가 봐도 말장난이다.

중앙값·최빈값은 산술평균값의 한계를 극복할 때 쓴다. 한 마을에 다섯명이 산다고 가정하자. 소득분포는 1억·3000만·2000만·1000만·1000만원이다. 중앙값은 죽 펼쳤을 때 가운데 있는 값이다. 여기선 2000만원이 중앙값이다. 산술평균(3400만원)보다 훨씬 적다. 최빈값은 가장 자주 등장하는 값이다. 여기선 1000만원이다. 역시 산술평균을 크게 밑돈다.

7일 정부가 2014년분 연말정산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내놨다. 연 소득 5500만원 이하 납세자 가운데 85%는 세 부담이 그대로거나 되레 줄었다는 게 골자다. 문창용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세법 개정에 따른 세 부담이 세금폭탄 수준은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연초 연말정산을 둘러싼 논란이 공연한 소동이었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과연 그럴까. 5500만원 이하 납세자 가운데 15%는 세금이 늘었다. 15%면 무려 205만명이다. 이들은 평균 8만원, 총 1639억원을 더 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수십만원을 더 낸 사람도 수두룩하다. 납세자에게 산술평균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내 지갑이다.

15%를 가볍게 여기는 듯한 정부의 태도는 잘못이다. 당초 정부는 5500만원 이하 구간에선 세 부담이 늘어나지 않을 걸로 예측했다. 그런데 큰 오차가 났다.
85%를 맞혔다고 자랑할 게 아니라 15%를 향해 미안하다고 머리를 숙이는 게 도리다. 환급으로 할 일 다 했다고 여긴다면 오만한 정부다.
기재부는 '평균의 함정'에 깊이 빠져 있는 듯하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