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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눈물의 땡처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09 17:08

수정 2015.04.09 17:09

불경기에는 장사가 없다. 길어지는 경제침체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데다 온라인 쇼핑으로 이동하자 유통업체들이 수단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할인 폭과 할인 기간을 점점 늘리다가 수시 세일, 상시 세일을 하더니 이마저도 안 통하자 강도가 더 높은 땡처리 세일에 나섰다. 대형마트와 백화점까지 체면 불구하고 땡처리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내수소비 침체의 그림자를 타개할 방법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2010년 77.3%에서 지난해 72.9%로 하락했다.

콧대 높은 백화점들이 땡처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3년 전인 2012년이다. 그해 경제성장률은 2.3%로 전년(3.7%)보다 크게 밀렸고 소비위축이 두드러졌다. 백화점,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특설행사장을 차려놓고 의류, 패션, 브랜드 명품, 아웃도어, 생활용품 등에 대해 무차별 할인판매를 실시했다. 삼성패션연구소가 그해 패션산업 10대 이슈를 분석하면서 '땡처리'를 첫손에 꼽았을 정도였다. 특히 2013~2014년 겨울에 이어 지난겨울까지 2년 연속 이상고온이 계속되자 패션·아웃도어 브랜드들은 '눈물의 떨이세일'에 나서야 했다.

백화점들의 절박함도 극에 달한 모양이다. 롯데백화점이 10~12일과 17~19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 양재동에 있는 컨벤션센터 세텍(SETEC)을 빌려 생활용품, 골프용품의 '창고개방 세일'을 한다. 국내 백화점이 재고 소진을 위해 대형 전시장에서 '출장 판매'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롯데는 300여개 협력사 제품 150억원어치를 최대 80%까지 할인판매하기로 했다. 각 백화점들은 이달 들어 봄세일을 시작했으나 매출은 제자리걸음이라 한다. 대형마트들도 생필품 가격인하 행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유통업체들의 이 같은 '강수'에도 소비자의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소비행태 변화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싸고 편리한 온라인쇼핑은 유통업계의 전반적인 부진과 반대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온라인쇼핑 매출은 이미 지난해 4·4분기에 대형마트 매출을 추월했다.

백화점이 대규모 땡처리 행사를 빈번하게 기획한다는 사실에서 불황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20여년 전 일본이 꼭 그랬다. 백화점 등 유통업체들은 속속 '가격파괴' 간판을 내걸었고 100엔숍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미 꽁꽁 얼어붙은 소비는 살릴 수 없었고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