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시신에서 그간 정치자금을 건넨 사람들로 추정되는 메모가 발견됐다. 성 전 회장이 사망 직전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현 정권 실세들에게 거액의 돈을 건넸다고 밝힌 마지막 인터뷰가 공개된 데 이어 '정치자금 리스트'로 추정되는 메모까지 발견되면서 검찰 수사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해외자원개발 비리 의혹으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 전 회장이 정치권에 금품을 전달한 정황을 적은 메모를 확보했다고 10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전날 삼성서울병원에서 성 전 회장의 시신을 검시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작은 크기의 메모에는 김·허 전 비서실장 등 10명 안팎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 중 6명은 이름과 금액이 함께 기재됐고 1명에 대해선 날짜까지 표기돼 있다. 이름, 날짜, 금액까지 모두 포함한 전체 글자 수는 56자 정도다.
이 메모에는 두 전 비서실장 외에도 이병기 현 비서실장, 이완구 총리 등 현 정부 핵심 인사를 비롯한 정치인 8명의 이름과 액수등이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메모에 적힌 이들은 전달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경향신문에) 보도된 내용과 메모에 적힌 액수는 일치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김 전 실장 등에게 돈을 건넸다는 내용의 성 전 회장의 인터뷰를 보도한 경향신문 측에도 관련 기록을 요청할 방침이다.
성 전 회장은 전날 오전 6시께 서울 청담동 자택을 나와 경향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 이 인터뷰를 통해 그는 옛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전후한 시점인 2006∼2007년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10만달러(1억여원),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 7억원을 줬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이) 자원 쪽을 뒤지다 없으면 그만둬야지, 부인과 아들에 대한 사항까지 뒤져도 없으니까 1조원 분식 얘기를 했다'며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검찰이 성 전 회장 일가에 대한 혐의와 이명박 정권의 자원외교 관련 사항을 "딜하자"고 말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던졌다.
이같은 성 전 회장의 전화 인터뷰 육성이 담긴 3분51초 분량의 녹취파일도 공개됐다.
이와 관련 검찰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성공불융자금이 기업계좌에도 들어가면 결국 섞이게 된다.
경남기업 수사는 기업비리와 자원개발 비리가 겹치는 내용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분리해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며 "성 전 회장은 한 번 조사받았고, 전 과정에 변호인 3명이 동석했다"고 설명했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와 관련해 검찰은 "메모 내용만으로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무엇을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며 "글씨가 성 전 회장의 필적이 맞는지 필적감정을 의뢰하고, 장례절차가 끝나면 유족과 경남기업 임직원에게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지 제출 요청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메모와 육성파일이 증거능력이 있는지, 성 전 회장의 유족과 경남기업 측이 관련 자료를 보유했는지와 제출 의향이 있는지 등이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할 변수가 될 전망이다.
ohngbear@fnnews.com 장용진 신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