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여의나루] 수술을 위한 마취가 되어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21 16:44

수정 2015.04.21 16:44

[여의나루] 수술을 위한 마취가 되어야

최근 TV·신문 등의 뉴스를 보면 마치 정부와 언론이 합심해 중산·서민층에 주택구입을 부추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부는 금리인하, 분양자격 완화 등 아파트 분양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종합선물세트 방식의 정책을 쏟아붓고 있다. 언론은 아파트 매매거래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보도하다 못해 골디락스까지 들먹인다. 골디락스 경제란 물가상승 없는 이상적인 경제성장을 지칭하는 용어다. 아파트 매매거래가 활발한데 가격은 안정되어 있다는 상황을 분석해준답시고 엉뚱한 용어까지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중산·서민층은 이러한 뉴스에 위안을 받으면서 대책 없이 치솟고 있는 주거비(전세, 월세)의 해결책으로 아파트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중산·서민층이 부동산(아파트)시장의 막차를 타고 있는 정도가 아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기차에 올라타는 격이다. 지나간 시대 부동산 시장의 막차는 10년 후에는 결국 되돌아 왔지만, 이번에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경제의 발전단계는 지난 1960~1970년대의 개발연대 경제도 아니고 1980~1990년대의 고도성장 경제도 아니다. 이미 성숙단계에 들어와 있는 경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저성장시대에 들어온 것이다. 이러한 저성장의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구조상 우리는 지금 매우 의미심장한 연대에 들어와 있다. 금년은 여자인구가 남자인구를 추월하는 해다. 내년은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해다. 후년은 고령사회가 시작되는 해이다. 내후년은 45~49세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해다. 45~49세는 우리나라 소비를 주도하는 연령층이다.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소비 정점이 하락하는 것이다. 소비주도 세력이 줄어든다는 말은 부동산(아파트) 거래시장도 급격히 위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명백하게 인정해야 한다. 첫째 우리나라는 이미 저성장 시대에 들어와 있고, 디플레 시대로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둘째로 모든 분야에서 낙수효과(trickle down)가 순조롭게 작동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를 인정한다면 지금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경기 사이클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현재의 우리 경제상황은 불황이라기보다는 저성장시대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불황을 호황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각종 거시정책은 임시 방편의 의미밖에 없다. 이러한 경기대응책은 이중구조만 확대·악화시키는 것이다. 2008년에 시행한 환율조정 경기대응 방식의 결과는 참혹했다. 대기업조차도 양극화를 심화시키다 못해 중소기업은 키코사태로 초토화되었다. 다른 분야의 양극화 확대는 아예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건설경기를 살려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아파트 분양을 의도적으로 활성화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가 일으켰던 부동산 거품은 더 이상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생애 첫 주택구입 시기도, 큰 집으로 이사하는 시기도 이미 지나가 버렸다. 새로운 세대의 힘(소비)은 극도로 약화될 것이다. 지금 중산·서민층에 주택구입을 권유하는 것은 중산·서민층을 빠져나올 수 없는 빚쟁이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주택구입 장려 등 자산형성 촉진정책은 속성상 인플레시대에만 적용될 수 있는 정책이다. 중산·서민층에는 주택소유보다 전세·월세제도 개선 등 주거비용을 낮추고 주거안정을 도모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국민 기본수요가 저비용으로 조달이 가능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2008년 '환율조정 경기대응 방식'이 단순히 '이자율조정 경기대응 방식'으로만 바뀌어서는 안 된다. 수술을 하기 위해 마취는 필요하다.
그러나 마취만 하고 수술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