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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공무원연금 이게 무슨 '개혁'인가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03 17:15

수정 2015.05.03 17:15

숫자만 바꾼 '손질'에 그쳐.. 국민연금과 불공평 여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2일 공무원연금 '개혁'에 합의했다. 이로써 작년 말 국회 특위와 국민대타협기구가 발족한 이래 넉달 넘게 공방을 벌여온 공무원연금 개혁은 일단락됐다. 두 사람은 모두 차기 대권주자로 물망에 오른다. 판을 깨는 건 둘 다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결과 여야 대표 간 합의문은 근사한 모양을 갖췄다. 당연한 일이지만 두 당 대변인은 공식적인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무성·문재인 양인은 큰 짐을 덜게 됐다. 사실 투쟁을 일삼아온 한국 특유의 정치 풍토에서 두 당이 개혁 시한(5월 2일)을 지킨 것은 칭찬할 만하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60% 룰이 작동하는 현실에서 어느 정도 여야 간 타협도 불가피했다. 한쪽이 모든 걸 가져가는 승자독식 구조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간신히 낙제를 면한 수준이다. 시계추를 돌려보자. 당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의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구조개혁은 궁극적으로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과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지금 공무원들은 퇴직 후 비교적 넉넉한 연금으로 안락한 생활을 즐긴다. 이는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용돈 수준의 연금을 받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부·여당이 개혁의 기치를 든 것은 이 같은 불공평을 바로잡는 목적이 가장 컸다. 불행히도 이번 합의문엔 이런 내용이 쏙 빠졌다.

그래놓곤 엉뚱하게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자는 내용이 합의문에 들어갔다. 이건 월권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나 '공무원연금 개혁 특별위원회'는 국민연금을 놓고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 이번 개혁으로 절약되는 돈이 향후 70년간 총 333조원으로 추정된다. 여야는 이 중 20%를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데 쓰기로 했다. 이 또한 월권이다. 예산편성권은 정부에 있다. 국회는 예산에 대한 심의·의결권만 갖는다. 재정 곧 혈세로 연금을 지원하는 것은 자칫 복지 포퓰리즘으로 빠질 우려가 크다.

국민연금은 오는 2060년까지 펑크가 나지 않도록 설계됐다. 앞으로도 45년은 끄덕없는 흑자 연금이다. 해마다 조(兆) 단위 혈세를 투입하는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보다 훨씬 튼튼하다. 지금은 재정을 갉아먹는 불량연금을 뜯어고치는 데 주력할 때다.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아낀 돈은 국가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데 써야 한다. 그것이 공무원연금을 바꾼 또 다른 목적이다.

김무성 대표는 모수개혁이라는 어중간한 개혁에 합의했다. 기여율·지급률 등 숫자를 손질하는 데 그쳤다. 70년간 333조원이면 한 해 4조7600억원꼴이다. 지급률은 20년에 걸쳐 0.2%포인트 내리고, 기여율은 5년 동안 2%포인트 오른다. 이를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공무원연금 개혁은 노동·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의 시금석이다. 김 대표와 새누리당이 4·29 재·보선 압승의 동력을 바탕으로 개혁의 모범사례를 제시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문재인 대표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논의하는 내내 일반 국민보다 특정 세력을 편드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두고두고 짐이 될 듯하다. '유능한 경제정당'이라는 그의 수권전략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작은 것에 집착하다 큰 것을 잃은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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