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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김정호' 대한민국 국토를 그리는 사람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06 14:33

수정 2015.05.06 15:55

'21세기 김정호' 대한민국 국토를 그리는 사람들

사진설명: 국토지리정보원 공안나·류원일·김현근·박미숙·김승용·김주환·이태경·곽영서 주무관(왼쪽부터)이 국가기본도 제작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다.사진=박범준 기자

'21세기 김정호' 대한민국 국토를 그리는 사람들

사진설명: 국토지리정보원 김주환·이태경 주무관(왼쪽부터)이 항공사진에서 지형지물의 외곽선을 추출하는 도화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수원=윤경현 기자】"국가기본도는 지도의 뿌리입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정확한 국토지도를 갖는게 기본이죠. 국가기본도가 없으면 네이버에서 맛집을 검색하는 것도, 티맵(T map)을 이용해 10년 만에 고향 친척집을 찾아가는 것도 불가능할 겁니다."

국가기본도는 국토 전역에 걸쳐 통일된 축척과 정확도로 제작된 지형도를 말한다.

모든 종류의 지도를 만들 때 기본이 된다. 우리나라는 5000분의 1의 축척으로 국가기본도를 만든다. 공공기관은 물론 인터넷 포털업체나 네비에이션 제작업체 등이 각자의 서비스 및 상품에 맞는 용도로 이를 활용한다. 국가기본도는 공공 및 민간 부문의 활용으로 연간 112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순현재가치는 5991억원에 이른다.

우리나라 국토 면적은 10만㎢다. 5000분의 1 지도를 만들려면 무려 1만7456도엽(장)으로 나눠야 한다. 여기에 건물과 도로, 철도 등 총 678가지, 약 1억개의 지형지물을 표시한다. 지난 2012년 기준으로 도로가 58만㎞, 하천이 43만㎞, 건물이 1550만개 정도다. 2만5000분의 1 지도(866장)나 5만분의 1 지도(229장)에 비해 수십배 힘든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기기본도를 만드는 국토지리정보원에서도 지도 제작에 투입되는 인원은 30명 안팎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업을 전문업체들에 맡기고, 지리원은 결과물을 검수하는 형태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달 30일 오전 경기 수원에 있는 국토지리정보원은 평소와 달리 하루종일 사람들로 북적였다. 국가기본도 제작 용역을 맡은 민간업체들이 그동안의 성과를 검사받는 날이라고 했다.

■국토 담으려면 항공사진 20만장 필요

국가기본도 제작의 첫 단계는 항공 촬영이다. 경비행기에 20억원짜리 카메라를 싣고 다니면서 국토를 샅샅이 담아낸다. 항공 촬영은 연중 계속된다. 하지만 날씨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가 오는 날은 물론이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도 촬영이 힘들다. 비행기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날씨가 맑아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경기 수원 지역의 국가기본도 제작을 맡고 있는 신한항업 최홍기 조사탐사팀장(이사)은 "건물 등의 그림자가 생기게 되면 판독이 어렵기 때문에 보통 해가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오전 10시∼오후 2시에 사진을 찍는다"며 "맑은 날이라야 하루에 찍는 사진은 기껏 500∼600장 정도"라고 설명했다. 류 주무관이 "항공 촬영의 적기는 요즘 같은 봄과 가을"이라며 "낙엽이 많이 쌓여 있거나 수풀이 우거져서도 안 되기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그나마 마음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구역은 우리 국토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공군훈련구역 등을 이유로 촬영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최 이사는 "군부대를 비롯한 보안시설은 지도에 표시할 수가 없다"면서 "군에서 항공사진에 대한 보안검열을 거쳐 지도 상에 나타나지 않도록 위장처리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기 파주나 문산 등 북한과의 접경지역에서는 사진촬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해상도가 떨어지는 위성사진을 활용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발품을 더 팔아야 정확한 지도를 만들 수 있다.

고도 1000m에서 25㎝ 크기의 물건을 식별할 수 있는 해상도로 촬영하며 1장당 5㎢를 담는다. 무엇보다 입체적(3D)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진행방향으로 60%, 인접코스 간에는 30%를 겹치게 찍어야 한다. 김주환 주무관은 "국토 전체를 담으려면 대략 20만장의 사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촬영한 항공사진을 토대로 '도화(圖畵)'를 진행한다. 도화기를 이용, 항공사진 상 지형지물의 외곽선을 추출해내는 작업이다. 3D 영화를 볼 때처럼 특수안경을 끼고 모니터를 바라보면 건물이나 산이 입체적으로 나타난다.

지금은 도화작업이 컴퓨터로 진행돼 그나마 편해졌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항공사진 위에 반투명한 종이를 대고 연필로 그렸단다. 류 주무관은 "연필심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으면 오차가 생기는 탓에 연필심 굵기를 점검하는 현미경이 따로 있었을 정도"라면서 "연필 하나를 오래 쓸 수가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정성을 들여서 연필을 깎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곁에 있던 김 주무관이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건물을 네모 반듯하게 짓는 경우가 드물다"면서 "건물의 모양이 특이하고 복잡하면 지도 상에 표현할 때도 그리기가 그만큼 힘들어진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류 주무관은 "지도제작 장비 등은 선진국에 비해 5년 정도 뒤지지만 지도를 만드는 기술은 선진국 이상이고, 특히 도화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조사팀의 '발품'이 지도의 정확성 높여

그 다음은 도화작업을 통해 만든 지도를 들고 현장에서 눈으로 점검하는 작업이다. 오전 11시께 광교신도시 연무중학교 앞에서 현지조사를 벌이고 있는 신한항업 탐사조사팀을 만났다. 2인 1조로 움직이는 데 한 사람은 5000분의 1 지도를 4배 확대한 2500분의 1지도를, 다른 한 사람은 측량장비를 들고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건물의 층수와 명칭, 대표성 있는 상가 등은 물론 모든 도로의 포장 여부, 차선 등도 확인을 거쳐야 한다. 통상 5월에서 10월까지 진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1년 중 제일 더운 시기를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보내는 셈이다.

류 주무관은 "같은 상가 안에 A병원과 B병원이 있을 경우 하나만 지도에 표시해주면 다른 병원에서 아주 난리가 난다"며 "종교시설도 빼먹으면 종교차별을 거론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이들이 처리하는 면적은 1㎢ 정도다. 20년 경력을 가진 김종복 신한항업 조사탐사팀 부장은 "5000분의 1 지도의 전체 면적이 6.25㎢인 점을 감안하면 사나흘은 걸릴 것"이라며 "수원시만 해도 같은 지도 20장을 조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그래도 도심에서의 조사는 양반에 속한다"고 했다. 산 속에 있는 절이나 기도원 등도 빠트려서는 안 된다.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하면 걸어서라도 가야 한다. 지도에서 표시를 빠트리면 어김없이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는 "초입에 간판이 있어도 맞는 지 확인하기 위해 두세 시간이나 산을 올라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최근 산 속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늘어나 산에 오르는 횟수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사진을 보고 이전에 찍은 사진과 비교해 바뀐 게 있으면 하나하나 확인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요기를 할 만한 식당이 없어 아무 집에 들어가 얻어먹기도 했어요. 사람도 살지 않는 섬에 갔다가 뱀이 너무 많아서 식겁한 적도 있고, 여름에 더위를 피해서 새벽이나 밤에 조사를 하러 다니다 오해를 사기도 했습니다. 비록 민간에서 일하지만 '국가기본도를 만든다'는 사명감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도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뿐인데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것처럼 비춰질 때는 참으로 난감하다. 류 주무관은 이미 소송도 서너 차례 경험했다. 그는 "개발지역에 사는 한 주민이 보상을 더 받기 위해 급하게 유실수를 심고서는 '10년 전부터 심어서 재배해왔다'고 우겼다. 하지만 2∼3년 전 지도를 확인해본 결과 그런 사실이 없었다. 해당 주민은 항의를 하다하다 뜻대로 안 되니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모텔들이 밀집한 곳을 조사할 때는 사진을 찍다가 심부름센터 직원으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고, 재개발지역에서는 지도를 들고 왔다갔다 하니까 개발을 반대하시는 분들이 낫을 들고 쫓아오기도 했다"며 웃었다.

이처럼 현장조사팀이 발로 뛰어 검증한 내용을 보완·편집하면 국가기본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허루 1만4000건 변화에 쉴 틈도 없어

우리국토에서는 하루 약 1만4000건, 연간 500만건이 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는 영국(하루 5000건)의 2.8배에 달하는 것이다. 류 주무관은 "지난 해의 경우 도로·철도 등에서 2269건의 변화가 발생했다"면서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변화무쌍한 곳은 세종시를 품고 있는 충남 공주와 대전 일부"라고 설명했다.

국가기본도는 이 같은 변화를 신속하게 반영하기 위해 2년마다 새로 제작된다. 국토를 서북권(서울, 경기, 충남·북, 전북)과 동남권(부산, 강원, 경남·북, 전남, 제주)으로 나눠 항공 측량에 기반한 기본수정과 수시수정을 병행하고 있다.

류 주무관은 "가끔 '지도가 있는데 왜 또 만드냐'는 얘기를 들으면 힘이 빠진다"며 "사람이 꾸준히 건강관리를 해줘야 하는 것처럼 지도 역시 계속 유지·보수를 해줘야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들어간다"고 부연했다.

올해는 서북권에 대해 기본수정을, 동남권에서는 도로와 철도, 하천, 주요 시설물 등의 변화를 반영하는 수시수정을 진행하고 있다. 류 주무관은 "실시간으로 지도를 업데이트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신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5000분의 1 축척의 전국지도를 가진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와 영국, 일본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국토가 너무 광대한 탓에 2만분의 1이나 2만5000분의 1 지도를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에서는 표시해야 할 지형정보가 워낙 방대해 더욱 세밀한 대축척지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국토지리정보원이 만든 것이 1000분의 1지도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하지 못했고, 최신정보가 생명인 지도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최 이사는 "5000분의 1 지도는 지형지물을 표시하는 데 그치고, 내부까지는 상세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지도를 실질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1000분의 1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blue73@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