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공복시리즈]강원 산간에 숨은 '산업 역군' 태백선 쌍룡역 역무원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6.10 12:54

수정 2015.06.10 12:54

태백선 쌍룡역 윤방원 역장이 들어오는 화물열차에 깃발을 들어 수신호를 하고 있다.
태백선 쌍룡역 윤방원 역장이 들어오는 화물열차에 깃발을 들어 수신호를 하고 있다.

태백선 쌍룡역 김영태 차장이 시멘트를 실은 화차와 화차를 연결하고 있다.
태백선 쌍룡역 김영태 차장이 시멘트를 실은 화차와 화차를 연결하고 있다.

태백선 쌍룡역 윤방원 역장(뒤)과 김영태 차장이 화차를 점검하고 있다.
태백선 쌍룡역 윤방원 역장(뒤)과 김영태 차장이 화차를 점검하고 있다.

태백선 쌍룡역 민대기 과장이 화차의 제동장치를 살펴보고 있다.
태백선 쌍룡역 민대기 과장이 화차의 제동장치를 살펴보고 있다.

【 영월(강원)=윤경현 기자】철도노조의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 2013년 12월 한 언론에 강원도의 한 기차역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하루 승객은 15명인데 역무원이 17명'이라는 제목이었다. 이 역의 철도 운송수입은 연간 1400만원에 불과한 반면, 인건비는 11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이후 '귀족 노조' '방만 경영'이라며 비난하는 글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은 사실과 달랐다. 화물을 포함한 해당 역의 운송수입은 연간 100억원에 육박했고, 역무원도 3조 2교대로 돌아가는 근무시스템을 감안하면 실제 투입인원은 하루 5명에 그쳤다. 그 역이 바로 강원도 영월 한반도면에 위치한 태백선 쌍룡역이다.

■하루 승객 10명…공공성 지키려 운행

지난 7일 아침 강원도 산간의 간이역으로 가는 길이었으나 기차가 아닌 버스를 타야 했다. 서울에서 원주(강원),제천(충북)을 거쳐 정동진(강원)으로 가는 기차는 많지만 정작 태백선 쌍룡역에 멈춰서는 기차는 하루 한 차례 밖에 없다. 그나마도 '당일치기' 취재를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에 오후 12시10분에 출발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쌍용까지 가는 고속버스이 비해 시간은 비슷하게 걸리고, 요금은 30% 저렴하다.

서울을 출발한 지 두 시간 반 가까이 지나 쌍용에 도착했다. 해발고도가 400m는 족히 될 것이라는 윤방원 쌍룡역장(56)의 말이었지만 날씨는 무덥기 그지 없었다. 오히려 햇살이 서울보다 더 따갑게 느껴졌다.

역사 안은 쥐죽은 듯이 고요하고 평온했다. 벽면에 붙은 열차시간표에는 상행선 3회, 하행선은 단 1회라고 표시돼 있었다. 3∼4년 전만 해도 8개 열차가 정차했으나 절반으로 줄었다. 윤 역장은 "쌍룡역을 지나는 기차는 여객 18회과 화물 42회 등 모두 60회나 되지만 여객열차는 4차례만 멈춰선다"고 설명했다.

쌍룡역을 찾는 승객은 하루 10명 안팎이다. 역 앞의 마을 정도가 역세권이어서 역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한반도면의 주민을 모두 합쳐야 2000명 안팎"이라며 "기차 승객의 대부분은 원주에 있는 병원에 가는 어르신들"이라는 윤 역장의 설명이다.

옆에 있던 민대기 과장(55)이 "표는 끊으러 오는 승객은 조금 더 많지만 대부분은 20분 정도 차로 이동해 제천역으로 가서 기차를 탄다"며 "목적지도 다양하고, 기차 운행횟수도 훨씬 많기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윤 역장에 따르면 오전 8시4분에 출발하는 상행선 열차를 타고 원주까지 가서 병원 치료를 받고, 다시 오후 1시 반께 원주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 딱 맞는다. 그래서 병원이 쉬는 주말에는 승객이 더욱 드물다고 했다. 실제로 기자가 이날 쌍룡역에 머무른 약 7∼8시간 동안 기차를 타는 승객도, 기차에서 내린 승객도 전무(全無)했다.

김영태 차장(51)은 "기차가 도착하는 시간이 가까워오면 내릴 승객이 있는 지를 미리 살펴본다"면서 "어르신들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거나 하면 기차 안까지 가서 들고 나온 후 마중나온 가족들에게 넘겨준다"고 말했다.

윤 역장은 "쌍룡역의 올해 여객운임수입은 연간 전체로 1500만원이 목표"라고 했다. 쌍룡∼원주 구간의 운임이 4100원인 점을 감안하면 하루 10명씩의 승객만 꼬박꼬박 있으면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는 "여객은 적자여서 영업적인 측면에서 따지자면 여객열차는 아예 다니지 않는게 맞다"며 "하지만 공공성을 감안하면 그대로 운영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시멘트 하루 5000t, 운송수입 3000만원 넘어

쌍룡역은 화물운송이 중심이다. 여객은 부수적인 업무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승강장만 보면 작은 간이역이지만 11개 선로가 나란히 누운 모습을 보면 생각 이상으로 규모가 크다는 걸 깨닫게 된다. 쌍용양회에서 만들어내는 시멘트와 태봉광업에서 캐낸 백운석을 주로 운반한다. 쌍룡역의 역무원들은 간이역에 숨은 '산업의 역군'인 셈이다.

윤 역장은 "화물을 실은 기차가 하루 5∼7차례(평일 기준) 나간다"면서 "시멘트가 하루에 5000t, 제철소 등에서 쓰는 백운석이 500t 정도로 운송수입이 하루 3000만원을 넘는다"고 말했다. 이날도 오전 6시와 기자가 도착하기 직전인 10시께 시멘트를 실은 화물기차가 각각 떠났다고 했다.

역사를 나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쌍룡역을 먹여살리는 '밥줄'인 쌍용양회 영월공장이 멀리서 한눈에 들어온다. 왜 역의 이름이 '쌍룡'이라고 붙여졌는지, 지명이 쌍용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무실 창 밖으로 길게 줄지어 서 있는 화물차량이 보였다. 오후 4시께 화물기차가 와서 실어갈 시멘트였다. 기차 1량에 실을 수 있는 시멘트의 양은 52t으로, 한 번에 20량씩 연결돼서 나가게 된다.

김 차장은 "플랫폼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역이 있다"며 "태백선이 단선이라 20량을 초과할 경우 플랫폼 밖으로 열차가 삐져나가 다른 기차의 운행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역장은 "3년 전만 해도 시멘트만 하루 140량씩 운송했다"면서 "최근 시멘트가 약간 줄어든 대신, 백운석이 꾸준히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1시25분이 되자 쌍용양회에서 다음 날 나갈 시멘트를 실은 사유입환기가 들어왔다. 사유입환기는 공장에서 역까지만 화차를 끌어다주는 데 힘이 부족해 한꺼번에 10량씩만 달고 다닌다.

김 차장과 민 과장이 안전모와 장갑을 착용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민 과장이 맨 뒷열차의 바퀴 아래에 나무로 만든 '차륜지'를 괴어놓았다. 그는 "육안으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한쪽이 살짝 낮은 지형이라 자칫 열차가 굴러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수백t의 기차가 어른 팔뚝 절반 만한 나무조각으로 버틴다는 게 신기했다. 김 차장은 기차로 올라가 수제동기를 열심히 돌렸다. 자동차로 치면 사이드브레이크에 해당한다. 이중의 안전장치를 해두는 셈이다.

이어서 둘은 화차 안전점검에 들어갔다. 화차 하나하나를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제동장치, 연결장치, 전기장치 등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여한 것이 재동장치다. 어떤 이유로 열차가 분리됐을 때 제동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구조조정의 여파로 작은 역은 차량검수원이 별도로 없다"면서 "역무원들이 별도의 교육을 받은 후 점검과 필요 시 조치까지 직접 한다"고 설명했다.

그새 시멘트를 풀어놓은 사유입환기는 무연탄을 실은 화차를 끌고 다시 사라졌다. 사유입환기는 30분이 지난 오후 1시55분 화차 10량과 함께 돌아왔다. 가만히보니 쌍용양회라고 적힌 화차는 하나도 없다. 아세아시멘트, 동양시멘트, 한일시멘트 등 경쟁업체들의 이름이 제각각으로 붙어있다. 윤 역장은 "과거에는 시멘트회사들이 자기 소유의 화차만 이용했으나 코레일의 중재로 몇년 전부터는 구분없이 사용하고 있다"며 "공동으로 쓰는 것이 빨리빨리 수송할 수 있어 시멘트회사에도 이득"이라고 강조했다.

■영하 20도, 깜깜한 새벽에도 열차 점검

기차역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년 365일 쉬지 않는다. 강원 산간의 역무원들에게는 겨울이 특히 힘들다. 한겨울에는 영하 20도를 넘기기 일쑤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화차도 쇠로 만들어진 것이라 겨울에는 장갑을 두세겹씩 끼고도 손이 찌릿찌릿 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더구나 기차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탓에 일을 잠시라도 미룰 수 없다는 점이 이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다. 민 과장은 "여름에는 새벽 6시라도 날이 훤하지만 겨울에는 아무리 불을 밝혀도 한계가 있다"며 "깜감한 데서 각종 점검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윤 역장이 "급하게 하면 사고가 날 가능성을 있는 데 쌍룡역은 그나마 앞뒤로 여유가 어느 정도 있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눈은 가뜩이나 힘든 역무원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한다. 무릎 높이 이상으로 눈이 자주 �이는데 선로 위의 눈치우기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란다. 김 차장은 "눈이 오면 선로전환기가 얼거나 눈이 끼어서 자동전환이 안 되는 수가 있다"며 "작은 얼음덩이 하나로 (선로의)불일치가 발생하고, 이는 곧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열차가 들어오는데 갑자기 선로전환기가 작동하지 않으면 마음이 급해진다"며 "그 때는 공구상자를 들고 150∼200m를 단거리 경주하듯 뛰어간다"고 설명했다.

쌍룡역의 11개 선로 가운데 사무실 안에서 자동으로 선로를 변환할 수 있는 것은 3개 뿐이다. 나머지는 사람이 직접 가서 일일이 해야 한다. 김 차장은 "하행선 입구에는 별도의 초소를 만들어뒀다"며 "반대쪽은 일일이 나가야 하는 데 하루 20∼30회는 족히 될 것"이라고 했다.

오후 4시가 가까운 시간 열차가 빈 화차를 싣고 역으로 들어왔다. 김 차장이 선로변환기로 급히 뛰어갔다. 열차는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더니 어느 새 역 뒤편의 태봉광업 쪽으로 가 있었다. 다음 날 묵호항으로 운반할 백운석을 싣기 위해서다.

화차를 떼어놓은 후 기관차는 다시 시멘트를 화차로 왔다.
기관차와 화차를 무사히 연결한 김 차장은 마지막 점검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윤 역장이 동행했다.
윤 역장은 "누가 뭐래도 안전이 최고아니냐"며 "귀찮고 힘들어도 두 번, 세 번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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