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노동조합 간 공생 관계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근로자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취업 우대, 이른바 '고용세습'은 물론 경영·인사권 동의 등 노조의 경영권 개입이 심각한 수준이다. '고용세습'은 정치권이 나서 이를 금지하는 법안 마련을 추진하고 있을 정도다.
정부는 이들 위법 행위에 대해 자율적 개선을 유도한 뒤 이행하지 않을 경우 엄단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인사·경영권에 대한 노조 동의 조항 개선을 둘러싸고 노-정 갈등이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24일 고용노동부가 노조가 있는 3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단협 실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위법한 내용의 단협을 둔 사업장은 16곳(53.3%)이다.
조사 대상은 지난 2013년 말 매출액 기준 10조원 이상 대기업 30곳이다. 업종별로 제조업 18곳, 금융·보험업 5곳, 운수·창고·통신업 4곳, 도·소매업 3곳 등이다.
조사 결과, 조합원 자녀 등의 우선 채용 등 이른바 '고용세습' 규정이 있는 사업장은 11곳(36.7%)이다.
이는 조합원의 자녀가 아닌 자의 헌법상 평등권 및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하고, 고용정책기본법·직업안정법상 균등처우 원칙에 위반된다.
또 법상 복수노조가 보장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교섭단체 규정을 둔 사업장이 10곳(33.3%)이다.
유일교섭단체 규정은 특정 노조만을 유일한 규섭주체로 인정하는 내용이다. 즉, 다른 노조의 교섭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위법이다.
고용부는 법을 위반하거나 과도하게 인사·경영권을 제한하는 단체협약에 대해 오는 8월 말까지 노사가 자율적으로 개선하도록 기회를 부여할 계획이다.
다만, 위법한 조항을 개선하지 않는 경우 시정 명령 등 엄단할 방침이다.
아울러 인사·경영권에 대한 노조의 동의 조항이 있는 곳은 14곳(46.7%)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배치 전환 등 인사이동·징계·교육훈련시 노조 동의(합의)를 얻도록 한 사업장이 11곳(36.7%) , 정리해고·희망퇴직시 7곳(23.3%), 기업양도·양수·합병·매각 등 조직변동시 5곳(16.7%), 하도급시 4곳(13.3%) 등의 순이다.
고용부는 이런 조항들이 경영환경 변화에 신속한 대응을 어렵게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고용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노사간 원만한 협의를 통해 자율개선 하도록 권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임무송 고용부 노사협력정책관은 "소위 '고용세습' 조항과 같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위법한 사항에 대해서는 노사가 사회적 책임을 갖고 반드시 개선하도록 하겠다"며 "기업의 인사·경영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사항은 경영환경 변화에 대한 기업의 대응력을 약화시켜 노사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노사간 협의를 통해 개선할 수 있도록 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피크제 갈등에 이어 단체 협상 개선을 둘러싼 노-정 갈등도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한 단협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반박 자료를 내고, "자체 조사 결과 조합원의 자녀가 특혜 또는 '고용세습'의 형태로 채용된 사례는 단 한 것도 없다"며 "단협의 위법성을 덧씌우는 여론몰이로 노조의 정당한 권리를 제합하고, 단협을 후퇴시키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계 관계자는 "정부의 일방적인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이어 노조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정부가 노사 자율적으로 체결한 단협까지 개입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꼬집었다. ssuccu@fnnews.com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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