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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박사 창업시대'…자신이 만든 기술로 벤처창업 나선 국내 연구진 늘어나

김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01 16:12

수정 2015.07.01 16:22


'이공계 박사 창업시대'…자신이 만든 기술로 벤처창업 나선 국내 연구진 늘어나

#. 30대 초반의 여성 과학자 엘리자베스 홈스(사진)는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로 불린다. 홈스가 2003년 세운 바이오 벤처기업 테라노스는 혈액 몇 방울로 수백가지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진단기(키트)를 개발해 의료산업의 혁신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을 선정해 발표했다. 테라노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홈스는 트래비스 칼라닉 우버 CEO와 팀 쿡 애플 CEO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90억달러(약 10조원)에 달하며, 홈스는 회사 지분의 절반을 갖고 있다.
■국내 연구진, 벤처 창업 열풍 재연 조짐
국내 연구진들 사이에서도 벤처 창업 열풍이 일고 있다.
기존의 공공기술 사업화가 일회성 기술 이전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자신의 연구 결과물을 상용화하기 위해 별도의 법인을 세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이른바 최고기술경영자(CTO)로 활약하며 경영 전반에 적극 참여하는 형태다.
1일 미래창조과학부 및 관련 학계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이후 탄생한 '한국과학기술지주회사'와 '미래과학기술지주회사'를 중심으로 자회사 개념의 '연구소 기업'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기술지주사의 전문인력들이 기술이전 활동과 자금투자 등을 지원하자, 연구진들이 벤처 도전에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기존에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해 만든 에트리홀딩스나 각 대학별로 기술지주사를 운영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개별기관이 보유할 수 있는 기술량이 적고, 자금 유치에도 한계가 존재했다.
■출연연 공동 지주회사, 창업지원 생태계 구축
이에 17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2013년 11월 한국과학기술지주회사를 설립, 법인 설립 등 성장 단계별 소유자금과 경영, 재무, 마케팅 전반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지주사는 9개의 자회사를 가지고 있다. 바이오센서를 활용한 심근경색 조기 진단기를 개발한 '스몰머신즈'와 얼굴인식기술 기반의 단말기를 만드는 '네오시큐', 홈 가전 로봇을 만드는 '퓨처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퓨처로봇은 최근 대규모 로봇 제품 수출계약을 체결하는 등 강소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퓨처로봇은 공공기술 사업화의 대표적인 우수사례"라며 "ETRI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기술 3건을 이전하고 한국과학기술지주의 출자를 통해 성장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즉, 실험실에 갇혀 있던 연구개발(R&D) 성과물을 산업현장에 접목, 기술지주사라는 창업트랙을 통해 신설 자회사의 시장 안착을 돕는 것이 핵심이다.
■특성화대학들도 기술벤처 육성에 발벗고 나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비롯해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대(UNIST) 등 4개 과학기술특성화대학도 기술벤처 육성을 위해 지난해 3월 미래과학기술지주사를 만들었다.
1 호 자회사인 크레셈은 KAIST 백경욱 교수의 도움으로 '이방성 전도성 필름(ACF)' 초음파 접합 기술을 상용화했다. 최근에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가정식사 대체 식품 서비스를 제공하는 '닥터키친'이 7번째 자회사로 설립됐다. 이 회사는 KAIST 이관수 교수의 '단일염기다형성 조합 추출 방법과 질병 발생 위험도 예측방법 기술'을 활용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KAIST 내 교원 창업도 성과를 보이면서 최근 5년 간 11개의 법인이 세워졌다.
최근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재난대응로봇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KAIST 오준호 교수는 교내 벤처기업인 '레인보우'를 설립, 해외에 연구용 로봇을 직접 수출해 얻은 수익으로 연구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전문경영인체제 선호, 연구진은 CTO로 활약
과거 1990년대 말 벤처 붐이 일던 시절에도 연구진들이 직접 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회사 경영 경험이 없는 탓에 실패한 사례가 대다수다.

이에 따라 최근 연구진들은 CEO보다는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아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래과학기술지주 관계자는 "최근에는 전문경영인 체제나 조인트 벤처(Joint Venture·합작투자)를 구성하고, 해당 교수는 CTO로 활동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예전에는 박사들이 기술 이전을 한 뒤, 로열티를 받고 나면 더 이상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며 "요즘에는 박사들이 직접 회사를 차린 뒤, 상용화 전반에 참여하는 동시에 지분을 받아 영업이익을 나누는 방법을 더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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