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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 옐런 의장이 이끄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제이 리터 교수=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해외에 나가 있던 자본이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사람들은 이자율이 높은 곳에 돈을 넣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어 연준이 금리를 급격히 올리기는 어렵다.
▲이상곤 교수=전적으로 동의한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외국 기관투자가들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돈을 빼 미국에 투자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자금이동이 이뤄지면서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다만 정상화 과정이 점진적일 수 있고 한국은행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충격이 달라질 수 있어 그 수준은 예측하기 힘들다.
▲리터=한국 등 다른 나라의 금리도 고려해야 한다. 모든 나라가 금리를 동시에 올린다면 그 영향은 최소한으로 줄어들 것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시장에 갑작스러운 충격을 줬다. 과거 9·11 사태나 리먼브러더스 사태도 예상치 못한 충격의 예로 꼽힌다. 갑작스러운 경제적 위험이 닥쳤을 때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리터=메르스 사태가 일찍 소강상태를 보일지 아니면 장기전이 될지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 역시 달라질 것이다. 항공이나 소비재 분야는 단기적으로 악재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중국 헤이룽장성의 하얼빈을 거쳐서 한국에 왔는데 비행기가 절반은 비어있는 것을 보면서 그 영향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메르스가 한국 경제에 100억달러에서 150억달러의 경제적 비용을 치르게 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일 것이다. 갑작스러운 시장충격에 뒤따르는 '블랙 스완(예측하지 못한 위기)' 상태에서는 변동성이 커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 수준으로 돌아올 것을 예상하게 되면 사람들은 투자를 한다. 시장 상황이 계속해서 나빠지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때 주식을 사는 것은 단기적인 관점에서 좋은 위험관리방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게 단기적인 전략일 뿐이다.
―정보기술(IT).헬스케어주가 주도하는 나스닥 활황은 1990년대 후반의 닷컴버블을 연상시킨다. 한국의 코스닥시장 상승세도 마찬가지다. 지금 시장 활황은 버블인가 구조적인 변화인가.
▲리터=15년 전 인터넷 버블을 보면서 시장에서는 그게 버블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시장은 아직 버블인지 아닌지 평가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것 같다. 낙관적이기는 하지만 터무니없는 수준은 아니다.
▲이=같은 생각이다. 해외 기관투자가는 연준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코스피시장에서 돈을 빼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개인투자자들은 코스닥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 같다. 투자자들이 코스피에서 코스닥으로 눈을 돌리는 과정에서 코스닥시장과 상장사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재평가기간이 곧 끝나면 시장은 한동안 안정되겠지만 거품이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엔 많은 기업들이 증시에 상장하고 사라진 반면 최근엔 상장·퇴출이 많이 줄었다. 이 같은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리터=1990년대엔 짧은 이력을 가진 기술기업들이 기업공개에 나섰다. 하지만 최근 그런 회사들은 대개 더 좋은 기회에 더 비싼 값에 기술을 팔 수 있는 시기를 엿보고 있다. 좋은 기술을 더 좋은 값을 쳐줄 수 있는 삼성이나 애플 같은 큰 기업에 파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벤처기업이 스마트폰을 더 좋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치자. 삼성은 그 기술을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살 용의가 있다. 삼성이 기술을 산다면 당장 신제품에 도입해 수백억개의 제품을 생산·유통함으로써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현재 시장은 승자독식 구조다. 특히 기술산업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벤처가 급성장하는 방법은 기술을 대기업에 파는 것이다. 이제 벤처 기업가는 삼성, 오라클, 구글 같은 대기업에 '팔기 위해 회사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작은 회사들이 대기업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다. 기업들이 시장경쟁력이 있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른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행태를 어떻게 봐야 하나.
▲이=한국의 대기업 대부분은 가족경영체제다. 계열사도 다 가족이 갖고 있다. 이로 인한 재벌구조의 불투명성이 문제다. 엘리엇 같은 단기 액티브 펀드나 헤지펀드는 이런 거버넌스(지배구조)와 관련한 문제에서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문제도 삼성의 열악한 지배구조 문제에서 생겨났다. 미국에는 오너 승계 같은 문제가 없다. 미국 헤지펀드가 들어온 이상 삼성뿐 아니라 다른 국내 대기업도 기업을 승계할 때마다 회사 경쟁력을 국제적 수준으로 다시 끌어올리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 문제를 개선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해결 방안은 뭔가.
▲이=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세금을 제대로 내는 것이다. 만약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면, 대기업 경영진은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에 앞서 적어도 두 번은 따져볼 것이다. 기업들은 어떻게든 세금망을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해외 벤처캐피털리스트나 헤지펀드는 기업들이 어떤 수를 쓰는지 잘 안다. 그들은 그런 기회를 틈타서 이익을 노리려 한다. 그들은 약점을 잘 안다.
▲리터=동의한다. 재벌 체제는 자본시장이 성장하기 전에는 좋은 모델이었다. 그런데 한국 자본시장이 잘 성장한 지금은 최적의 모델이 아니다. 자본시장이 급성장한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 최적이었던 모델이 지금은 효율적이지 않다.
―'행동주의 펀드'가 과연 기업이나 국가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리터=헤지펀드가 언제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타깃을 아무렇게나 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 기업들만 공격대상으로 삼는다. 경영권 승계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게 될 수도 있다.
▲이=한국시장에 부족한 것은 기관투자가다. 투자자들은 기업을 적극적으로 감시하지 않는다. 소극적인 투자만 할 뿐 주주 이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투자자는 없다. 한국시장은 작다. 각 산업과 기업들은 서로 연계돼 있고 이 때문에 오너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감시가 어렵다.
▲리터=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뮤추얼펀드는 소극적이다.
▲이=그래도 미국에는 장기적으로 투자를 하는 전문투자자가 있다. 이사회를 바꾸는 등 경영상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일종의 '적극적 감시자'다. 한국에는 그런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이번 합병을 준비하면서 대주주들의 반대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아무도 경영진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주주 이익을 대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큰 변화를 겪을 것이고 그 대가도 클 것이다. 재벌과 같은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더 이상 용납이 안된다. 그 과정에서 헤지펀드는 약점을 파고들면서 이익을 취할 것이다. 기업들은 이런 뼈아픈 변화를 통해 성장할 것이다.
―해외 자본이 침투하면서 국내 기업과 대주주들이 리더십을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리터=일본의 기업집단 제도가 쇠락한 것처럼 한국 재벌도 없어질 것이다. 그 속도는 산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빠른 기술발전이 필요한 하이테크 산업은 재벌 구조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다. 오라클,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은 모두 전문경영인이 있는 젊은 기업들이다. 이런 회사들은 대주주의 자녀들이 일을 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기술산업에서 일순 뒤처지면 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맞는 얘기다. 재벌 구조는 언젠가 없어질 것이다. sane@fnnews.com
박세인 기자 원희영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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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터 교수, 기업 상장분야 권위자… 李교수, 亞 금융協 최고논문상
제이 리터 미국 플로리다대 교수는 시카고대학을 졸업한 뒤 같은 학교에서 석사와 경제학&재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업공개(IPO), 자산가격, 가치평가, 투자은행(IB) 분야에 대해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상장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힌다. 플로리다대에 부임하기 이전에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미시간대, 일리노이대에서 교수로 있었으며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스쿨에서 방문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전미재무학회(FMA) 회장을 맡고 있다.
이상곤 하와이대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뉴저지주립대학교(럿거스)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거쳐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재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업금융, 투자론, 아시아 금융시장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지난 2007년 '가격 조정 속도의 공매도(Short sales) 영향' 논문으로 아시아금융협회 최고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지난 2013년 파이낸셜뉴스와 한미재무학회(KAFA)가 공동으로 수여하는 최우수학술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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