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임금 삭감 등 개혁 케니 총리 빠른 판단 적중 反긴축 그리스에 반면교사
스페인도 세제 등 대개혁 경제지표 확연히 살아나
포르투갈·이탈리아는 여전히 위기 늪 못 벗어나
지난 2010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정위기 때 '국가부도'의 경고등이 유럽 전역에 켜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이다. 넘쳐난 돈은 부동산 가격 등 자산에 버블(거품)을 만들었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에서 버블은 무너지고 구제금융을 받았다. 하지만 '구제금융의 전후(前後)'는 달랐다. 국가 리더가 운명을 갈랐다. 아일랜드는 '구제금융 장학생'으로 부활했다. 긴축이 정확했고, 개혁은 신속했다. 국가 리더의 빠른 의사결정과 정치적 안정, 국민의 동참이 경제난을 딛고 경제자립에 나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반면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악화됐다. 국민은 돈이 바닥난 은행 앞에 길게 줄을 섰고, 연금이 제대로 나올지 불안해한다. 25%를 넘는 실업률과 국내총생산(GDP)은 4분의 1이 사라졌다. 구제금융에 손을 내민 것은 같지만, 그 후 5년의 현실은 달랐다.
■'긴축 모범' 아일랜드의 부활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들에 불공정한 일이다."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채권단 개혁안을 수용할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선언하자 아일랜드가 발끈했다. 긴축 없이 부채탕감과 자금조달을 해달라는 그리스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엔다 케니 아일랜드 총리는 "구제금융을 탈출하기 위한 대가로 6년간의 긴축을 수용했다. 현금자동입출금기 주변에 병력 배치를 고려할 정도로 우려할 상황이었다"며 그리스의 반긴축 행태를 비판했다.
케니 총리가 정권을 잡을 당시 아일랜드의 상황은 심각했다. 2011년 은행 현금이 바닥났다. 자본통제에 들어갔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였다. "켈틱 호랑이(Celtic Tiger)'로 불리던 아일랜드가 왜 이렇게 무너졌을까. 최대 9%대의 고성장은 '달콤한 버블'을 수반했다. 시중에는 저금리의 돈이 넘쳐났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거품은 2010년 무너졌다. 경제도 붕괴됐다. 긴축재정을 조건으로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등 이른바 '트로이카'로부터 675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케니 총리는 구제금융 수용, 공무원 임금 삭감 등 재정긴축, 과감한 개혁조치를 이끌어 5년여 만에 아일랜드 경제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국가 리더십이 가른 운명
아일랜드는 2013년 12월 구제금융을 졸업했다. 당시 유로존 재정위기의 주범이던 'PIIGS 5개국'(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중 처음이다.
케니 총리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채권단과 8일 만에 구제금융을 타결짓고 곧바로 긴축과 경제개혁에 들어갔다. 공공자산을 매각하고 공무원 임금을 동결했다. 아일랜드는 지난 6년간 280억유로의 재정지출을 줄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도 유로존 목표치(3%)에 근접한 수준(4.8%)까지 낮췄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외국기업 투자를 유치해 일자리를 만들었다.
경제는 빠르게 회복됐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평균 4.8%를 기록했다. 유로존에서 가장 높았다. 지난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109.7%로 전년(123.2%)보다 줄었다.
시장에선 "아일랜드가 '부채국가'라는 타이틀을 벗었다"고 평가했다. 2011년 15%를 넘던 실업률은 10%대로 떨어졌다.
올 3월 아일랜드는 마이너스 금리로 국채도 발행했다. 독일, 스위스 국채 등과 함께 안전자산으로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국가신용등급도 A+(S&P 등급)로 올랐다. S&P는 "아일랜드는 구제금융을 졸업한 이후에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재정건전성이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아일랜드와 그리스의 구제금융 5년은 달랐다. 그리스 국민도 긴축으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국가 리더는 근원적 개혁을 끌어내지 못했다. 개혁과 변화는 선심성 정책에 밀렸다. 정작 장기적인 성장을 담보할 경제구조 개혁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국민은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빚을 쉽게 써버리는 데 익숙해졌다. 부패는 만연했다. 연간 재정적자의 절반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탈세도 잡지 못했다. 걷잡을 수 없이 비대해진 공공부문에도 손을 대지 못했다.
■위태로운 포르투갈·이탈리아
유로존 내 4위권 경제대국인 스페인은 지난 2012년 41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스페인은 불합리한 세금제도를 뜯어고치고 노동시장도 유연하게 바꿔나갔다. 공무원 임금도 20% 이상 삭감했다. 그 결과 스페인은 지표상으로는 경제가 확연히 살아나고 있다. GDP 성장률은 올 3·4분기(3.1% 추정)까지 7분기 연속 성장이 예상된다. 외신들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95%까지 경제가 회복됐다"고 평가했다. 스페인은 올 11월 총선에서 반긴축을 내세운 좌파세력이 세를 키우고 있다.
포르투갈은 지난 2011년 78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지난 2013년 4·4분기 마이너스(-)4.1%로 추락했던 GDP 성장률은 4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17.5%(2013년 2·4분기)까지 치솟았던 실업률도 올 들어 13%대로 떨어졌다. 포르투갈은 올가을 총선에서 반(反)긴축 좌파정권이 집권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의 전철을 따를 수 있는 1순위 국가로 지목되는 이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리스가 무너지면 다음은 포르투갈"이라고 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성장률이 다시 하락하고 있다. 올 1·4분기가 -0.5%로 PIIGS 국가 중 가장 저조하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은 132%에 달한다. 그리스 다음이다. 경제개혁 작업에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 국민이 채권단의 개혁안을 거부한 이후 그렉시트(유로존 탈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경우 주변국에 미칠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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