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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빚 권하는 사회

파이낸셜뉴스
[기자수첩] 빚 권하는 사회

"…이 사회란 것이 내게 빚을 권한다오. 이 한국 사회란 것이 내게 빚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한국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서 났다면 대출이나 받아볼 수 있나…."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 나오는 남편의 대사를 조금 고쳐봤다. 1921년 소설이지만 '술' 대신 '빚'이나 '대출'을, '조선' 대신 '한국'을 집어넣으면 지금의 현실과도 얼추 들어맞는다.

사상 최저 수준의 저금리 시대에 힘입어 사회 이곳저곳에서 빚을 내도 된다는 시그널이 빗발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달 서민금융 지원 강화방안을 내놓으며 대출 규모를 기존 4조5000억원에서 5조7000억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채무조정 성실상환자에게 대출한도를 늘려주고 소액한도의 신용카드도 발급하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신용 5~6등급을 타깃으로 하는 중금리 대출도 저축은행뿐 아니라 시중은행에서 내놓으면서 신청자가 몰리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아파트 중도금 대출 비율을 분양가의 60%에서 70%로 높일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시중은행 가계대출은 8조1000억원 증가했다. 8조5000억원이 증가했던 지난 4월에 이어 올 들어 두번째로 큰 증가폭이다. 전체 대출액의 84%가 주택담보대출이다. 저금리와 실수요 중심의 주택거래 영향으로 주택담보대출 증가분이 컸다는 것이 한은의 분석이다. 현재 가계신용 규모는 11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서민금융상품을 내놓는 한 기관 관계자는 "그래도 정부가 가계부채 구조개선을 위해 안심전환대출 등을 통해 변동금리, 원금미상환 대출을 서서히 고정금리, 원금상환 대출로 바꿔나가는 중"이라면서도 "사실 고소득자도 아닌 서민을 대상으로 대출해주는 우리 같은 경우엔 리스크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서민을 대상으로, 또 전셋집이 동나 소형아파트를 매매하는 수요자에게 대출 문턱을 낮추고, 더 큰 금액을 빌려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와 동시에 불어난 규모만큼, 낮아진 문턱만큼 어떻게 상환능력을 검증할 것인지가 빠졌다. 정말로 어려워져서, 꼭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사회안전망 차원의 지원이라기보다는 '금리가 낮은 지금 더 많이 빌려쓰라'는 식의 분위기가 느껴져서다.

최근 분위기를 보면 지난 2000년대 초 대학교 정문 앞에 신입생 회원을 노리고 늘어서 있던 카드업체 부스들이 떠오른다.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뿐 아니라 전업주부나 실업자 상관할 것 없이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며 앞다퉈 회원을 유치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후 카드대란이 났다.

[email protected]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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