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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까방권'과 '까임권'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10 17:08

수정 2015.07.10 17:08

[여의도에서] '까방권'과 '까임권'

제법 오래 전에 네티즌이 만들어낸 신조어 중 '까방권'이라는 게 있다. '까임 방지권'의 줄임말인데,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네티즌으로부터 한두 번쯤은 비난을 면제받을 수 있는 일종의 '면죄부'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연예인들이 정상적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나면 우호적 여론이 형성되는데 이런 경우 '까방권'을 획득했다고 한다.

진짜 법적으로 보장받는 권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농담도 아니다. 까방권을 받은 연예인이 어떤 구설에 휘말렸을 때 네티즌 사이에서는 실제로 옹호 여론이 형성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 브랜드들은 일종의 '까방권'을 가지고 있다.
국산차에 대한 묘한 반감 때문인지 몰라도 국산차 업체의 실수에는 '언 발에 회초리 때리듯' 매서운 여론이 수입차에 대해서는 솜사탕처럼 우호적일 때가 많다.

해외 판매 버전보다 허술한 옵션에 비싼 가격에 내놔도 잘 팔리고, 비싼 수리비나 부품 가격 논란은 가끔씩만 문제 될 뿐 금방 잠잠해진다.

최근 1~5월 국내에서 팔린 자동차 중 결함으로 리콜 조치된 차량에 대한 통계가 나왔는데, 수입차 숫자가 크게 늘었다. 전체 리콜 차량 숫자는 국산이 많지만 모델별로는 수입차가 3배나 많았다. 그만큼 광범위하게 결함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수입차에 대한 로망으로 가득한 국내 소비자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통계였지만 의외로 큰 비난 여론은 없었다.

몇 해 전 국산 스포츠유틸리티 차량 뒷문에서 물이 새는 결함이 발견되자 밤낮으로 조롱거리가 됐던 것과 비교해보면 수입차 브랜드들은 정말 든든한 까방권을 가진 게 분명하다.

반대로 현대차와 기아차에는 '까임권'이 있는것 같다. 무슨 짓을 해도 좀처럼 칭찬을 듣기 힘들다는 얘기다. 내수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점유율은 확고하지만 각종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놀림을 받는 브랜드도 현대·기아차다.

현재의 모든 일은 결국 과거의 결과다. 현대차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시절, 우리나라 고객보다 해외시장을 더 중시했다는 역차별 논란이 작금의 '까임권'의 뿌리다.

세월이 흐른 지금 현대차나 기아차는 대중의 생각보다 더 훌륭한 차를 만들고 있다. 지난달 미국 시장조사기관 JD파워가 실시한 2015년형 모델 초기품질조사에서 기아차는 21개 대중브랜드 부문 1위, 현대차는 2위에 올랐다. 고급브랜드를 포함한 전체 브랜드(33개) 순위에서도 기아차가 2위, 현대차가 4위에 올라 BMW(6위), 렉서스(9위), 벤츠(14위), 아우디(16위) 등을 눌렀다.

현대·기아차에도 이제 관용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
그런데 이런 것은 누군가에게 억지로 얻어올 수도 없고 스스로 획득할 수도 없다. '까방권'은 결국 소비자의 감성과 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무형의 훈장이다.


꾸준히 소통하고 개선하고 소비자에게 다가간다면 현대·기아차가 이른 시일 내 국내에서도 글로벌 시장의 위상에 걸맞은 인기와 사랑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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