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지와 제도 개선 함께 맞물려 움직여야 공직사회 신뢰 회복
'정부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고위공직자 재취업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퇴직공직자 재취업심사제도' 개선방안을 내놨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끼리끼리 봐주고 눈감아주던 '민관 유착'의 오래된 관행을 뿌리뽑자는 차원에서다. 그러나 아직 민관 유착 근절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갈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취업심사제도를 악용한 재취업 사례가 또다시 나오고 있는데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 국민들이 체감하기에는 뚜렷한 징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무작정 공직자들의 재취업을 막는 것은 취업 자유라는 헌법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파이낸셜뉴스는 강화된 공직자 재취업심사제도가 실제 개정 취지에 맞게 운용되도록 법 정비는 물론,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을 위해 3차례에 걸쳐 재취업심사제도를 조명한다.
공무원들과 민간 부문의 유착을 뜻하는 '관피아'는 세월호 참사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될 만큼 우리 사회의 적폐로 인식되고 있다. 이 같은 폐단을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면서 지난해 '공직자윤리법'이 엄격해졌다. 지난해 새로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은 올 3월 말부터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
■최근 3년간 재취업 공직자 814명…재취업제 주목
14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1~2013년) 재취업에 성공한 고위공직자는 모두 814명에 이른다. 사기업에 취업한 공직자는 729명, 각 부·처·청에서 법령상 감독관계에 있는 산하 및 조합 등에 취업한 공직자는 5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법인 22명, 회계법인 4명, 세무법인에 2명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이번에 새로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은 취업제한기간을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1년 연장했고, 취업제한기관도 국민의 생명에 직결되는 안전감독, 인허가 규제, 조달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유관단체까지 포함시켰다.
아울러 변호사, 회계사 등 자격증을 가진 공직자가 퇴직 후 관련 기관에 취업할 때 차관급 이상일 경우에만 취업심사를 받던 것을 고위공직자까지 취업심사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등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또 '취업이력 공시' 제도를 도입해 퇴직 후 10년간 취업이력에 관한 사항을 신고·공개하도록 했고 취업심사결과도 공개하도록 했다.
이 같은 퇴직공직자 취업제한제도는 공직자 재산등록제와 함께 우리나라 공직자 윤리제도의 근간을 이룬다. 공직자윤리법은 지난 1981년 도입돼 약 35년간 퇴직공직자의 공적·사적 이익 충돌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는 기능을 수행해왔다는 게 인사혁신처의 설명이다.
이 제도가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지난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와 지난해 세월호 사고 이후부터다.
문제는 저축은행 부실사태 이후에 개정된 공직자윤리법도 사실상 '유명무실'했다는 점이다. 당시 퇴직공직자가 로펌이나 유관업체 취업이 증가하고 고액연봉 수령, 업무관련성 회피를 위한 고의적인 경력세탁 등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제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이전보다 강화된 내용의 제도를 마련했지만 세월호 사고로 빛이 바랬다.
퇴직 전 소속기관에 대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유관기관과의 유착 및 주무기관 감독기능의 비정상화를 야기하는 전관예우 관행이 여전히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해운조합 등에 해양분야 출신 고위 퇴직관료의 관행적인 재취업으로 해양수산부의 관리감독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점이 세월호 사고를 일으킨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쪽에서 강화된 공직자윤리법이라는 제재수단을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묘히 이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악용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법과 현실이 따로 놀면서 고질적인 전관예우는 우리 사회의 불문율로 남았다.
■따로 노는 법과 현실…합리적 제도개선 기대
이번에 강화된 재취업심사제도도 세월호 사고 이후 각종 안전사고와 방산비리 등으로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재조명받기 시작한 것이다. 꺼져가는 공직사회의 신뢰를 되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일각에서는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가 엄연히 보장돼 있는데 유독 공직자에 대해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재직 중 축적한 경험과 전문지식 활용, 생계형 취업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지난해 세월호 사고에서 보듯 민관 유착의 검은 그림자는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사회적 기반을 훼손할 수 있는 중대 위협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이번 제도 강화가 공직자가 퇴직 후 취업을 목적으로 특정업체에 특혜를 주는 등 부당한 유착 고리를 사전에 차단하자는 포석이지만 아직 제도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해 하반기 윤리위원회 취업심사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재취업한 퇴직공무원 76명을 적발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수치는 전년도 상반기 임의취업자 26명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제도가 강화돼도 이를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제도개선은 불가피하다. 이런 점에서 올해 시행된 공직자 재취업심사제도는 과거와 다르게 사회안전망을 실현하고 공직사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평가받는다.
한 전문가는 "규정과 법이 아무리 강화돼도 정부의 의지가 없으면 실효가 없다"면서 "정부가 관피아를 척결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제도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봐야 별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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