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62) 명동 한복판의 빨간천사 "우리는 거리의 외교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16 18:07

수정 2015.07.16 18:07

서울시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통역안내원들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남대문, 홍대, 북촌…. 서울 유명 관광지 10곳에서 관광통역안내원 84명, 자원봉사자 265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303만명의 외국인들에게 도움을 줬다. 한여름 폭염에도, 한겨울 한파에도 그들은 거리에 있다. 그러다보니 1시간 근무하면 1시간은 휴식이다.

가장 힘든 건 '한국인들의 딴죽'
시시각각 변하는 명동인지라 안내원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화를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반말을 하거나, 심할 때는 욕을 하면서 지팡이로 때리기도 한다. 민간외교관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기운이 쭉 빠진다.

해결사가 된 통역원들
예전에는 길만 물어보던 외국인들이 이제는 "바가지를 쓴 것 같은데 해결해 달라"거나 "은행 업무를 도와달라"는등의 도움을 요청한다. 때론 쓰러진 외국인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기도 한다. 고국으로 돌아간 관광객들과 친구로 남는 경우도 있다.

명동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소속 관광통역안내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명동 명동역 인근에서 외국인 관광객에서 관광지 명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명동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소속 관광통역안내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명동 명동역 인근에서 외국인 관광객에서 관광지 명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서울에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0일, 서울 명동 중심가인 명동예술극장 앞 거리에 빨간 모자와 빨간색 옷을 입은 남녀 2명이 명동을 지나는 관광객들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스마트폰을 들고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던 한 중국 관광객이 다가와 스마트폰을 보여주면서 식당 위치를 물어봤다. 빨간 옷을 입은 남성은 익숙한 듯 가방에서 중국어로 된 명동 지도를 꺼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중국 관광객의 질문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식당 위치에 이어 명동의 쇼핑장소와 환전, 인근 관광지 등 한국 여행을 하며 궁금했던 사항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폭염주의보까지 내려진 무더운 날씨에 짜증이 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빨간 옷을 입은 남녀 모두 전혀 그런 내색이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이어진 이들의 대화가 마무리됐고 중국인 관광객은 밝은 얼굴로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최근 명동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이 모이는 서울 명소에 가면 이 같은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빨간 모자에 빨간색 옷을 입고 행인들에게 "안녕하십니까. 서울시 관광안내입니다"라며 친근히 인사를 건네는 이들은 서울시관광협회가 운영하는 '움직이는 관광안내소'의 통역안내원이다. 해외에서는 이들의 친절함에다 빨간 옷과 모자 때문에 '레드엔젤'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움직이는 관광안내소는 서울의 총 10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장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명동과 함께 남대문, 신촌, 이태원, 동대문, 북촌, 홍대, 삼청동, 신사동, 광장시장 등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이면 어김없이 이들을 볼 수 있다. 총 활동 인원은 관광통역안내원이 84명, 자원봉사자가 265명에 이른다.

■찾아가는 서비스의 시작

기존 관광안내소라면 거리 한가운데 부스를 차려놓거나 건물 1층에 공간을 마련, 찾아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관광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상식이다.

상식을 깨고 서울시의 관광안내소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 1월 30일 명동에서부터다.

당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관광에서 가장 불편했던 점으로 꼽은 것은 언어와 부족한 안내서비스였다. 한국어를 구사할 수 없는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에 와서 복잡한 명동을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어버려 당황해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 외국 관광객에게 필요한 것은 관광안내소였지만 워낙 숫자가 부족하다보니 관광객이 안내소를 찾다가 다시 길을 잃어버릴 판이었다.

이 같은 외국인 관광객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된 움직이는 관광안내소는 시작 첫해부터 호평을 받았고 7년째 운영되고 있다.

사실 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안락한 실내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가게 되면 당장 몸이 힘들어진다. 어떤 날은 비가 오고 어떤 날은 폭염, 겨울이 되면 추운 날씨와 폭설 상황을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 생각하면 관광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게 된다.

가령 실내에 앉아서 일할 경우 단순하게 지도를 놓고 설명하는 수준의 관광안내 서비스에 그친다면 거리로 나가서 직접 관광객을 만나면 이들과 동행하면서 불편을 겪었던 문제를 말끔하게 해소해 줄 수 있다.

이날 유창한 중국어 실력으로 중국인 관광객 안내에 나섰던 이윤오 관광통역안내원은 "실외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태풍이나 집중호우, 무더위 등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게 사실이지만 힘들어서 출근하기 싫은 적은 없다"며 "관광객을 만나고 도와드리는 매 순간이 즐겁다. 특히 시간이 지나서까지 기억해주고 고마움을 표시해주는 이들을 만나면 보람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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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여유도 없는 업무량

통역안내원과 자원봉사자들은 2인 1조 형태로 일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1시간 근무에 1시간 휴식하게 돼 있다. 다만 여름과 겨울 혹서.혹한기에는 30분 근무에 1시간 휴식한다.

언뜻 보면 아무리 실외에서 힘들게 일한다 하더라도 휴식시간이 길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 안내원은 "사실상 1시간 휴식은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한 대기시간인 동시에 원활한 안내를 위해 다양한 관광정보를 공부하는 시간"이라며 "가령 중국어 전공자와 영어 전공자가 2인 1조로 근무하는 가운데 일본 관광객이 안내를 요청하게 되는 상황이 있다. 이럴 때는 휴식조에 포함된 일본어 전공 관광통역안내원에게 전화를 걸어 안내를 부탁한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근무 장소가 실내에서 실외로 옮겨오면서 업무가 더욱 다양해졌다. 실내에 위치한 관광안내소는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오면 길 안내를 하는 수준에 그친다.

반면 실외로 바뀌면서 길안내 외에도 안전하고 편리한 관광을 위한 '해결사'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관광객의 질문도 "유모차를 끌고 남산 서울타워를 가야 하는데 버스가 좋을까, 케이블카가 나을까"라고 묻거나 "'런닝맨'에 나왔던 그 모자를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바가지를 쓴 것 같은데 해결해 달라" "급하게 은행 업무를 할 수 있게 도와 달라" 등 때로는 난감하기까지 한 질문이 날아오기도 한다. 때로는 외국인 관광객이 쓰러졌을 때 심폐소생술을 하는 등 응급의료인력 역할까지 하기도 한다.

시간적인 것과 함께 상대하는 응대하는 관광객 수 역시 많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이전을 기준으로 명동의 움직이는 관광안내소에서 3000~4000명에 이르는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했다. 지난 한 해를 기준으로 보면 전체 10개소에서 안내한 관광객 수가 303만명에 이른다.

아쉽게도 지난 2009년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개소 이후 가파르게 늘어나던 안내실적은 최근 메르스 사태로 주춤하고 있다. 명동 지역 통계를 보면 메르스 이전에는 팀당 하루 평균 600명을 안내했지만 최근엔 팀당 100~200명으로 감소했다.

박소정 관광통역안내원은 "메르스 사태로 관광객이 많이 줄었고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 메르스 사태 이전에는 안내의 절반이 중국인이었는데 이제는 그 정도로 많지는 않다"고 언급했다.

명동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소속 관광통역안내원은 휴식 시간에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휴식을 취하며 관광정보를 숙지한다. 지난 10일 관광통역안내원이 사무실에 마련된 화이트보드에 숙지해야 하는 명동 관광정보를 적고 있다.
명동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소속 관광통역안내원은 휴식 시간에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휴식을 취하며 관광정보를 숙지한다. 지난 10일 관광통역안내원이 사무실에 마련된 화이트보드에 숙지해야 하는 명동 관광정보를 적고 있다.

■힘들지만 자부심을 느끼다

통역안내원들은 2년의 계약기간에 움직이는 관광안내소에서 활동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통역안내원은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더라도 연장을 원하고 있다고 한다.

더운 날에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추운 날에는 날카로운 바람을 맞으며 일하지만 이들이 활동에 열정을 보이는 것은 뚜렷한 목표의식과 자부심 때문으로 보였다.

서울시관광협회가 움직이는 관광안내소를 만든 목표는 오는 2020년까지 2000만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한 아시아 제1위의 관광선진국 진입이었다.

이 같은 목표의식으로 통역안내원들은 스스로 단순한 관광안내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한국을 찾은 관광객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이 남도록 돕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안내원은 "안내를 도와드렸을 뿐인데 관광을 마친 후 돌아가서 e메일 등을 통해 감사하다는 편지를 주거나 한 번 더 방문해 저 때문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관광객들과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며 "움직이는 관광안내소가 긍정적인 역할을 하다 보니 최근 일본에서는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비해 벤치마킹해 갔다"고 전했다.

이처럼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는 통역안내원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내국인이라는 점이다.
이날도 종종 내국인들이 통역안내원들의 활동에 딴죽을 거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박 안내원은 "서비스업이다 보니 감수해야 하지만 내국인들이 반말하고 하대하는 경우가 있다.
심할 때는 욕을 하거나 지팡이 같은 것으로 때리는 일도 있다"며 "명동 관광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점이 있어 잘 모르거나 확인이 필요한 분야도 있는 게 사실인데 이럴 경우 화부터 내지 말고 조금 기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