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도 고순도 품종 개발 속이 꽉 차 김치에 최적화
비닐하우스 기술도 획기적 사계절 신선한 야채 공급
올해로 광복 70주년을 맞으면서 그간 우리 농업을 빛낸 대표적인 기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방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찾아온 6·25 전쟁으로 전 국토는 극도로 황폐해졌고, 가뜩이나 보릿고개를 겪으며 배고픔에 굶주리던 국민들에겐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숙제였다. 오죽하면 당시 전 국민의 인사말이 '아침 식사 하셨습니까'였을까. 그후 식량 문제만은 반드시 해결해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발전시켜 온 우리 농업기술은 전쟁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전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는 산업화 과정과 비견할 수 있다. 국민을 배고픔에서 해방시킨 '통일벼' 개발이 그중 대표적이다. '씨 없는 수박'으로 잘 알려진 우장춘 박사가 탄생시킨 배추품종 '원예1호'와 '원예2호'는 우리 민족의 김치 사랑을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올해 나이 만 43세, 코드명 IR667, 대한민국의 쌀 자급자족을 실현시킨 주인공.' 광복 70년 역사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과학기술우수성과 70선'에 포함된 녹색 혁명의 주역 '통일벼' 이야기다.
21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통일벼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한창 진행되던 1972년에 탄생했다. 이보다 8년 앞선 1964년 3월 13일 경기 수원의 농촌진흥청 대강당. '전국 식량증산연찬대회'가 각 지방장관, 시장, 군수, 농촌지도소장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경제적 자립은 식량의 자급자족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화를 촉진시키기 위해선 국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통치자의 판단 때문이다.
■통일벼, 국민 식탁을 책임지다
이 때문에 우리 실정에 맞는 벼 품종 개발이 시급했고, 이듬해부터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IRRI)에서 획기적으로 다수확이 가능한 품종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일본형 품종인 '자포니카(Japonica)'와 인도형 품종인 '인디카(Indica)'를 교잡해 한국형인 '통일벼(IR667)'가 성공리에 탄생했다. 국제미작연구소의 667번째 개발품종이라는 의미로 코드명은 'IR667'로 붙였다.
통일벼는 키는 작지만 광합성 효율이 높고, 바람 등에도 잘 쓰러지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다만 밥맛은 푸석푸석하고 밋밋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수확이 가능해 국민들 밥상에 보리밥이 아닌 쌀밥을 올릴 수 있는 전환기를 가져왔다. 게다가 통일벼의 성공으로 맛과 품질이 갈수록 향상되는 새 품종이 개발되면서 1977년 당시 ha당 쌀 생산량은 4.94t을 기록하며 일본의 4.78t를 뛰어넘어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통일벼가 '기적의 쌀'이 된 셈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전체 쌀 생산량은 1974년 3000만 석을 돌파했고, 1977년에는 4000만 석을 뛰어넘었다. 1977년은 우리나라가 쌀의 완전 자급을 달성한 원년이기도 하다.
농진청에 따르면 당시 통일벼 개발과 이후 이같은 성과를 거둔데는 1968년부터 1980년까지 12년간 농진청장을 역임한 송암 김인환 박사의 공이 컸다. 당시 김 박사는 통일벼에 대한 사회의 빗발치는 비판과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육종학자로서의 정열과 신념을 갖고 벼 신품종을 증식·보급해 나가면서 문제점들을 꾸준히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농진청 관계자는 "통일벼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유신', '밀양' 등 새로운 품종을 계속 육성하고 보급해나갔고, 무엇보다 80~90년대를 거치면서 수량성은 통일벼에 맞먹으면서 품질이 더욱 뛰어난 일반벼로 재탄생하는데 통일벼가 중심추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통일벼가 △일반형 양질미 식량 안정생산에 기여 △지역·생태형별 최고품질 품종 다양화 등 농업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다. 또 통일벼는 2000년대 들어선 외관과 밥맛, 완전미, 내재해성 등을 갖춘 운광벼, 하이아미, 삼광, 진수미, 대보, 미품 등 '최고품질'의 벼 품종을 개발하는데도 기반이 됐다.
■현대화 비닐하우스도 각광
통일벼와 함께 광복 이후 최고로 손꼽히는 또다른 농업기술이 바로 '배추 품종 육성'이다. 이는 재래종이나 도입종의 한계를 넘어서 최초로 일대잡종을 만들어낸 것으로 '원예1호'가 대표적이다. 또 고순도 품종인 '원예2호'는 현재 식감이 좋고, 속이 꽉 차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는 배추의 시발점이 됐다.
이 과정에서 농진청은 배추 유전체 해독에 필요한 유전자 은행 5종을 제작하는 등 원천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또 차세대 염기서열 해독 기술을 적용해 최초로 배수체 작물 유전체를 해독하기도 했다.
유채의 한 쪽 조상으로 불리는 배추는 양배추, 브로콜리, 겨자, 무 등과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 이 때문에 배추 유전체 연구는 채소 육종 연구 소재로서 경제·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백색혁명'으로 불리는 멀칭재배와 비닐하우스 재배 기술도 '3대 농업기술'에 포함됐다. 국민들의 식생활 향상으로 4계절에 관계없이 신선한 채소를 공급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관련 기술이 각광 받은 것이다. 보온과 난방, 환기 등 환경관리 자동화장치를 갖춘 기술·자본 집약형 '현대화 비닐하우스 모델'이 그것이다.
한국형 표준모델 보급이 확대되면서 비닐하우스 시설면적은 1990년 당시 2만5450ha에서 2000년에는 5만2189ha로 늘어났다. 이 기간 시설채소 생산량 역시 101만7000t에서 324만7000t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농진청 이양호 청장은 "최근에는 FTA 등 외부환경에 적극 대응해 초고품질 벼 품종을 지속적으로 개발·보급, 우리 쌀 산업의 국내외 경쟁력과 쌀 소비 확대를 위한 가공 식품 산업화 등에 힘쓰고 있다"면서 "아울러 선배들이 이룬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ICT를 접목한 융·복합 기술과 아이디어를 접목해 농업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bada@fnnews.com 김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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