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65)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지역본부
"검역은 제2의 국방" 철통수비 나선 153명의 검역전사
올 상반기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불리던 대한민국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썰물처럼 밀려 들어오던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뚝 끊겼다. 공포 탓이었다. 두려움의 근원은 이름조차 생소했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중동 낙타로부터 전염된다고 알려진 메르스는 대한민국의 동력을 앗아갔다. 사람들은 메르스가 거칠게 할퀴고 간 이후에야 '동물이나 식물로부터 전염될 수 있는 질병이 총칼을 든 군인보다 무섭다'란 사실을 뼈에 새겼다. 하지만 해외에서 들어오는 각종 동·식물의 병해충, 전염병과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난달 24일 인천국제공항 정부합동청사에서 만난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지역본부 배호열 본부장은 입술에 무게를 실어 말했다. "검역은 제2의 국방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천공항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153명의 검역전사들을 만났다.
#1. 7월 24일 오전 9시20분, 인천국제공항 정부합동청사 1층에 위치한 수입식물 정밀실험실. 60평 남짓의 공간에서 흰 가운을 입은 12명의 검역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점유한 공간은 협소하지만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수입식물의 위해성에 대한 실험분석이 필요한 경우 대부분 이 곳을 거쳐가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수입식물에 묻어올 수 있는 병해충을 판별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제주에선 천연기념물 374호로 지정된 비자나무 군락지인 비자림지역에 소나무 재선충이 창궐해 '비상'이 걸렸다.
시험분석과 정영철 과장은 "전국에 수입식물 정밀실험실은 총 4곳으로 인천은 그 중 1곳에 불과하지만 업무 비중은 전체의 64%에 달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인력이다. 감당하고 있는 업무의 양은 전체의 64%에 달하는데 비해 인력은 총 12명으로 전국 정밀실험실 인력의 25%에 그치기 때문이다. 검역관들이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것도 당연하다.
백지현 검역관(박사)은 "정밀실험실은 업무 특수성 때문에 특수현미경을 장시간 들여다봐야 한다"며 "높은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을 쉬지 못하고 하다보니 두통약을 비타민처럼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2. 오전 9시40분, 농림축산식품부 특수검역과.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조류인플루엔자(AI).신종인플루엔자A(H1N1).중증혈소판감소증후군(SFTS).에볼라 출혈열 그리고 메르스까지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전염병의 공통점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감염되는 '인수(人獸)공통감염병(zoonosis)'이라는 것이다. 백신 개발이 어렵고, 국가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인수공통감염병의 발생시기 간격이 짧아지고 있어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해외에서 들어오는 동물의 99%가량의 검역을 맡고 있는 인천의 특수검역과는 전염병을 막는 첫 펜스다.
메르스에서도 봤듯이, 인수공통감염병은 대부분 일정기간의 잠복기가 있다. 국내로 들여오는 동물을 한동안 보호·관찰하면서 혹시나 이 동물이 전염병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그래서다. 달리 말하면, 이곳의 검역관들은 대한민국에서 메르스 같은 전염병에 가장 먼저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서영선 검역관(수의사)은 "말은 전염병 정밀검사를 위해 혈액 등 시료를 채취할 때 생식기에서 샘플을 채취해야 하는데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2년 전 한 검역관이 말발굽에 다리를 차여 장기간 신경마비로 고생하기도 했다.
#3. 오후 1시,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휴대품검역과. 인천국제공항 휴대품검역과는 24시간 풀가동된다. 62명의 검역관들이 하루 24시간을 터미널 1층(도착) A부터 F구역까지 6곳에서 여행객들의 가방 속에 숨겨진 과일이나 육포 등 반입금지 물품을 찾아내고 있다. 3교대 근무로 하루 24시간 일했다면, 이틀 동안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인력부족으로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박정서 검역관(수의사)은 "여기엔 '퐁당퐁당'이란 말이 있어요. 하루 24시간 일하고 그 이튿날 다시 근무를 하는 근로조건을 빗댄 말"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여행객을 대면해서 상대하는 일인 만큼 민원의 강도도 무척 세다. 식물검역을 담당하고 있는 문광옥 검역관은 "여행객의 개인 수하물을 열어서 일일이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민원인과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밤낮이 바뀌는 생활 탓에 육체적인 피로감도 무척 심하지만 그보다 힘든 점이 바로 악성민원"이라고 토로했다.
검역본부는 처음 적발 시 1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지만, 두 번째 적발될 경우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축산물과 식물에 각각 50만원, 30만원씩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3차 적발될 경우엔 100만원, 90만원씩이다.
#4. 오후 3시30분, 화물검역과 특급탁송 화물. 검역본부에서 가장 일손이 부족한 곳은 바로 화물검역과의 특급탁송 화물을 검역하는 곳이다. '해외직구'가 급증한 탓이다. 실제 지난 2010년 2132건에 불과했던 특송화물 검역실적은 지난해 28만334건으로 불과 5년 만에 14배 가까이 늘었다.
김경수 검역관은 "특급탁송 화물을 통한 식물 검역실적의 경우 2013년 1만5000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40만5000건으로 늘었고, 올해들어 6월까지만 33만6000건을 기록하고 있다"며 "전담인력은 2명 뿐으로 1명이 하루에 1345건을 적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검역본부에 구멍이 있다고 한다면, 특송화물 쪽"이라고 토로했다. 한 명이 하루에 검역할 수 있는 최대량은 식물의 경우 약 48건이다. 식물검역 전담인력이 2명이기 때문에 40만5000건(2014년 기준)을 모두 처리하려면 11.5년(4218일)이 걸린다. 하루 최대 처리량이 40건인 축산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기준(28만건)으로 반입 축산물을 모두 검역하는 데 4.79년(1750일)이 걸린다. 이 탓에 특송화물의 경우 휴대품과는 달리 선별적인 검역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는 설명이다. 인력 증원 만이 구멍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5. 오후 5시. 화물검역과 국제우편팀. 검역본부 국제우편팀은 항공기가 실어오는 우편물을 그대로 컨베이어 벨트에 옮겨놓고 검역을 실시한다. 하루동안 처리하는 우편물은 약 11만건에 달한다. 5곳에 설치된 세관의 엑스레이(X-ray)와 검역탐지견 2마리가 검역대상 우편물을 걸러낸다. 24시간 근무는 필수다. 금지물품 은닉방법도 갈수록 진화한다. 이복섭 사무관은 "두꺼운 책이나 잡지 속을 파낸 후 시가 2억원 상당의 토마토 종자를 숨기거나, 애완곤충을 과자봉지나 장난감 속에 숨겨 반입하려고 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또 우편물을 먼저 뜯어봐야하는 탓에 민원인들이 항의가 끊이지 않는다. 이 사무관은 "우리가 먼저 우편물을 뜯어보기 때문에 민원인 중에선 '우편물 안에 돈을 넣어두었는데 사라졌다'며 항의를 하는 분도 더러 있다"며 "하지만 AI 같은 국가 재난형 질병과 식물병해충 유입을 막아내고 있다는 자부심 만큼은 남다르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김용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