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나는 대한민국 학부모입니다--노후대책없이 사교육에 올인한 '에듀푸어'

윤정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30 14:03

수정 2015.08.30 14:03

" '엥겔지수' 라는 말이 있지요. 소득금액중 식료품 구입 비율인데 이 수치가 높을수록 저소득층과 후진국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에듀지수'가 있는데 소득금액 중 자녀 교육 관련 지출 비율인데 저는 45~50% 되는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해 수입의 절반이 아이들 교육비로 들어간다는 얘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고소득층으로 분류되는데 사실상 저는 푸어입니다. 이른바 '에듀푸어'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학부모의 얘기다.


17일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전국의 사교육비는 18조 2297억원이다. 서울시는 4조277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1년의 20조1266억원, 4조8018억원에 비하면 다소 줄었다. 그러나 사교육 열기가 줄어든 탓보다는 학생 수 감소에 따른 영향일 뿐 실제로 학생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지난 2014년 전국은 24만2000원, 서울은 33만5000원으로 전년 보다 각각 1.3%와 2.1%가 증가했다.

서울지역 초중고 학생 10명 중 7명은 매달 33만5000원(평균)을 들여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교육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대한민국에서 사교육을 안 시키는 학부모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한민국 학부모들을 만났다.

사교육 전선에서 놓인 학부모들은 '돼지 엄마'라는 수식어도 부담없다고 했다. "특별한 사람 취급 받는 것 보다 개념없는 엄마로 인식되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 빈곤층이란 용어로도 불리는 '에듀푸어'는 교육에만 집중한 나머지 '적자 가계부'에 따른 불균형적 소비로 기형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이들 교육을 포기하지 않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선행 없는 대가…개념없는 엄마

"이제 절반이다. 정신없던 신학기는 이제 절반을 넘어섰다. 초등학교 학부모를 너무 얕봤다. 초등학교 1학년 엄마 노릇, 만만한 게 아니였다."

서울 목동의 전업주부 이미경(가명)씨는 1978년생이다. 그는 지난 3월부터 5월 까지 너무 잔인한 봄을 보냈다고 한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대비한 사전 선행학습을 안 시킨 대가였다.

요즘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은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알림장, 문장 받아쓰기, 사칙연산이 있는 수학익힘 등은 아이와 엄마에게 있어 어려운 과제다.

그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들을 보며 엄마로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했다. 우리 아이만 그럴까? 초등학교도 선행학습을 위한 보습학원을 보내야 하나?

그러던중 지난 4월 초 학부모 상담주간에 전화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우리 아들이 한글이 미숙하기 때문에 알림장을 잘 받아쓰지 못하고 있고 이해력이 떨어져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시켜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한마디로 다른 학생들과 같은 수준을 유지해야 수업진도를 나갈 수 있으니 엄마가 '개념'을 가져달라는 얘기였다. 아이를 처음 초등학교에 보낼 당시에는 아이에게 공부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다짐했건만, 입학 3개월 만에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다른 학생에 비해 학습능력이 크게 떨어지니 마음이 급해져, 같은 반 학부모들이 추천하는 학원을 알아보고 소수 정예반과 일대일 수업, 문제집 풀이에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은 이제 오후 7시가 다 되어야 집에 온다.

이런 아들을 보면서 '개념있는 엄마도, 개념없는 엄마도 아닌' 아들에게 그냥 혹독한 엄마로 자리 잡고 있다.

■두 아이 한 달 학원비 240만원

"초등 4학년 아들 태권도를 포함해 사교육은 모두 네가지. 한 달 학원비 90만원, 중학교 3학년 누나가 다니는 영어·수학 학원까지 합치면 240만 원입니다."

5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는 김영수(가명·46)씨. 그는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 살고 있지만 소득의 절반 넘게 사교육비에 쓰다 보니 집도 장만하지 못했다. 볼혹은 넘긴 나이에도 불구,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 있다. 그런 그가 대치동에서 살고 있는 이유는 아이들의 교육 때문이다.

그는 두 아이들 모두 공부를 곧잘하고 있어 대학 입학 전 까지는 여기서 교육을 시킬 생각이다. 하지만 또래 직장 동료들과 약간은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지만 주변에 본인의 생활을 권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사교육 때문에 적자인 채로 2년 넘도록 가계부를 쓰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어떤 대책이 없다. 그렇다고 물려받을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교육비를 위한 마이너스 통장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익숙해진 현실로 자리잡고 있다. 오히려 교육비를 한푼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실에 은근히 뿌듯했다.

교육에만 집중한 나머지 이뤄지는 그의 불균형적 소비는 생활을 기형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교육을 제외한 의·식·주 등 다른 분야의 소비는 모두 평균 이하로 줄인 특수한 소비행태를 보였다. 김씨는 전체 소득 중 의식주에 27%인 130만원을 소비하는데, 이 수치는 평균인 32.4%보다 5%포인트 낮다. 그밖의 필수적인 소비부문인 보건·교통·통신 등으로 나간 지출 규모도 미미하다. 건강보험 등은 해약한 지 오래됐으며, 퇴직금도 이미 받아 썼다. 김씨는 교육 빈곤층이란 용어로도 불리는 '에듀푸어'대표적인 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 '국내 가구의 교육비 지출구조 분석'에 따르면 에듀푸어는 '부채가 있고 가계가 적자상태인데도 평균보다 많은 교육비 지출 때문에 빈곤하게 사는 가구'로 규정된다.


자녀 교육비 지출이 있는 가구의 평균 교육비는 소비지출의 18.1%인 데 비해 에듀푸어 가구의 교육비 비중은 28.5%에 이른다. 소득의 22%인 약 68만5000원이 에듀푸어 가구의 평균 가계수지 적자였다.


김씨는 "노후 등 아무런 대책없이 사교육 대열에 동참하는 본인의 모습이나 밤까지 학원에서 시름하는 아이들이 불쌍해서 과감히 지금의 상태를 정리하려 했지만 이들 대학 입학 까지는 어떻게든 견뎌 볼 생각"이라며 "하지만 주변에는 이 같은 패턴을 권하지 못 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yoon@fnnews.com 윤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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