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이의 눈에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신호등도, 교통순경도, '녹색어머니'도 없는 삼거리에서 등교시간 수십대의 차들이 물흐르듯 움직이는 광경 때문이었다. 운전을 하지 않는 아이지만 한국에서와 다른 점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서로 먼저 가려는 차들이 뒤엉켜 경적과 욕설이 난무하는 한국적 풍경을 익히 알던 터라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미국에 있는 동안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남겨진 기억이다.
미국 운전자들은 어디든 멈춤 신호(stop sign)가 있는 곳이면 완전히 차를 멈추고 좌우를 살핀 후 출발한다. 사거리에서는 진행방향에 관계없이 먼저 온 차가 먼저 출발한다. 차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시간에 교통순경 없이도 질서를 찾는 간단한 비결이다. 스쿨버스가 서있을 때는 떠날 때까지 모든 차가 멈추어 기다린다. 앰뷸런스나 소방차가 지날 때는 모두 길 한쪽으로 차를 세운다. 역시 선진국이라 운전도 선진국민답게 하는 것일까 싶지만 비결은 운전면허 시험과정에 있다.
미국에 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첫 번째 과제는 운전면허 취득이다. 차가 없으면 한 발도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운전면허는 필수다. 운전면허증이 신분증을 대신하는 점도 중요하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서 이른바 '베스트 드라이버'였음을 자랑할수록 운전면허 따기가 힘들다는 사실이다. 운전면허 실기시험에서 시험관의 주된 관심은 안전운전 여부다. 출발부터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전후좌우를 살핀 후 안전하게 해야 한다. 차로 변경 때는 반드시 고개를 돌려 좌우를 확인해야 한다. 멈춤 신호에서 완전히 멈추지 않고 조금이라도 바퀴가 구르면 여지없이 불합격이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운전솜씨를 뽐내는 경우는 더 볼 것도 없다. 수십년 운전경력을 자랑하는 사람이 일곱 번까지 떨어진 걸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화를 내지만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라도 안전운전을 습관화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한국에서 성난 사자처럼 운전하던 사람도 순한 양이 된다. 애초부터 선진국민답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이른바 규제완화 차원에서 우리 운전면허시험을 대폭 간소화한 탓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직선 거리로 50m 정도 운전을 하면서 방향지시등 한 번 켜고, 와이퍼 한 번 작동하고, 급브레이크 밟는 게 기능시험의 전부다. 한마디로 직진만 할 수 있으면 합격이다. 전체 교육시간도 13시간에 불과하다. 학과시험 5시간, 기능시험 2시간, 도로주행 6시간으로 하루 반이면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다. 리어카 면허라는 비아냥이나 안대를 하고도 합격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는 중국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되는 창조행정인지는 모르지만 도로의 무법자를 양산하는 한심한 정책일 뿐이다. 운전면허 간소화 이후 전체 교통사고 발생량도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청은 통계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하는데 그 정도 교육으로 운전면허를 주기에 충분한지 스스로 묻는 게 합당하다. 난폭운전, 보복운전 등이 줄지 않고 흉기로 변한 자동차들이 거리를 질주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안전운전 교육은 도외시한 채 운전면허를 따게 한 자업자득인 것이다. 교통문화 선진국과 후진국은 운전면허 취득 과정에서 갈린다. 운전이야말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적용되는 분야다. 운전면허 취득은 더욱 엄격하게 해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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