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노벨상을 향해 뛴다] (2부·①) "장기 연구성과 코앞 일부 노벨상 유력 R&D예산 깎지 마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01 18:13

수정 2015.09.01 21:44

2부. 국회의원에게 듣는다 1.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
내년 정부 예산 4.1% 증가 R&D예산은 2.3% 줄여 책정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
정부가 경기침체 말하지만 1960년대 한 해 예산 넘게 '트리가 마크2' 투자가 중동 원전 수출로 돌아왔다
대학은 소규모 창업연구 국가는 대형 전략연구 맡아야
잘 다져진 기초과학은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핵심 우리 경제성장 이루는 근간임을 잊지 말아야
[노벨상을 향해 뛴다] (2부·①) "장기 연구성과 코앞 일부 노벨상 유력 R&D예산 깎지 마라"


과학 연구란 창의력에 열정과 의욕을 더한 집합체다. 당연히 실력이 가장 기본이겠지만, 거기에 사기가 상당히 중요하게 연관돼 있다. 문제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려도 유수의 국가들을 따라갈까 말까 한 상황인데 오히려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줄어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일선 현장의 과학자들이 느낄 피로감은 상당하다.

서상기 국회의원(69)은 국회에서 이름난 이공계 출신 인물이다. 17.18·19대 국회의원으로 줄곧 과학기술계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특히 이공계 출신 의원들과 함께 친목을 넘어 국회 차원에서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주력했다. 현재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과학기술혁신포럼 회장으로 지난 17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180여회에 걸쳐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왔다.

그런 그가 최근 국회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 내년 정부의 R&D예산 감축을 놓고 서 의원은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잃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정부는 지난달 국가과학기술심의회를 통해 국방, 인문.사회분야 R&D를 제외한 19개 부처 373개 주요 과학기술 관련 R&D 예산을 올해 12조9350억원보다 2.3% 줄어든 12조6380억원(잠정)으로 책정했다. 정부의 R&D 예산이 축소된 것은 지난 1991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서 의원은 "내년도 정부 전체 예산은 4.1% 증가할 것이라고 하는데, 유독 국가 R&D 예산을 2.3% 줄인다는 것은 그만큼 과학기술이 국가재정 순위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이런 현실은 과학기술인들의 엄청난 사기 저하는 물론 국가의 미래 경쟁력 제고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가령 예산은 줄더라도 연구원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사기를 진작할 수 있는 제도나 정책이 확실히 뒷받침되면 상쇄가 되겠지만 지금 아무런 변화도 없이 예산만 줄인다는 것은 과학자들의 연구의욕을 꺾는 관료주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특별위원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그간 우리 과학계를 바라보며 느낀 점은.

▲서울대 공대 입학을 시작으로 과학기술계와의 인연이 어느덧 50여년이 돼간다. 특히 지난 17대 국회에 과학기술계를 대표해 비례대표로 입성해 의정활동을 펼쳐오며 많은 것들을 느꼈다. 정부의 과학기술 지원정책이 대부분 관료주의에 입각해 성과 지향적이다보니 기초과학 분야를 홀대하고, 창의성이 결여되고 경직되는 한계가 여전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 지난해 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과학기술 분야에만 노벨상 수상자가 19명이나 된다.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우리나라가 심사숙고할 점이 있다. 일본은 장기간의 기초연구가 가능한 환경을 구축했고, 거기서 나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연구자 중심의 산학협력 생태계를 통해 실용화까지 이어간다는 점이다. 즉, 한 우물만 파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과 더불어 장기간 투자할 수 있는 정부와 기업의 느긋한 기다림의 여유가 만나 최고의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도 행정 편의주의식 불합리한 관료주의적 간섭에서 벗어나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조력을 보장하는 환경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현장의 연구자들 역시 당장의 결과물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 비전을 갖고 연구에 임해야 한다. 또한 스스로 창의적인 주제를 찾아나서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창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도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과학자들에게 무조건 헝그리 정신만 강요할 순 없다. 오히려 노벨상에 한발 더 가까운 나라들을 보면 기초과학 연구, 과학기술 R&D에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점이다. 기초과학이라는 것 자체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보니 과학자 스스로 흥미를 갖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동기가 필요하다. 지원이 열악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실패를 감내할 만한 인내만 요구하는 것은 잘못됐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정부가 내년도 주요 R&D 예산을 줄이겠다고 방향을 바꾼 건 참 실망스러운 일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올해보다 무려 5%나 줄이겠다는 얘기다. 재정부처에선 내수경기 침체에 따른 세입감소와 복지 분야 재정지원 수요 확대 등을 이유로 말하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1960년대 초 정부의 한 해 예산을 넘어서는 '트리가 마크2(우리나라 최초 원자로)'에 투자했던 것이 중동의 산유국들에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는 국가로 발전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

―일각에선 R&D 예산 감축을 부진한 사업성과 및 연구비 할당과 관련된 비효율성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도 단순히 예산 규모를 늘리는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낭비요인을 제거해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물론 최근 불거진 일부 기관의 연구개발비 유용사례가 낭비요인으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R&D 혁신방안 등 별개의 방법으로 잡을 일이다. 이를 이유로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될 것이다. 현장에선 벌써부터 과학기술계가 세금만 축내는 집단으로 낙인 찍힌 것 아니냐는 걱정과 불만의 목소리가 거세다. 또한 민간 부문을 포함한 국가 R&D 투자액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15%(2013년 기준)로 세계 1위이기 때문에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가 R&D 투자액은 미국의 9분의 1, 중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일본이나 독일 등에도 크게 뒤지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특히 우리나라 국가 R&D 투자 중 정부투자 비율은 24%(2013년 기준)에 불과해 미국 37.1%와 독일 30.2%, 프랑스 37.3%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노벨상을 향해 뛴다] (2부·①) "장기 연구성과 코앞 일부 노벨상 유력 R&D예산 깎지 마라"


―앞서 언급한 '과학기술계가 세금만 축내는 집단으로 낙인 찍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여기 있다. 국가 R&D 투자에서 76%를 차지하는 민간 부문의 R&D 세제지원을 축소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기획재정부는 기업의 R&D 인건비나 교육비, 물품비, 설비투자 등에 대해 연간 3조5000억원 규모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는데 올해 세제개편안에선 이런 세액공제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기업의 R&D 투자는 줄어들 것이고, 내년도 국가 R&D 투자는 GDP 대비 4%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얼마 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선 '멀어진 미래'라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 정부가 과학기술, 특히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줄여 결국 유망 분야의 기술 진보가 느려졌다고 비판했다. 이는 연방정부 예산 중 R&D 예산 비중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 수준이며 이것이 미국의 미래를 위협한다는 판단에서 제출된 것이다. 그런데 MIT가 격렬히 비판한 미국의 R&D 예산이 얼마일까. 약 1460억달러로 170조원을 넘는다.

―예산도 문제지만, 국민 세금으로 이뤄진 R&D 예산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는데.

▲그렇다. 국민 세금으로 지원되는 국가 R&D 사업 등의 경우 불합리한 낭비요인을 없애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최소한의 예산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노벨상에 도달할 만한 연구성과, 업적을 가진 과학자를 기대하기 앞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진득하게 기다리고 있느냐는 점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성과에 집착해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노벨상도 마찬가지로 우리 과학기술 수준이 높아지면 누군가 자연스레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기업들의 기술혁신 투자에 따른 생산성 증가를 평균 14년으로 보는데, 국가의 과학기술 투자는 최소한 20년은 봐야 한다. 물론 R&D 예산을 낭비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결과론적으로 놓고 볼 때 우리는 너무 많은 연구투자비를 목표지향적 과제에 힘을 더 실어준다는 것이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현장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묻지마 연구'를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자체가 국가적 과학기술 척도를 드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외에도 특정 과학인에게 예산이 쏠린다는 지적이 있다. 연구 투자에 대한 '부익부 빈익빈' 어떻게 생각하나.

▲대상 선정에 있어 부정하거나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지적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R&D 투자의 평준화를 말하는 것이라면 절대 반대한다. 전자의 경우라면 평가기준과 과정을 투명화해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부정을 막으면 된다. 그러나 시시각각 세계 일등이 급변하는 기술전쟁 시대에 R&D 평준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체육계를 예로 들자면 국가대표 육성을 위한 엘리트체육 시스템은 우리 동네 생활체육인을 지원하는 시스템과는 분명 달라야 하는 것이다. 과학기술계도 강정호, 김연아, 박지성 같은 세계 일등을 집중 발굴.육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학계와 정부, 민간의 역할에 대해선 어떤 관계가 만들어져야 하나.

▲연구자 중심의 자율형 연구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대학은 소규모의 창의적 연구를 담당하고, 교육 활성화에 주안점을 두며, 출연연은 대학이 할 수 없는 대형 연구와 국가의 전략 연구를 담당해야 한다. 특히 정부 R&D 추진체계의 거버넌스도 비전문가인 관료가 아닌 미국, 독일 등 선진국처럼 민간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이를 통해 미래지향적 선도적 연구가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

―노벨과학상은 우리에게 어디까지 다가왔다고 보나.

▲나뿐만 아니라 아들도, 손자도 이공계 출신이다. 또 매달 20일마다 국회 이공계 의원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요즘 많이 들려오는 얘기가 노벨상에 근접한 연구성과가 속속 눈에 띈다는 것이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다. 그땐 우리나라가 미국이든 일본이든 유수의 국가들과 필적할 만한 연구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 같다. 아쉽다는 탄식이 쏟아져 나온다. 노벨상에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20년, 30년에 걸친 장기 연구가 결실을 보는 경우도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고,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과학자도 몇 명 있다. 사실 노벨상은 목적이 될 수 없다. 노벨상을 타기 위해 그 많은 예산을 국가 R&D에 투자하는 게 아니다.
노벨상은 하나의 수단이다. 노벨상을 거머쥘 수 있을 정도의 자체 연구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잘 다져진 기초체력(기초과학)은 미래 먹거리 산업을 창출하는 핵심이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이루는 근간이다.

gms@fnnews.com 고민서 기자

■약력 △서울대 재료공학과 △드렉셀대학교 대학원 공학 박사 △미국 포드자동차 선임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원장 △호서대 환경안전공학부 교수 △제17·18·19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과학기술특별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교육과학기술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제19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 △제19대 국회 후반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 △제19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수상경력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우수국회의원대상 대상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