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69) 대한민국 날씨의 바로미터, 백령도 고층기상관측소
한반도 기상관측 최전방.."남북 대치땐 기류·바람 더 중요하죠"
인천서 서북쪽으로 250㎞ 편서풍 탄 백령도 공기 4~5시간이면 서울 도착 전국 날씨 예측할 수 있는 곳 지상~성층권 기상확인 위해 하루 2번 관측기기 날려보내
황해도 옹진반도와 17㎞ 북측 표적 되기 쉽지만 만일의 충돌사태 벌어져도 미사일 탄도분석 도움 주려면 기상관측 포기할순 없어
'외롭고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직원 6명과 청원경찰 3명 "군대로 치면 GOP와 같아 사명감 없으면 할 수 없어요"
【 백령도=장용진 기자】 "꼭 가야 돼요?" 남북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달 24일, 백령도행 여객선을 타게 된 기자에게 가족들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거기가 일터인 사람들도 있는데 뭘 그러느냐'며 태연한 척했지만 기자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쟁터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살아서는 그곳을 나오지 못하는 것 아닌지 하는 방정맞은 생각에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하는 백령도행 여객선은 한산했다. 여름 휴가철이 끝나가는 시점이기는 했지만 승객은 평소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원래 2척이 투입되던 항로였지만 이날은 1척만 투입하고도 자리가 남을 정도였다. 한산해진 승객 때문에 의외의 행운도 만났다. 당초 다른 배를 탈 예정이던 백령도 고층기상관측소 직원을 같은 배에서 만난 것이다. 우리나라 기상관측의 최전선 백령도 고층기상관측소에 대한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다.
■백령도는 '날씨 타임머신'
백령도는 한반도의 서쪽 끝이다. 수도권을 기준으로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250km 떨어진 곳에 있다. 배로는 4시간30분, 헬기로는 2시간이 걸린다.
공기의 흐름은 배의 속도와 비슷해서 편서풍이 불 경우 백령도의 공기는 대략 4~5시간 뒤에 서울에 도착한다.
이 때문에 백령도의 날씨는 4~5시간 뒤의 서울의 날씨가 된다. 여기에 섬과 육지라는 지형적 특성만 대입하면 상당부분 예측이 가능해진다. 황사같은 것은 백령도 상공을 지난 지 4~5시간이 지난 뒤 서울에 도착한다고 보면 된다.
백령도 관측소 김성중 소장은 "기류의 흐름이 조금 바뀌어서 서울을 비켜갈 수도 있고 가다가 먼지입자가 가라앉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4시간 뒤에는 서울에 황사가 도착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입장에서 보자면 백령도는 4시간 뒤의 날씨를 볼 수 있는 '타임머신'과 같은 곳이다.
비단 서울 뿐만이 아니다. 북서계절풍이 부는 시점에는 백령도의 날씨가 얼마 뒤 전국의 날씨를 내다볼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근거가 된다. 이 때문에 백령도관측소는 다른 곳에 비해 많은 기상관측 장비를 갖추고 있다. 최신 기상레이더를 비롯해 낙뢰감지장비, 황사관측장비가 있고 고층기상관측을 위해 라디오존데를 매일 2차례 성층권으로 날려보낸다. 또 인근 대청도에는 파도를 관측하는 장비도 있다.
라디오존데란 헬륨가스를 가득 채운 기구로, 각종 기상관측 장비가 달려있다. 주로 지상 10km이상~성층권 사이의 기상의 흐름과 상태를 살피기 위해 띄우는 것이다. 국내에는 모두 5곳(민간기준)에서 라디오존데를 날려보내고 있다.
백령도관측소에 따르면 이 정도의 관측장비는 국내 다른 관측소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으로 제주도에 있는 고산관측소에 버금가는 장비를 갖추고 있다. 오병찬 주무관은 "얼마 전부터 기상예보는 하지 않기 때문에 업무가 조금 줄긴 했다"면서도 "백령도관측소가 갖는 중요성이나 다양한 장비 때문에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공습 사이렌 울려도 대피 못해
육지와 거리만 감안하면 백령도는 북한에 훨씬 가깝다. 북한 땅인 황해도 옹진반도가 훤히 보일 정도다. 거리는 대략 17km. 인천까지 거리와 비교할 때 30분의 1 수준이다. 북한이 가진 방사포가 평균 120km의 사거리를 갖고 있고 각종 야포의 사거리는 40~50km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포격 사거리 내에 들어가고도 남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얼마 전처럼 남북한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온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쏠린다.
기자가 방문하기 이틀 전인 8월 22일 오후 4시께 실제로 공습 사이렌이 울려 전 주민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날 오후 5시까지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포격을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당시 백령도 주민의 절반 정도가 가까운 대피소로 피난을 갔지만 백령도관측소 직원들은 대피할 수 없었다. 매일 오후 3시 전국을 화상회의시스템으로 연결하는 기상청 예보회의가 끝나지 않았기도 했지만 그 많은 장비를 두고 도저히 내려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업무 특성상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만약 포격을 한다면 표적으로 삼기 딱 좋은 곳이 기상관측소다. 위험도로 따진다면 다른 어떤 곳보다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백령도관측소의 기상레이더를 담당하고 있는 김종역 소장은 "언제 대피소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겠느냐"면서 "관측소 건물 지하에 임시대피시설도 있으니 비상사태가 생기면 그곳으로 대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사일이나 야포의 탄도 분석을 하려면 바람이나 기류 등 고층의 기상상황을 분석한 자료가 있어야 한다면서 "전쟁이 나면 더욱 기상관측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가족들이 걱정하지만…
남한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북한과는 가까운 곳, 북한이 포를 쏘면 바로 맞을 수 밖에 없는 곳, 하지만 포에 맞는 한이 있더라도 도망갈 수 없는 곳에서 근무하는 당사자보다 가족들의 애가 더 끓기 마련이다. 백령도기상관측소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 지난 8월말처럼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면 전화통이 불이 날 정도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태연자약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말이었다.
"육지에 있는 가족들은 늘 걱정하죠. 요즘같은 때도 걱정이고, 태풍이 불어도 걱정이고... 하지만, 그렇다고 여길 내팽개치고 나갈 순 없잖아요. 공무원인데…."
백령도관측소 오병찬 주무관의 대답에 물어본 기자가 더 머쓱해질 정도였다.
백령도 생활 10년째인 김종역 레이더 소장은 특별한 노하우를 내놓기도 했다. 남북한 사이의 해상에 중국배가 많이 들어와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오랫동안 살다보니 중국배가 있을 때는 북한이 도발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실제 당시 남북한 사이의 바다에는 중국배 수십척이 조업을 하고 있었고 그들을 내보내기 위해 남북한의 경비정들이 연신 방송을 해대고 있었다.
기상관측소 직원들 뿐만 아니라 백령도 주민들의 반응 역시 대체로 비슷했다.
육지의 시선에서 보자면 걱정스럽고 불안한 곳이지만 막상 백령도 안의 분위기는 지극히 평온하기만 했다. 오히려 매시간 격앙된 말투로 '전쟁위기'를 강조하는 TV속보 방송이 더 무서울 지경이라는 주민들도 많았다.
■누군가는 있어야 하는 곳
백령도관측소는 말 그대로는 '격오지'다. 당장 백령도만 해도 서울에서 배로 4시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오지인데, 그 오지에서 또 한참을 산을 올라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지 속의 오지'인 셈이다. 몇날 며칠을 가도 동료들 외에는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고 바람소리 외에는 들리는 소리도 없다.
그렇다고 할일이 적은 것도 아니다. 보유장비로는 한두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보니 장비만 살펴도 하루 해가 넘어갈 정도다. 외롭고 위험한데 할일은 많은 곳이다. 그렇다고 보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통상 이런 격오지에는 당연히 수당이 따라오지만 기상청의 경우 6만원이 전부다. 연평도 포격 이후 중앙정부 차원에서 '서해5도지원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지방직 공무원만 해당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상청 내에서는 기피하는 근무지가 됐다. 심지어 어떤 여직원은 이곳으로 발령이 나자 사표를 낸 적도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사명감과 책임감이 없으면 견딘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올해가 3년째인 김성중 관측소장을 비롯해 올해로 10년째라는 김종역 레이더 소장은 "오겠다는 후임자가 없어 그냥 눌러 앉았다"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군대로 치면 최전방 GP와 같은 곳입니다. 누군가는 여기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곳에 관측소가 없으면 안되는데…."
현재 백령도고층기상관측소에는 김 소장을 비롯해 레이더를 담당하는 김종역 소장, 오병찬 주무관 등 6명의 기상청 직원과 3명의 청원경찰이 근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