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70) 북한산 인수대피소 대원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북한산으로 출근 사람 구하는 게 천직
대원들은 일반인 40분 걸리는 구간을 20분에 주파
점심은 도시락.. 산 정상 문턱서 생리현상 해결
암벽 등반로 초입에 장비 없는 등산객 출입 통제 초창기엔 대원들과 등산객 간 심하면 몸싸움 하기도
과거 1년에 8명 사망사고가 현재는 한 해 1명 발생
지난 5월 26일 오후 4시30분 북한산 인수대피소 전화벨이 울렸다. 북한산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를 기점으로 4개 거점 초소에서 근무를 마친 대원들이 인수대피소로 막 복귀한 순간이다. 수화기 속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나뭇가지가 거센 산바람에 휘둘리는 듯한 괴음도 수화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휴대폰 배터리가 별로 없습니다. 어떻게 하죠. 여기가 지금 어딘지 모르겠어요." 전화를 받은 강균석 북한산 인수대피소 반장(44)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피소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그러면 휴대폰으로 사진 두 장만 찍어서 보내주세요. 정면 사진이랑 90도로 틀어서 찍은 사진을 보내주세요. 빨리요." 수화기를 내려 놓은 지 2분 후 강 반장의 휴대폰에 사진 두 장이 도착했다. 사진을 눈여겨볼 겨를도 없이 강 반장과 이동윤 북한산 인수대피소 대원(47)은 구조장비를 챙겨 사고현장으로 향했다. 강 반장은 "당시 사고자는 반바지 차림에 아무런 등산장비도 없이 절벽 바위 60m 정도를 올라가서 고립된 상황이었다"며 "아무 생각 없이 앞사람을 따라가다 바위 위에서 혼자 고립돼 구조를 요청한 것이었는데 정말로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산 인수대피소 대원들의 출근시간은 오전 9시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위치한 백운대탐방지원센터까지 차로 이동한 후 1㎞ 정도 산을 올라야 대피소에 도착한다. 현재 대원은 총 11명이다. 이 가운데 2명이 여성이다. 대피소로 출근한 대원들은 30분 정도 장비를 점검하고 거점 초소로 향한다. 팀장 또는 반장이 대피소에 남아 신고 접수, 대원 동선 파악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대원들이 실제 근무를 하는 곳인 거점 초소는 총 4곳이다. 대피소에서 백운대, 숨은벽, 망경대, 인수봉 근처에 마련된 거점 초소까지의 거리도 약 1㎞다. 대원들은 매일 2㎞의 산길을 감당하며 출근을 하고 있다.
최성순 북한산관리사무소 안전계장은 "과거 초소가 마련돼 있지 않았을 때는 대피소에 있는 각종 구조장비를 챙겨서 나가야 했기 때문에 매일 15㎏정도 되는 배낭을 매고 거점으로 이동했다"며 "3년 전에 각 거점마다 초소가 설립돼 그곳에 기본적인 구조장비를 갖다 놓으면서 대원들의 배낭 무게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전했다.
■북한산 곳곳에 구조활동 기억
대피소에서 거점 초소까지 길은 가파르다. 나무로 계단을 만든 등산로도 있지만 바위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 등산객의 경우 40분 정도 걸리는 이 구간을 대원들은 보통 20여분 만에 주파한다.
대피소에서 거점 초소까지 가는 길에는 대원들의 '스토리'가 배어있다. 비탈길에서 미끄러진 사람을 응급조치했는가 하면 인근 암벽바위 중턱에 고립된 남성을 구조하는 등 생생한 구조 경험이 응축돼 있는 곳이다.
강 반장은 "현장근무를 위해 이동하면서 북한산의 경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점마다 발생했던 사고가 떠오른다"면서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휴대용 자동제세동기(AED)는 거점 초소로 이동하는 대원들이 가장 신경 쓰는 장비다. 갑작스럽게 심장질환을 일으키는 등산객을 대비한 응급치료 기기다. 지난 5월 초 대원들은 AED장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최 계장은 "지난 5월 1일 북한산을 등반하던 한모씨가 노적봉 삼거리 일대를 지나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서 호흡과 맥박이 불규칙해 동료인 손모씨가 급히 북한산국립공원에 구조를 요청했다"며 "당시 백운봉 거점근무 중이던 이주영 대원 등 4명이 신고를 받자마자 현장에 출동해 심폐소생술과 AED를 활용해 소중한 생명을 살려냈다"고 말했다.
■암벽등반장비 체크는 필수,안전산행 지름길
거점 초소에서 대원들의 하루 근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보통 2인 1조로 팀을 짜 4개 거점 초소에서 근무한다. 일단 대피소를 떠나 초소 근무를 시작하면 퇴근을 위해 대피소로 복귀하기 전까지는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원들은 산 정상 문턱에서 생리현상을 다 해결해야 한다. 점심이 항상 도시락인 이유도 여기 있다.
강 반장은 "그래도 지금은 나은 편"이라며 "과거 초소가 없을 경우에는 겨울에도 그냥 노상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거점 초소 근무의 핵심은 '통제'다. 암벽등반을 하러 오는 등산객이 많은 북한산에서 대원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등산객의 장비 체크다. 암벽 등반로 초입에 위치한 각 거점 초소에서 헬멧, 안전벨트, 로프 등과 같은 장비를 갖추지 못한 등산객은 출입이 통제된다. '선 통제, 후 구조'가 대피소 근무 제1 원칙인 것이다.
이 같은 대원들의 통제가 자리 잡힌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2006년부터 북한산 관리사무소는 암벽등반객들의 장비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장비 통제가 시작된 초창기에는 대원들과 등산객 간에 크고 작은 승강이가 잦았다. 수십년을 아무 제재를 받지 않고 들락날락했던 곳에서 대원들의 통제를 받는 것에 불편을 느낀 등산객이 많았던 것이다.
이동윤 대원은 "등산객의 장비를 체크하면서 등산객들의 불만이 굉장히 많았고 심하면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며 "갑자기 검문받는 느낌일 것으로 충분히 이해가 됐기 때문에 사고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며 꾸준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장비 통제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장비를 갖춰야만 암벽등반이 가능하니 안전사고가 자연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강 반장은 "과거 1년에 8명 정도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 현재는 한 해 1명 정도 발생하고 있다"며 "다른 요인도 있지만 장비를 통제한 효과가 나타난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암벽 전문가, 매년 해빙기에 낙석 제거 작업
매일 구조·통제 업무를 반복하는 대원들은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낙석 제거' 작업을 한다. 실제 대원들이 인수봉 등 암벽에 올라 낙석 위험이 있는 지점을 체크하고 바위를 정리하는 것이다. 대원들이 전문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암벽등반 실력을 보유한 이유다.
과거 민간 산악인을 대상으로 암벽등반 강사를 했던 이동윤 대원은 "암벽등반을 원래 했던 대원도 있고 그렇지 않은 대원들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대피소 근무를 몇 년 하면 대부분 암벽등반에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낙석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계절적인 요인이 가장 크다. 바위 틈 사이의 흙이 얼었다 녹으면서 바위들의 위치가 틀어지는 과정에서 낙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수대피소는 매년 3월 말에서 4월 말 사이인 해빙기에 맞춰 '낙석 제거' 작업을 펼치고 있다.
강 반장은 "자주 얼었다 녹았다 하는 곳에서 낙석 위험이 크기 때문에 낙석 제거 작업은 주로 남향으로 있는 암벽에서 한다"며 "대원들이 대부분 암벽에는 실력이 있지만 굉장히 위험한 작업이기 때문에 그날 조금이라도 몸상태가 안 좋은 사람은 작업에서 뺀다"고 설명했다.
■왜 이런 일을…"산이 좋고 사람이 좋아야"
북한산관리사무소는 현재 인수대피소 대원을 충원할 예정이다. 2명 정도의 대원을 뽑기 위해 채용공고를 냈지만 지원자들 가운데 대원 자격에 적합한 사람을 고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피소 근무가 단순히 등산객을 안내하고 등산로를 점검하는 등 은퇴 후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하며 지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인식을 갖고는 실제 대피소 근무를 할 수도 없고, 하더라도 며칠 못 간다는 것이 관리소의 입장이다.
최 계장은 "일반 지원자도 있고 민간 산악회에서 지원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원 기준에 적합한 사람이 많지 않다"며 "대피소 근무가 굉장히 체력적으로도 힘이 들고 전문성도 필요한 일이면서 기본적으로 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원으로 채용이 됐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입 대원의 경우 한 달이면 체중이 3~4㎏ 정도 빠진다. 출퇴근 4㎞의 등산길을 매일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서 무엇보다 신속히 현장에 도착해 구조활동을 펼쳐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보다는 2~3배 빠른 속도로 산길을 왔다갔다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혹독한 훈련이 필요하다. 하루 근무를 마치고 일부러 험한 길을 택해 대피소로 복귀하는 이유다.
강 반장은 "신입 대원의 경우 일부러 험한 길로 출퇴근을 시켜 어떤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사고 현장에 도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며 "쉽게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다가 이 같은 힘든 교육을 견디지 못하고 초반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고 털어놨다.
길게는 10년 넘게 대원들은 왜 이같이 힘든 일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을까. 대원들의 급여가 높은 것도 아니다. '사명감'이라는 말은 너무 거추장스럽다. 대원들은 산이 좋은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은 것이다.
강 반장은 "이 일을 하는데 급여를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되고, 일단 산을 좋아해야 한다"며 "산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고에서 사람들을 지켜주는 데 보람을 느끼는 것이 이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이승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