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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5주년/대한민국 명장열전] (13) 한복의 세계화 주도한 한복디자이너 이영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20 17:18

수정 2015.09.20 22:03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는 2010년 파리 오트쿠튀르 무대에 한복을 올리는등 한복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특히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한복 16벌을 영구 전시했고,지난 2008년에는 구글이 '세계 60인 아티스트'에 선정하기도 했다. 이영희 한복디자이너가 자신이 만든 한복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김범석기자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는 2010년 파리 오트쿠튀르 무대에 한복을 올리는등 한복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특히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한복 16벌을 영구 전시했고,지난 2008년에는 구글이 '세계 60인 아티스트'에 선정하기도 했다. 이영희 한복디자이너가 자신이 만든 한복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김범석기자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는 지난 1993년 프랑스 파리서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프레타 포르테에 참가했고 2010년 최초로 파리 오트쿠튀르 무대에 한복을 올리며 명실공히 한복의 세계화를 선도한 디자이너다. 당시 '한국의 키모노'라는 뜻의 프랑스어 '키모노 코레'에 '한복(Hanbok)'이란 제 이름을 찾아준 것도 이영희 디자이너다. 이후에도 2000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패션 공연을 열고, 2004년 뉴욕 맨해튼에 박물관 개장, 2007년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한복 12벌 영구 전시, 2008년 구글 '세계 60인 아티스트' 선정에 이어 2010년에는 최초로 한복을 프랑스 파리 오트쿠튀르 무대에 올리면서 한복을 세계에 알렸다.

이영희 한복디자이너는 지난 1976년 '이영희 한국의상'을 설립한 이후 40년 간 수많은 한복을 선보였다. 이 가운데 한복을 짓던 이영희 디자이너를 세계 무대서 주목받게 한 옷이 바로 지난 1994년 파리 컬렉션에서 처음 선보인 저고리 없는 한복 치마'바람의 옷'이다.

당시 '르몽드' 수석 기자 로랑스 베나임은 이 옷을 일컬어 '바람을 담아낸 듯 자유와 기품을 한 데 모은 옷'이라 평했다. "바람의 옷이 전통적인 한복의 틀을 깨는 동시에 한복 본연의 아름다움에 충실한 옷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영희 디자이너는 '바람의 옷'이 가장 현대적이면서 바람결에 따라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변화무쌍하고 무궁무진하게 보여주는 옷이라고 강조했다.

-늦은 40세에 한복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이런 걸 두고 운명이라고 하는게 아닐까. 전혀 내가 한복을 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못했다. 1974년 당시 사촌언니가 대구에서 과거 임금님만 덮었다는 누에고치 실크실을 솜으로 풀어서 만든 명주솜 이불을 만들었다. 언니의 권유로 서울서 명주솜 이불 1000개를 가져와서 지인들에게 권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언니가 준 솜이불에 좋아하는 색깔의 천을 덧대었더니 이불의 품질도 그렇고 색상이 남달라서 인기가 좋았다. 언니가 그 솜을 안줬으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입소문을 듣고 내 이불을 찾던 사람들 덕분에 당시 서교동에 가구로 유명한 '윤씨농방'에서 이불을 판매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불을 할 때부터 색에 대한 타고난 남다른 감각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색상의 조화라든지 배운 적이 없다. 어머니를 통해 배웠고 전통 한복을 통해 저절로 터득하게 됐다. 일본 염색문화 이전 우리나라 전통 한복은 미색을 띠는 의상이었다. 또 당시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고 다니던 시절로, 집에서 어머니가 가족들의 옷을 지어주고, 내가 해입던 환경이 갖춰졌다. 딸이 경기여고를 다닐 당시에도 푸른빛이 도는 회색 한복치마를 입고 갔더니 사람들이 같은 색상의 옷을 지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한복외길'이 시작됐다.

-'바람의 옷'을 선보인 당시 국내외 반응은.

▲당시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4번째 참여하는 만큼 다른 서양 디자이너들보다 더 새롭고 강렬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프레타 포르테에선 가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옷은 얌전한 축에 속했다. 아마도 국내 시장을 겨냥한 쇼였다면 저고리를 벗겨 볼 생각을 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파리 사람들은 한복이란 옷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었던 만큼 원래 저고리를 입었는지 벗었는지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바람의 옷'을 거부감 없이 새로운 독특한 드레스로 받아들인 것 같다.

반대로 한국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무슨 한복 치마만 입혀 높고 패션이냐', '한복의 전통을 망쳐버렸다'며 날선 비판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때마다 콜럼버스의 달걀을 떠올렸다. 알고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너무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지만, 그 전환을 수백년 동안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발상의 전환은 하루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축적된 노력이 쌓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전환되는 것이다.

나는 파리에 진출해 컬렉션에 참여하고 부티크를 열면서 몇 년간 비용을 개인 사재를 털어 충당했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군인 남편을 둔 탓에 파리에서 패션쇼를 하는데 드는 어마어마한 비용도 나라나 대기업에서 후원을 해주지 않아 특정한 기업과 상관없이 개인 자격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에겐 사재를 터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창간 15주년/대한민국 명장열전] (13) 한복의 세계화 주도한 한복디자이너 이영희


-'한복'에 매달리게 한 요인은.

▲한복을 통해 벌은 건 한복에 쓰자는 신념을 갖고 있다. 미국 뉴욕에 한복 박물관을 개관할 때도 국가에서 도와주지 않았다. 내가 너무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만큼 전통을 지키고 이어나가고 싶었다. 곧 경주에서 한복 박물관을 통해 뉴욕서 선보였던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마도 나는 다시 태어나도, 아니 남자로 태어나도 한복을 할 거다. 그건 분명하다. 다음 생에도 지금까지 못했던 것을 하며 한복이 멋진 옷이라는 걸 보여줄 자신이 있다. 우리나라의 식(食)문화. 주(住)문화도 물론이지만, 한복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인데다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나다. 옷은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영희 展 - 바람, 바램'을 개최하는데.

▲오는 23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이영희 전(展) - 바람, 바램'이라는 제목으로 한복 전시회를 연다. 나이 마흔에 한복 디자인을 시작, 한복의 세계화를 위해 40년을 바친 삶을 정리하는 행사다. 내가 직접 모은 진귀한 한복 사료와 대표작, 미디어 아티스트 박제성 등이 내 의상에서 소재를 얻어 만든 현대 미술 작품이 전시된다. 사진작가 김중만은 이번 전시회에서 내가 특별 제작한 의상을 입은 유니버설 발레단 남자 무용수를 촬영한 화보와 영상을 공개할 예정이다.

한없이 다양한 형태와 볼륨을 지닌 옷으로 변화하지만 언제든 간단한 평면으로 회귀할 수 있는 한복 치마, 바람의 옷. 디자이너 이영희 관점에서는 전통을 버린 파격적인 디자인이었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한복이 지닌 고유한 미학을 보여주는 행사다.

-전시회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영희 展 - 바람, 바램'은 지난 40년 간 내가 추구해 온 패션으로서의 한복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알리고, 한복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에게는 세계적 패션으로 거듭나는 한복의 진화 과정을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또 내가 생각하는 한복의 미를 21세기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럽게 접목한 시도를 보여줄 예정이다. 패션 아이템인 가방, 생활 가구인 침대 등에 녹아 든 우리 옷의 아름다움의 단편을 발견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해 온 모든 디자인은 다음 세대에 징검다리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로서 '바램'이 있다면 자신의 도전이 개인의 도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혹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우리의 전통 미학이 계속 새로운 손길로 재 탄생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이영희 디자이너 약력
△79세 △대구 출생 △경북여고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염직공예학 석사 수료 △1976년 이영희 한국의상 설립 △1983년 미국 워싱턴 첫 해외 쇼 개최 △1993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 참가 △1993년 황금바늘상 특별상 △1994년 한국전통문화미술인회 부회장 △1994년 한국인상 △1994년 한국섬유패션 대상 △1995년 파리 컬러선정위원 위촉 △1996년 한국패션협회 올해의 초대 디자이너 선정 △1997년~ 메종 드 이영희 대표 △1997년 서울특별시 서울패션인상 △1998년~ 동덕여자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 △1999년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대통령상 △2000년 6월 미국 뉴욕 카네기홀 패션 공연 'Wind of History' 개최 △2001년 평양 초청 공연 '이영희 민속의상전' 개최 △2004년 9월 미국 뉴욕·워싱턴 이영희 박물관 개관 △2005년 11월 부산 APEC정상회의 정상 21개국 정상 두루마기 제작 △2007년 5월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 한복 16벌 영구 전시 △2007년 문화관광부장관상 △2008년 구글 아티스트 캠페인 '세계 60인 아티스트' 선정 △2008년 제8회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전통한복부문상 △2009년 10월 대한민국 문화훈장(옥관) △2010년 7월 한복 최초 프랑스 파리 오트쿠튀르 참가 △2010년 제5회 아시아모델상 시상식 국제문화산업교류공로상 △2010년 제 10회 서울패션위크 헌정디자이너 10인 선정 △2012년 7월 프랑스 파리 오트쿠튀르 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