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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다문화 유럽의 '히잡 논란'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22 16:49

수정 2015.09.22 16:49

[여의나루] 다문화 유럽의 '히잡 논란'

올해가 열리자마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 풍자 만평을 싣고 있던 프랑스 파리 중심부 소재 언론사 사무실에 난입, 총기를 난사했다. 이 테러는 유럽 사회의 무슬림에 대한 두려움과 의혹 그리고 반이슬람 정서를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서구와 이슬람 간 정서적 혼란과 갈등은 최근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물밀듯이 들이닥치면서 엄청나게 증폭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헝가리 방송사 여성기자가 난민수용소에서 경찰을 피해 아이를 안고 달아나는 시리아 난민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모습이 인터넷 등에 공개되었고, 폴란드에선 지난 12일 시위대가 '이슬람은 유럽에 죽음을 가져온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거리를 행진했다.

기독교 문명이 지배하는 서구사회가 문화적 다원주의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한편으로 무슬림 세력의 유입으로 기독교 문명이 침식되고 있다는 위기감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십자가는 무슬림의 항의로 독일 법정과 공립학교 교실에서 사라졌다.
베이컨, 햄, 소시지 등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프랑스인들은 언제까지 무슬림 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대체식단을 마련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슬람의 종교적, 문화적 전통은 미국과 서구사회에서 갈등과 충돌을 빚다 끝내 조정이 안되면 그 다툼이 법정에까지 간다. 남성 무슬림 재소자의 턱수염을 허용하지 않았던 미국 교도소의 보안조치는 위헌으로 판정 났다. 가장 뜨거운 논쟁의 한복판에 여성 무슬림의 히잡 착용이 있다. 합리성과 인권을 내세워 정체성의 상징인 전통 히잡을 벗어던진 젊은 무슬림 여성운동가가 늘어나는 반면, 거꾸로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는데도 적극적, 의식적으로 히잡 착용을 고집하는 엘리트 여성들도 늘고 있다. 많은 유럽인에게 히잡은 문명적 차원의 도전이자 기독교적 정체성의 위협을 뜻한다. 과연 어디까지 유럽사회가 이 '낯선' 전통과 무슬림 여성의 개성 그리고 자율을 존중할 것인지 자유주의적 유럽인들의 인내와 관용이 시험대에 올라서 있다 하겠다.

프랑스나 유럽에서 가장 자유스러운 네델란드조차 공립학교 등 공공시설에서 종교색을 드러내는 모든 상징물의 착용을 상생의 거부, 사회통합의 장벽 내지 차별화의 상징으로 보고 금지하려고 한다. 그런데 독일 헌법재판소는 올해 1월 파리 테러 직후인데도 탄복할 만한 포용과 배려를 보였다.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는 무슬림 여교사가 공립학교에서 수업 중 히잡을 쓰고 기독교 가정의 아이들을 가르치자 그 여교사를 해고했다. 해고 이유는 학생들이 원하지 않는 종교적, 정치적 영향을 받을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고 선생과 학생, 학부모 사이에 갈등과 적대감이 커져 학교의 평화가 깨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여교사는 자신이 제기한 해고처분취소청구의 소가 노동법원에서 기각되자 연방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제기했다. 결과는 유럽인의 일반적 정서와는 동떨어진 것 같다. 헌법재판소는 이런 방식으로 무슬림 여성들이 교육자의 직업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배제된다면 이는 여성평등을 해할 수 있고 기독교적, 서양적 문화가치와 전통에 기인하지 않는 외형적 종교 표현에 불이익을 주어야 할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하면서 무슬림 여교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슬람 전통과 문화의 계승 여부는 문화상대주의의 관점에서 무슬림 자신들이 선택할 문제다. 어느 누구도 전통을 강요할 수 없듯이 '전통의 파괴' 역시 강제할 수는 없다.
이런 행동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직결되는 인류보편적인 헌법적 가치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보인 인권과 다양성의 우선 그리고 관용은 강자가 약자에게 먼저 다가가는 서구문명의 장점이라 하겠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도 이러한 독일의 상생과 통합의 노력을 이해하고, 다문화 지구인들과 서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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