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선·천정배 협공 받아 비리 의원 배제 혁신안 발표
백의종군도 각오해야
백의종군도 각오해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맷집이 시험대에 올랐다. 문 대표는 23일 인적쇄신 혁신안 발표 뒤 기강 다잡기에 나섰지만 안팎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제 최고위원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만찬을 갖는 등 통합 행보도 보여주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문 대표는 내내 리더십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카리스마가 없는 탓도 있다. 그러다보니 너도 나도 당 대표를 치받는다. 지난 20일 당무위원.의원 합동총회에서 재신임을 받았어도 약발이 언제 떨어질지 알 수 없다.
지난 22일 현역 의원 가운데 최초로 탈당한 박주선 의원, 신당 창당 계획을 밝힌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도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판이다. 두 의원 모두 문 대표보다 정치 경력이 많고, 사법시험 기수도 위다. 박 의원이 사시 16회, 천 의원 18회, 문 대표 22회다. 박 의원과 천 의원이 문 대표를 협공하는 형국이다. 문 대표는 이들의 공격에 대해 애써 폄하하고 있지만 간단히 볼 상황은 아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선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이 문 대표를 때리면 천 의원이 거드는 형식이다. 혁신안을 발표한 날도 그랬다. 박 의원은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특히 문 대표의) 이번 재신임도 친노(親盧) 계파를 중심으로 한 결의를 받고 재신임을 받았다고 얘기하고 있다"면서 "이건 기네스북에 오를 '셀프 재신임'이라고 다들 평가하지 않느냐"고 깎아내렸다. 천 의원도 노골적으로 문 대표를 비난했다. 문 대표가 자기는 물러나지 않으면서 통합하려면 들어오라고 하는데 누구 놀려먹자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앞으로 합칠 뜻이 전혀 없음을 내비친 셈이다.
여기에 안철수 의원의 공격도 방어해야 한다.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가 "비리.부패 혐의로 재판에 회부만 돼도 공천에서 배제하자"는 안 의원의 주장을 반영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앞서 안 의원은 부패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을 때는 제명하고 피선거권.공직임명권을 영구 제한하는 한편 기소만 돼도 당원권을 정지하고 공직 후보 심사대상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반부패 방안'을 제안했다. 이 기준이 적용되면 당내 중진 및 유력 정치인 상당수가 공천 탈락 대상이 된다.
혁신안에 따르면 하급심에서 유죄를 받은 상태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 김재윤 의원은 공천심사에서 원천 배제된다. 비리 혐의로 기소된 신계륜.신학용 의원 등은 정밀심사 대상에 포함돼 당사자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다만 야당에 대한 과도한 정치탄압 등 억울한 판결이나 기소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 공직후보자검증위에서 재적 3분의 2 이상의 위원들이 찬성할 경우 정상을 참작해 공천에서 배제하지 않도록 구제하는 예외조항을 뒀다.
문 대표에겐 혁신위원인 서울대 조국 교수의 충고도 거슬리는 대목이다. 조 교수는 문 대표의 퇴진을 시사하는 말도 했다. 조 교수는 지난 16일 "혁신안과 재신임안이 통과되면 문 대표는 당 분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하고, 혁신안이 실천되면 총선 승리를 위해 백의종군 포함,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것은 친노 진영이다. 최재성 총무본부장은 '백의종군'을 요구한 데 대해 "백의종군의 의미가 있을 때는 해야 한다"면서도 "조 교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멋있어 보이지만 책임지는 모습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당을 안정시키고, 신당의 파급효과를 막으려면 문 대표가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처럼 해선 안된다는 게 중론이다. 필요하다면 대표직을 사퇴한 뒤 백의종군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문 대표도 총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고 했다. 정치는 생물과 같다. 빈말이 아니길 바란다.
poongyeon@fnnews.com 오풍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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