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72) 행정자치부 감사관실 조사담당관
비위 공무원 없는 공직사회 위해 뛰는 21세기 암행어사
금품 수수·예산편법 집행 등 비위행위 찾고 적발하기 위해 밤샘 잠복근무·위장은 예사 동료를 조사하는 일 쉽지 않아 "두고보자" 같은 말 듣기 일쑤
불필요한 규제 해소도 주 업무 지자체 조례 개정 유도하기도 투철한 신념과 능력 필요로 해 조사관들 "자부심 없으면 못해
공무원은 안정된 근무장소에서 일정하게 출퇴근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1년 대부분을 사무실이나 집이 아닌 외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공무원이 있다. 행정자치부 감사관 산하 조사담당관실 직원들은 17개 시·도에서 근무중인 지방공무원들의 비위행위를 적발하기 때문에 지방출장이 잦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총 18명, 5개 팀으로 구성됐다. 팀별로 전국에 흩어져 업무를 수행한다. 서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같은 팀이 아니고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조사담당관실은 금품향응 수수, 불법 인허가, 특혜성 계약, 관용차 사적 사용, 예산 편법 집행, 생활민원 관리 소홀 등 공직기강을 해치는 공무원들을 적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첩보나 제보를 통해 문제가 되는 공무원을 파악하고 현장확인 뒤 해당 기관에 처벌이나 시정을 요구한다.
■규제개혁 운영실태 확인도…불필요한 조례 수정 유도
공무원들의 비위행위 적발 외에 불필요한 규제로 인한 국민생활 불편 해소도 조사관들의 역할이다. 현 정부의 슬로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규제 철폐를 실현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기자는 조사담당관실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마정경 사무관, 팀원 박동순 조사관과 함께 경기 부천의 오피스텔 신축현장을 찾았다. 오피스텔 부지가 협소해 주차타워(기계식 주차장) 건축 허가가 필요한데 시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는 민원을 접수했기 때문이다.
현행 주차장법은 주차타워로 대표되는 '기계식 주차장'과 운전자가 직접 차량을 주차해야 하는 '자주식 주차장' 모두 허용하고 있다. 세부적인 허가여부는 지자체 조례로 정하도록 돼있다. 부천시의 경우 기계식 주차장 허가를 받는 기준이 까다로워 오피스텔 건축업자들이 부지 이용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라고.
현장에 도착한 마 팀장은 공사현장 책임자를 불러 공사 진행상황과 주차타워 허가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공사비용 등을 꼼꼼히 캐물었다. 현장 확인 결과, 마 팀장은 시의 지시대로 자주식 주차장을 건립하면 주차대수가 현저히 감소해 오피스텔 주차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마 팀장 일행은 부천시청 담당공무원을 만났다. 공무원에게 현장검증 결과를 설명하고 해당 조례 수정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부천시는 내부검토안을 만들어 시의회에 상정, 이르면 내년부터 개정 조례를 시행할 방침이다.
■가족 못 보고, 친지와 멀어져
마 팀장은 조사관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고 털어놨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담당 지역은 영남권이어서 이동하는 데만 반나절이 걸린다. 고향은 호남이지만 출신 지역을 감찰할 수 없다는 내규에 따라 영남권에 배정됐다.
마 팀장은 "일주일에 한 번도 집에 못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아내에게 타박받기 일쑤이고 아이들 보기에도 미안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같은 팀 박 조사관도 상황은 마찬가지. 올해 초 조사담당관실로 발령받은 그는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 없는 와중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힘들어 미안하다"고 말했다.
5개 팀을 총괄하는 노경달 조사담당관도 "동생 같은 직원들을 출장 보내고 나면 직원들이 감찰 실적에 지나치게 얽매여 부담을 가질까 항상 걱정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다. 아무래도 동료 공무원의 비리행위를 적발하는 업무를 맡다 보니 적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 팀장은 "어제까지 함께 커피를 마시던 동료를 조사해야 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서로 불편한 순간이었다"고 기억했다. 앞으로도 마주칠 가능성이 작은 지방공무원들은 다소 공격적인 태도로 조사관들을 대하기도 한다. 마 팀장은 "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내가 당신 꼭 기억하겠다' '두고보자'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며 "불안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비위행위를 없었던 일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강조했다.
조사관 활동을 오래 하다 보니 노하우도 생겼다. 문제가 있어 조사 중인 공무원이라 해도 최대한 예의를 차리고 배려하는 것이다. 마 팀장은 "해당 공무원 사무실에서 조사를 하기보다 가급적 외부로 불러내 커피숍 등 독립된 공간에서 면담을 진행한다"며 "부담스러운 주위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배려해주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어떤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비리를 저지른 공무원 역시 앞날이 두렵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마 팀장은 "처벌수위나 대처방안을 알려주면 조사받는 입장에서도 인간적으로 고마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공직관 투철, 업무능력 우수 '자부심'
조사관들은 잦은 출장으로 격무에 시달리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에 버티고 있다. 조사담당관실 직원은 행자부 본부 및 사업소 직원 중 △공직관이 투철하고 △지자체 근무경험이 많고 △업무능력이 우수한 사람을 대상으로 선별한다.
마 팀장은 "다른 업무에 잠시 발령받았다가 다시 조사관실로 오게 됐다"며 "힘든 업무인 줄 알면서도 업무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힘이 난다"고 밝혔다.
기술직 출신인 박 조사관도 "기존 업무에서 성실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이곳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마 팀장 밑에서 계속 조사관 일을 배워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노 담당관은 "우수한 인력만 조사담당관실로 올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 자부심이 대단하다"며 "우리의 노력으로 언젠가는 선진국처럼 비위 공무원이 단 한 명도 없는 때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박나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