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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틀을 바꾸자] (2·③) 한번만 넘어져도 신용불량 낙인 '너무 쓴 실패의 맛'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24 17:53

수정 2015.09.24 17:53

(2·③) 자생적 창업환경 위협하는 제도·장치 3. 멀고 먼 패자부활전
실리콘밸리 CEO들은 평균 세번 망했고.. 마윈은 여덟번 실패했다 성공했다는데..
망가진 창업 선순환구조.. 매년 전체 사업장 13% 폐업 창업기업 생존율은 더 낮아 5년차땐 10곳 중 3곳만 생존 재창업률도 7.2%에 불과
재기 어렵게 만드는 제도.. CEO가 회사부채 갚아야하는 파산 관련법 걸림돌로 작용 세제지원·연대보증 개선 등 재창업 정책적 지원 나서야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틀을 바꾸자] (2·③) 한번만 넘어져도 신용불량 낙인 '너무 쓴 실패의 맛'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는 평균 2.8회 실패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은 8번의 실패 끝에 세계 시가총액 2위 기업이 수장이 됐다. 우버의 공동창립자 트래비스 캘러닉이나 페이팔의 공동창립자 매긋 레브친, 징가의 창립자 마크 핑거스도 실패의 경험을 딛고 정보기술(IT) 기업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글로벌 창업시장에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은 정설로 통한다. 그러나 국내 창업시장에서 실패는 그냥 실패다.


패자부활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창업생태계를 방치한 채 개천에서 용 나듯 성공한 한 두개 기업의 탄생을 기다려서는 '21세기형 창업국가'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패자부활 없이 글로벌 스타트업도 불가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전체 사업장의 약 13% 가량이 폐업한다. 2009~2013년 연도별 창업·폐업 현황을 보면 매년 약 100만개의 기업이 새롭게 탄생하고 80만~90만개의 기업이 폐업하면서 연간 600만개 내외의 기업이 생존하고 있다.

창업기업 생존율은 더 낮은 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3년차 창업기업 중 38%만이 사업을 이어간다. 4년차의 경우 33.4%가 살아남고 5년차가 되면 생존율은 30.9%로 떨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하는 기업보다는 실패하는 기업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이는 5년차 기준 유럽(47%)이나 미국(43%)의 창업기업이 생존할 확률에 비해서도 월등히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재창업 조사연구에 따르면 2000~2011년 1년 이상 매출액을 발생한 기업 가운데 폐업한 약 8만2000여곳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폐업 기업의 대표이사가 재창업을 한 경우는 5904건으로 7.2%에 불과하다. 실패의 과정에서 습득한 경험과 지식이 새 출발의 디딤돌이 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플래시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차렸다가 한 차례 폐업을 경험한 김모씨(32)는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탓에 2년도 채 안 돼 접어야 했다"며 "새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지만 여유자금이 많지 않은 데다 대출은 이미 받을 대로 받았고 정부 지원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해 고민중이다. 주변에서도 전부 만류한다"고 털어놨다.

반면 차명으로 재창업하는 비율은 약 40%대로 추정된다. 신용불량정보 등으로 인한 경제활동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차명 창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재창업에 도전하는 비율이 낮음에도 재창업에 도전하고자 하는 수요가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 사회내 패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탓에 재창업 의지가 강한 기업가들이 차명이라는 편법으로 부활을 노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창조경제연구회 조사에서도 경영주 본인의 보증의무가 면제될 경우 (재)창업하겠다는 의견이 전체의 69%에 달했다. 보증의무 존재 시 재창업 의사(11%)와 확연히 다른 수치다.

허영구 한국벤처협회 정책협력실장은 "실패한 창업기업을 위한 제도적 보완장치는 상당히 미흡하다"며 "특히 연대보증, 체납 세금 등에 따른 신용불안은 재도전을 막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허 실장은 실패를 경험한 창업자는 물론 첫 창업자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재창업이 원활한 창업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색내기 넘어 근본처방책 나와야

다행히 박근혜 정부에서 패자부활이 가능한 창업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정부도 각종 정책을 추진 중이다. 중소기업청·중소기업진흥공단의 재도전지원센터,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의 재도전 중소기업경영자 힐링캠프, 신용보증기금의 재도전 재기지원 보증 등이 대표적이다.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후속 대책도 대기중이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올초 '창조적 금융생태계 활성화 방안'을 내놓고 재창업 지원을 강화키로 했다. 기술보증기금 기준 신용등급 AA 이상 우수기업에 대한 창업자 연대보증을 자동면제하고 경영주 본인 보증 면제 대상도 창업기업에서 비창업기업까지 확대키로 한 것이다.

신용정보 등록.관리 기간도 최장 5년에서 1년으로 단축해 성실한 실패자에 대한 주홍글씨를 제거해 나갈 계획이다. 연대보증 사슬에 묶여 패자부활이 어려운 구조에서는 창업 생태계가 제대로 구현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럼에도 패자부활을 뒷받침할 근본적인 접근법에 한참 못미치고 있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 벤처캐피털 업체 스파크랩 글로벌 벤처스가 지난해부터 분석해온 스타트업 생태계 정비도시 분석조사에 따르면 서울은 80점 만점에 58점을 기록했다. 스타트업 환경이 우수한 나라로 꼽힌 것이다. 그러나 '법제도.정책인프라' 평가에선 5점을 받는데 그쳤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회사가 파산할 때 CEO 개인이 보상해야 한다는 법률이 존재하는 데다 회사보상과 개인보상 간에 명환한 경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패가 재도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 벤처 전문 매체 벤처비트는 "미국에 만약 이런 법률이 존재했다면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기업 수는 현재의 절반에 미치지도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에서도 생색내기식 패자부활 정책을 넘어선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내놓은 공정성장 3법이 대표적이다.

안 의원이 최근 내놓은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은 현행법의 유효기간을 10년 연장하고 벤처기업 관련 정보 등을 담은 종합관리시스템을 구축 .운영하겠다는 것이 주 골자다. 이와 함께 제시한 '국세기본법 일부개정안'에서는 특별조치법에 따라 벤처기업으로 확인 받은 창업 3년 이내의 벤처기업에 제2차 납세의무를 지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사실상 벤처기업이 쉽게 재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실 관계자는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되는 경제로 성장하기 위해 창업이 실패하더라도 재도전 기회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창업토양 마련, 벤처기업 간 협력기반 구축, 연대보증제 개선 등을 통해 재창업이 용이한 창업생태계를 이룩하겠다"고 전했다.


재창업에 도전중인 곽충렬 뭉술 대표는 "앞선 실패의 경험이 시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영업력이나 기술력 등은 창업자 본인이 터득해야 겠지만 정부가 이들에게 든든한 지지대가 돼줄 필요는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김병용 김용훈 고민서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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