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인 27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탑 앞에서는 진한 향냄새 속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손을 꼭 잡은 채 분향하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병직(74)씨는 10살 손자와 1951년 한국전쟁 화천전투에서 숨진 아버지 한주언(1919년생)씨의 위패가 모셔진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한씨는 "매해 명절만 되면 현충원을 꼭 찾아 아버지를 기린다"며 "얼마 전부터는 손자와도 함께 찾아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증조부와 전쟁에 대해 하나씩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충탑 뒤편에 있는 위패봉안관에는 한씨의 아버지처럼 한국전쟁 전사자 가운데 유해를 찾지 못한 10만 4천여위(位)를 위패로 모시고 있다.
어두운 위패봉안관 내부에는 전사자의 이름이 벽면마다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현충원에는 한씨처럼 이곳에 모셔진 고인을 기리기 위한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점심이 가까워지자 현충원 내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 돗자리를 편 가족 단위 성묘객들은 성묘에 썼던 제수로 음복하며 오랜만에 모인 친지들과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방모(67)씨도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서는 가족 8명과 한국전쟁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위패가 모셔진 현충원을 찾았다.
방씨는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 얼굴도 모르지만 명절마다 현충원을 찾는다"며 "양지바른 곳에 위패가 모셔져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인근 사병제1묘역에는 따가운 가을 햇살 속에서 가지런히 모셔진 묘비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성묘객들은 묘비 앞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놓고 전쟁에서 스러져간 아버지나 할아버지, 증조부의 넋을 기렸다. 1953년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묘소를 찾은 신모(72·여)씨는 "7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얼굴이 기억나지 않지만 명절마다 이곳을 찾으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성수동에서 가족 12명을 데리고 아버지 박병기(1923년생)의 묘비를 찾은 박종하(68)씨는 묘비 인근 그늘에서 가족들과 음복하고 있었다. 마침 이날은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삼우제라 온 가족이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박씨는 "돌아가신 어머니는 아버지와 납골당에 합장했다"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리려 캐나다에 있는 손자들까지 자리를 함께해 더 뜻깊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