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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5주년/대한민국 명장열전] (18) 중화요리의 대가 이연복 '목란' 오너셰프

이세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1.01 16:43

수정 2015.11.01 21:34

"속임수나 꼼수 쓰지않고 정직하게 요리할뿐 손님 많든 적든 연연안해"
초등학교때부터 중국집서 배달 명동 사보이호텔 대반점 거쳐 22세에 대만 대사관 주방 입성 그때 배운 대사 부인의 레시피가 지금의 '목란' 메뉴로 탄생
안정된 대사관 주방을 떠나 일본서 도시락 가게 열어 매일 '이랏샤이마세'를 외치며 불같은 성격 버리고 미소 얻어
중국요리 전문점 체인화해 많은 사람에 창업기회 주고싶어 은퇴후엔 아내와 함께 버려진 동물들 도우며 살 것
[창간 15주년/대한민국 명장열전] (18) 중화요리의 대가 이연복 '목란' 오너셰프


그는 '기억'과 '상상'으로 요리한다. 축농증 수술로 후각을 잃은지 30년이 넘었다.

30년 전 기억으로 재료를 찾고, 상상 속에서 그 향을 조합한다. 그런 요리들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셰프가 됐다.

중화요리 전문점 '목란(木蘭)'의 오너셰프 이연복(사진)이다.

JTBC의 요리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 GD(지드래곤)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GD의 냉장고에서는 세계 3대 진미라는 트러플, 캐비어, 푸아그라가 모두 나왔다.

출연한 셰프들은 냉장고 속 재료들로 15분 안에 요리를 완성해야 한다.

셰프 홍석천은 3대 진미를 모두 선택했다.

그런데 이연복은 갈치를 집어들었다.

갈치살을 발라 야채와 섞어 만두를 쌌다. 화제를 불러일으킨 '갈쌈만두'다.

GD는 맛을 보자마자 엄지 손가락을 번쩍 들어올렸다.

투박하게 구워낸 그 만두는, 세계 3대 진미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연복은 "후각을 잃기 전에는 트러플, 캐비어, 푸아그라가 없었기 때문에 무슨 향인지 모른다"며
"아는 재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주 덤덤한 말투로.

서울 연희동 '목란'에서 '사부'(중식당에선 셰프를 이렇게 칭한다) 이연복을 만났다. 토요일 오후, 힘들게 잡힌 인터뷰였다. 점심과 저녁 사이 레스토랑이 잠시 쉬는 시간, 그는 만두를 싸던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나타났다. 낡은 청바지에 후줄근한 조리복 상의, 길게 늘어뜨린 앞치마. 카메라 뒤의 현실, '전쟁터'와 같은 자신의 주방에서 이연복은 늘 그 모습이다.

―너무 바쁜 것 같다.

▲정말 피곤하다. 방송에, 홈쇼핑에, 매장 일까지 챙기다보면 3~4시간밖에 못 잘 때가 허다하다. 방송은 매장이 문을 닫는 월요일에 몰아서 한다. 홈쇼핑은 일을 끝내고 밤 늦게 출연한다. 그 외의 시간에는 항상 목란을 지킨다.

고단한 인생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화교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중국집에서 주방장으로 일했다. 가난했다.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해 혼나는 일이 잦았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배달통을 잡았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40년 요리사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좋아서 온게 아니예요. 먹고 살려고 선택했지. 내가 부유한 집에 태어났으면 이런 험한 일을 뭐하러 했겠어요. 남들처럼 캠퍼스에서 신나게 놀고, 열심히 공부했겠지."

요리는 주먹다짐으로 배웠다. 불같은 성질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여러번 싸움에 휘말렸고, 많은 중국집을 전전했다. 그 험한 시간을 견디며 어깨 너머로 배운 요리다. 그는 "나는 사부가 없다"고 했다.

―요리는 어떻게 익혔나.

▲그때는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선배가 없었다. 보려하면 가리고, 물어보면 짜증을 냈다. 감으로, 눈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음식이 나가고 들어올 때 접시에 손가락을 살짝 넣어 맛을 보고, 머리로 기억하고 있다가 어느 날 기회가 오면 만들어 보는 식이었다.

중국집들 사이에 "이연복의 요리가 맛있다"는 소문이 났다. 열일곱에 우리나라 최초 호텔 중식당, 명동 사보이 호텔의 '호화대반점'에 들어갔다. 스물두살에는 주한 대만 대사관의 최연소 주방장이 됐다. 음식 솜씨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한 건 이 때부터다.

―대사관 시절은 어땠나.

▲대사관 주방이라고 해도 요리사는 나와 보조, 둘 뿐이었다. 대사와 대사 부인의 매끼니를 챙겨야 하니 다양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 자꾸 머리를 써야 했다. 연회나 파티도 자주 있어서 코스 요리도 도맡았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요리법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조리법을 적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다. 대사 부인들이 알려주는 레시피를 따라해보고, 뭔가 빠졌다고 말해주면 보충해갔다. 그 레시피들이 지금의 '목란' 메뉴를 만들었다.

그렇게 8년쯤 지났을 무렵, 그는 안정된 직장을 떠나 아내와 함께 일본으로 갔다. 늘 그랬듯 갑자기 결정한 일이었다. 일본에서 부부는 첫 가게 '라이라이(來來)'를 열었다. 일본인, 한국인, 대만인, 중국인에게 맞는 맞춤형 도시락을 판매하는 가게였다. 결과는 대성공. 특히, 중국인들이 몰려들었다. 일본에선 아무도 먹지 않는 닭발을 조려 서비스로 제공한 것이 입소문을 탄 덕이다.

―계획없이 벌인 일이다. 두렵지 않았나.

▲우리 부부는 무슨 일을 하건 한가지 믿음은 꼭 갖고 있었다. 요식업계에서 우리가 이루지 못한 일은 다른 사람들도 죽어도 못 이룬다는 것. 그만큼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살았다.

―첫 가게부터 성과가 좋았다.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식당과 다르다는 인식을 만들어야 했다. 각자의 성향에 맞는 메뉴를 만들기 위해선 늘 연구·개발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 빈 도시락 쓰레기도 모두 직접 수거했다. 작은 것 하나까지 정성을 들이니 입소문이 나고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본에서의 10년은 요리사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불같은 성질, 예민한 성격, 눈에서 느껴지던 날카로운 살기가 점차 사라졌다. 그의 온화한 미소, 친절은 일본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이다.

"일본에선 어느 가게든 손님이 들고 날 때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 '아리가토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요. 아주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억지로 따르다보니 나중엔 진짜 마음속에서 우러나게 되더라고요."

1999년 한국에 돌아온 부부는 서울 역삼동에 처음 '목란'을 열었다. 이후 15년동안 '목란'은 압구정동과 평동을 거쳐 지금의 연희동에 자리를 잡았다. 매장을 여러 번 옮기면서도 그는 한번도 시장조사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무슨 배짱인가.

▲목이 좋은 곳은 임대료가 비싸지 않나. 중요한 건 자리나 크기가 아니다. 시장 조사를 하는 시간에 열심히 실력을 닦으면 된다. 음식이 맛있으면 자연히 소문이 난다. 내 실력, 내 음식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손님이 안들까 하는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는 매일 400~500개가 되는 만두를 일일이 손으로 반죽해 직접 싼다. 파삭파삭하고 육즙이 풍성한 만두를 만들기 위한 고집이다. '동파육'은 6시간 넘게 졸여야 해서 예약제로만 주문할 수 있다. 짬뽕과 짜장면은 주문 즉시 신선하고 뜨겁게 조리한다. 사부는 편법없이 정직하게, 한 그릇의 음식에도 '자부심'을 담는다.

―너무 요령없이 산다는 생각은 안드나.

▲그래서 정말 피곤하다. '하려면 제대로 하고, 그렇지 않을거면 말아라'는 마음으로 산다. 피곤해도 남들과 다른 음식을 만들려면, 경쟁에서 이기려면 어쩔 수 없다. 정확하고, 정직해야 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망설임을 갖지 않고 가야 할 길을 바르게 가는 것, 속임수나 꼼수없이 정직하게 하는 게 내가 요리를 대하는 마음이다.

그는 미각이 둔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침을 거르고, 단 것을 먹지 않는다. 흡연과 폭음도 금한다. 후각을 잃은 후, 그가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원칙이다.

사진=박범준 기자
사진=박범준 기자


―후각을 되살릴 방법은 없나.

▲아직 없다. 병원에서 검사를 할 때 보니 1단계부터 50단계까지 있는 향을 나는 전혀 맡지 못했다. 코를 확 찌르는 신맛이나, 와사비의 매운 맛 정도는 느낌으로 알뿐 향은 전혀 모른다. 새로 들어온 향신료, 허브, 식재료는 향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쓰지 못한다. 예전에 써 본 향을 기억해 재료를 찾고 상상 속에서 음식을 만들어내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판단한다. 물론 한계가 있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다. 남보다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

―요리사로 사는 삶에 만족하나.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이 좋아졌다. 요리가 마음을 담는다고 생각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사람이 짜증날 때 음식을 하는 것과 기분이 좋아서 하는 음식은 정말 다르다. 음식은 단순히 입으로 들어가는 '먹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예술'이란 걸 시간이 갈수록 느낀다. 그러면서 점차 생각도, 책임감도 많아진다.

칼을 든지 40년, 사부는 이제 은퇴를 준비한다. "먹고 살만해졌으니 이제 좀 쉬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계획은.

▲작은 레스토랑 2~3개를 만들어서 제자들에게 관리를 맡기고 싶다. 내 레시피를 활용한 프랜차이즈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제대로 된 레시피를 만들 수 있다면 중국요리 전문점을 체인화해서 소자본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만들려 한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꿈이 있는지 물었다. 매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꿈이라긴 뭐하고. 아내랑 요즘 그런 얘길 해요. 한적한데 땅을 사서 유기동물을 위한 안식처를 만들자고. 불쌍한 사람들은 도와주는 단체가 많은데 말도 못하는 동물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정부 지원을 받는 유기동물 안식처들은 보호 동물들이 15일 안에 입양이 안되면 안락사를 시켜야 한데요. 동물들 눈이 얼마나 선해요. 안쓰러워서 제가 직접 다 돌봐주려고요. 동물들이랑 같이 늙어가야죠."

'목란'을 나서던 길, 주차장 한편에 놓아 둔 그릇들이 눈에 띄었다. 길고양이들을 위해 물과 사료를 넣어둔 그릇이다.
"세상에 하찮은 음식은 없다. 입으로 들어가는 건 모두 다 귀하다"는 그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음식 한 그릇에 담아내는 사부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
■이연복 셰프 프로필

△56세 △1977년 사보이호텔 △1980년 주한 대만대사관 주방장, 총주방장 △1999년 중화요리 전문점 '목란' 오픈 △2014년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 △2015년 KBS 2TV '해피투게더', 올리브TV '셰프들의 레시피 게임', SBS플러스 '강호대결 중화대반점' 등 출연 △ 2015년 '사부의 요리' 출간 △'목란' 오너셰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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