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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카페 레지스탕스' 운동

전쟁, 테러, 대형 재난사고는 사람을 충격과 공포.불안.분노.슬픔으로 몰아넣는다. 그 트라우마가 커지면 사회는 혼란과 반목.분열.갈등으로 마비되기도 한다. 11.13 파리 테러를 자행한 이슬람국가(IS) 같은 테러집단은 바로 이것을 노린다. 예컨대 시민들이 공포에 질려 두문불출한다든지, 난민 문제를 놓고 유럽 각국 내 갈등이 다시 커진다든지 하면 테러의 효과는 만점이다. 결국 공포와 혼란에 굴복하는 것은 테러리스트에 굴복하는 것이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 제2차 세계대전때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이런 메시지로 국민을 다독였다. 조시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지 1주일 만에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역설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지난해 세월호 사태와 올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때 하염없는 공포.분노.비탄으로 사회가 몇 달간 공황 상태에 빠졌다. 큰 변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상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프랑스 국민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테러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일상생활의 회복'을 선택했다. 프랑스인, 특히 파리 시민들은 어떤 테러도 자유롭고 여유 있는 프랑스인의 삶을 해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카페로 나오고 있다. 네티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카페 테라스에서 식사하는 사진을 올리고 '나는 테라스에 있다(Je suis en terrasse)' '우리 모두 카페에(Tous en bistrot)'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카페에서의 일상이 새로운 방식의 레지스탕스(저항) 운동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테러로 아내를 잃은 저널리스트 앙투안 레리는 SNS에 "공포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편지를 띄워 '카페 레지스탕스' 운동에 불을 지폈다. 그는 "내가 겁에 질려 내 이웃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내 안위를 위해 자유를 포기하길 바랄 테지만 당신들(테러범)은 틀렸다"며 "나는 계속 내 아이와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겠다"고 썼다.

영국과 프랑스는 테러에 굴하지 않고 지난 17일 런던 웸블리 경기장에서 친선 축구경기를 강행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윌리엄 왕세손은 7만 관중과 함께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합창했다.
캐머런 총리는 "우리 모두의 일상을 지키는 게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영국 국민의 의연한 대응에 경의를 표한다. 테러와의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