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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김영삼 前대통령 누구인가?

만 26세 최연소 배지.. 9選 기록도.. 전두환 정권때 23일간 민주화 단식
향년 88세로 영면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정계의 거목이다.

1954년 제3대 총선에 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만 26세의 젊은 나이에 최연소 국회의원 배지를 단 그는 이후 국회의원 9선, 야당 대표 3번, 원내총무 5번, 대변인 2번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올바른 길을 걸어갈 때는 거칠 것이 없다'는 의미의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좌우명으로 삼을 정도로 뛰어난 '승부사' 기질을 보여줬던 그의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은 6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금자탑이다.

여당 의원으로 국회를 밟은 김 전 대통령이었지만 그의 정치 인생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54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발해 자유당을 탈당한 뒤 30여년의 야당 정치인 생활은 길고도 추웠다.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쿠테타를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그는 이후 '민주화 운동의 양대 산맥'으로 우리 정치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3선 개헌 저지에 선봉장으로 나서면서 겪어야만 했던 갖은 고난은 그의 정치인생사에도 큰 획을 그었다. 1969년 신민당 원내총무 당시 자택 인근에서 당한 '초산테러'가 대표적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먼저 '40대 기수론'을 주창했던 그는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 이철승 전 의원과 함께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배하며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이 물러간 뒤에도 그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3년간 불법 자택연금 조치를 당했으며, 이때 23일간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였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시켰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신군부 출신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승리를 내주기도 했다.

1990년 '3당 합당'은 그의 승부사 기질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민주화 세력들의 '변절자'라는 십자포화 속에서도 여당인 민주정의당, 김종필 전 총리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이끌어내며 1992년 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32년간의 군사정권에 종지부를 찍고 하나회 해체,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비자금 수사를 벌여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처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또 금융실명제 도입, 차명계좌 단속 등 투명한 금융시장의 기틀을 잡았다.

한 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칼국수' 정치로 대변된다.
각료들을 비롯해 청와대 초청객에게 칼국수를 대접하며 소박함과 청렴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임기 말 한보철강과 기아차 등 대기업의 연쇄부도와 단기외채 급증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것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됐다. 또 차남 현철씨의 한보 비리 연루는 그의 소박·청렴한 이미지에도 치명타를 남겼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