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디지털 증거 어떻게..] e메일, 증거 안 된다? '54년 묵은 증거법' 검·경 수사에 한계

신아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06 17:50

수정 2015.12.06 20:32

현행법상 e메일 등 디지털 자료는 '증거자격' 없어
해킹 등 조작 가능성 많다는 이유로 증거채택 안해
디지털 장부·스마트폰 일정 관리 보편화 개정해야
[디지털 증거 어떻게..] e메일, 증거 안 된다? '54년 묵은 증거법' 검·경 수사에 한계

디지털 포렌식(과학적 증거수집 및 분석기법)이 수사에 도입된 지 올해로 15년째다. '범인은 반드시 디지털 흔적을 남긴다'고 하지만 '디지털 증거'는 여전히 법적근거가 없다. 이 때문에 사건에 따라, 재판부에 따라 증거가 됐다 말았다 하는 것이 현실이다. 법적 근거를 만들어 디지털 자료도 증거로 인정되도록 해야한다는 것은 이미 공감대를 얻고 있지만 구체적 기준에 대한 논의는 출발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디지털 증거'에 대한 현장 법조인들의 의견을 스토리텔링식 기사로 연재, 대안 모색을 위한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 <편집자주>
하루만 못 써도 불안해질 만큼 우리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수첩 대신 휴대전화에 일정을 기록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e메일로 서로 연락합니다. 업무내역은 컴퓨터 파일로 차곡차곡 저장해 놓습니다. 그런데 이 '디지털 자료'는 법정에서 어디까지 증거로 인정될까요.

■"내가 죽였다"는 이메일

예를 들어 돈 문제로 다툼이 잦던 A와 C가 있다고 하죠. 어느 날 C가 A를 만나러 간다고 나간 후 1년 넘게 실종됐습니다. 둘이 만나 다투는 모습을 본 사람은 있지만 C의 사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곧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합니다.

A가 해외에 사는 지인에게 "내가 C를 죽였다"는 내용의 e메일을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법정에 선 A는 "e메일에 대해 모른다"고 부인했고 B는 해외에 살고 있다며 증인 출석을 거부합니다.

이런 경우 A의 메일은 증거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현행법상 디지털자료는 "내가 작성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면 증거능력, 즉 '증거로서 쓰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만 인정되고 '증거로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뜻하는 증명력은 판사가 자유로운 심증으로 판단합니다.

물론 종이문서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자신이 작성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증거가 되지요.

하지만 종이문서는 필적감정이라는 결정적 '한 방'이 있죠. 그러니까 검찰은 필적감정 같은 '결정적 한방'을 디지털 증거에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IP주소나 로그인 기록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종이'만 증거?

증거를 다루는 법조항은 형사소송법으로 1961년 제정된 이후 그대로 입니다. 다른 부분은 조금씩 변화가 있었지만 유독 증거부분은 변하지 않았죠.

검찰은 '54년 묵은 증거법'이라며 더 이상 케케묵은 규정으로는 최첨단 증거물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수사 과정에서 수집된 동영상, 사진, 음성파일과 하드디스크, 스마트폰 데이터 등을 증거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사과정을 녹화한 영상물도 모든 사건에서 증거로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현재는 성폭력 피해자를 조사한 영상녹화물만 증거로 쓰입니다.

"요즘 종이장부는 없고 중소기업도 디지털 장부를 쓴다. 자기가 안 썼다고 하면 땡이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검사도 있습니다.

변호사의 조력이 보편화된 지금 웬만한 피의자는 무조건 오리발부터 내민다고 합니다.

요즘 세상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하나 기록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죠. 언제 누가 로그인해서 어떤 내용을 입력했으며 언제 어떻게 고쳤다(혹은 삭제했다)까지 고스란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피의자가 오리발만 내밀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이럴 경우 검찰은 디지털 증거를 입증할 간접적인 정황이나 증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 간접증거 역시 인정될지 말지는 판사의 마음에 달렸다는 거죠.

■해킹된 증거면 어쩌려고?

반론도 만만찮습니다. 디지털 증거를 법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은 맞지만 해킹 등 증거가 조작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중국 칭다오(혹은 일본 도쿄)IP에서 귀하의 계정에 대해 시도한 접속을 차단했습니다'라는 G-mail 경고장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이런 우려는 실감이 될 듯 합니다.
몰래 내 컴퓨터에 들어와 개인정보를 고스란히 빼내가거나 내 컴퓨터를 디도스 공격에 쓰도록 만드는 각종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마당에 걱정이 안될 수 없죠.

하지만 검찰은 "얼마든지 과학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현재 국회에는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습니다.
이에 대한 판사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hiaram@fnnews.com 신아람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