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IP 리더를 만나다] 윤종용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한국 지재권 보호, 양보다 질에 초점 맞출때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17 17:52

수정 2015.12.18 20:15

세계 'IP 5' 진입 등 양적 성장 했으니 이젠 질 높일 차례
특허침해 손배제 위한 법안 개정 아직도 국회에
기업 노력·정부 지원 입법부까지 3박자 맞아야
사진=김범석 기자
사진=김범석 기자
윤종용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71)의 서울 역삼동 개인 집무실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것은 황토색 책장이었다. '사기' '사서삼경' '논어' '손자병법' '국부론' '대항해시대' 등 역사서·인문고전이 서가에 빼곡했다. 독서광으로 유명한 윤 전 위원장은 수시로 이 책들을 꺼내 기억을 확인한다.

이 아날로그형 집무실에 뚜렷이 구분되는 존재물은 삼성브랜드 대형 SUHD TV였다. 삼성 TV 역사는 윤 전 위원장의 인생과 궤를 같이한다.

1966년 입사한 삼성은 그 무렵 전자를 성장동력으로 삼았고 그에게 맡겨진 게 TV설계였다. 그는 전자의 생명은 기술이라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삼성 TV는 그의 손을 거쳐 굴지의 기업들을 물리치고 결국 세계 1등에 올랐다.

삼성 TV부문 사장으로 지내던 1990년대 초반 윤 전 위원장 아래서 함께 했던 이가 현재 삼성 가전부문 대표 윤부근 사장이다. 윤 사장은 지금도 TV 신제품이 나오면 윤 전 위원장에게 직접 TV를 보내 자문을 구한다. 첨단 대형 디지털 TV와 오래된 고전이 공존하는 윤 전 위원장의 집무실은 그의 저서('초일류로 가는 생각') 부제, '역사와 미래'의 현장 같다.

지난 8일 여기서 윤 전 위원장을 만났다. 대통령직속 초대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장직을 연임 끝에 4년을 채우고 퇴임한 직후였다.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소감으로 말문을 연 윤 전 위원장은 1기(2011∼2013년)·2기(2013∼2015년) 위원회의 성과와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들을 조목조목 짚었다. 퇴임 직전 국회서 전격 통과된 '특허소송 집중 관할제'를 그는 무엇보다 뿌듯해했다. 하지만 한국 위기의 근원지는 입법부, 정치권이라는 뼈아픈 충고도 서슴지 않았다.

―초대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4년간 이끄셨는데, 일을 끝낸 소감은.

▲ 지식재산기본법을 수립하고 지식재산 강국을 선포한 게 엊그제 같다. 말그대로 시원섭섭하달까? 초대 위원장으로 지식재산 전략을 제시하고 정책 조율을 위해 노력했다. 지재권 분쟁 해결제도를 선진화하기 위해 추진한 '특허소송 관할집중제도'는 지난달 결실을 맺었다. 우수한 지식재산이 활발히 거래되는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해 관계 부처와 힘을 합쳐 만든 '지식재산 가치평가 신뢰도 제고방안', '거래 활성화 방안'도 보람으로 느낀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은 멀다. 이제 3기 위원회가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처음 위원장직을 맡으면서 구상했던 것은 대부분 이루셨는지.

▲우리나라 지식재산권 질을 높이고 이를 제대로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특허 출원은 세계 4위이고 국민 총생산 대비 연구개발 투자는 세계 2위다. 하지만 창출된 특허, 콘텐츠 등의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수준은 미미하다. 특허소송 등 분쟁해결제도의 전문성과 효율성이 떨어져 질높은 특허를 보호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특허소송 관할집중 제도 도입에 주력했다. 이 제도는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특허침해 손해배상 제도도입을 위한 특허법 개정은 아직 국회 계류중이다. 이건 아쉬운 대목이다. 지난해 4월 시장주도 개방형 IP·기술가치 평가체계 구축방안을 대통령께 보고해 지금까지 가치있는 특허를 가지고 있거나 기술력있는 기업에 51조5200억원 금융 지원도 했다.

―지금 우리나라 지식재산 수준과 위치는 어디쯤 와있다고 봐야할까.

▲특허 출원 건수 등 양적기준으로 보면 미국, 중국, 일본 등과 함께 지식재산강국 'IP 5'로 올라있다. 하지만 양적 성장과는 달리 질적으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최근 공들인 각종 지식재산권 정책 덕분에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지재권 국제 보호순위는 급상승했다. 지난해 41위였던 우리나라는 올해 27위로 14단계 올랐다. 아시아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율이 62%인데 반해 우리는 38%다. 지식재산 보호환경도 구축해가는 중이다.

―글로벌 지식재산 경쟁, 특허 분쟁에서 국내 기업의 대응능력은 어떻게 보시는지.

▲2012년 삼성-애플간 소송은 특허분쟁이 기업경영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이 소송으로 삼성은 10억5000만달러의 손해배상과 카피캣(Copy cat) 오명을 얻었다. 지식재산의 경제적 가치가 부각되면서 국제 지재권 분쟁이 함께 증가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기술력 향상과 위상 강화에 따라 특허 분쟁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기업간 특허분쟁은 원칙적으로 자체 대응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대기업의 경우에는 전담인력, 노하우가 충분하지만 정책이나 제도적 차원에서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 중소·중견기업은 자체 역량이 부족해 통상 분쟁 우려가 있는 직접적 소송지원보다는 특허소송보험·컨설팅 확대 등 간접적 정부지원에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질적으로 인정받을만한 지식재산 강국으로 자리잡기 위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까.

▲지난해 4월 마련된 '시장주도 개방형 IP기술 가치 평가체제 구축방안'이 제대로 시행돼 가치있는 기술이나 특허가 적시에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R&D단계에서부터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 지식재산권이 나올 수 있도록 특허컨설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부각되고 있는 국제표준특허 창출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 2기 위원회가 마무리짓지 못한 특허침해 손해배상 제도도입도 조속히 마무리돼야 한다.

―지식재산위원회는 우리나라 지식재산 국가전략 컨트롤타워다. 권한과 역할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4년간 부처 장관급 13명 정부위원과 20여명에 달하는 민간위원들이 주요 정책을 함께 잘 논의하고 조율했다고 본다. 지식재산전략기획단 직원들도 헌신적이었다. 하지만 사무처 직원중 대다수가 정부 부처로부터 1년 단기파견이어서 업무의 전문성, 연속성 차원에서 보자면 아쉬움이 컸다. 조직, 인력보강을 위한 관계부처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국가 지식재산 관리능력으로, 어느나라가 가장 모범적이라고 보나.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도 지식재산 전담기구를 설치, 운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창출·보호·활용·기반조성이라는 지식재산 전 분야를 포괄해 심의·조정하는 기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면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모범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지식재산집행조정관은 지재권 집행력 강화 등 보호에 치중하고, 일본의 지적재산전략본부는 거시적 정책방향의 제시 기능을 주로 수행한다. 우리나라는 2011년 국가 미래경쟁력의 핵심이 지식재산에 있다고 보고 전략적으로 이를 지원하기 위해 지식재산기본법을 제정했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출범도 이에 따른 것이다.

―전업 공직생활은 처음이었는데, 기업 CEO(최고경영자)를 할때와 어떻게 달랐던 것 같나.

▲기업이 많은 매출과 이익을 내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최적의 의사결정을 한다면, 정부는 국민의 풍요, 편안함, 그리고 안전을 위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의사결정을 한다. 국가차원에서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고 사회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하지만 기업 CEO나 위원장이나 모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가 발전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점은 같다고 본다.

―한국기업들은 요즘 굉장한 어려움에 처해있다. 한국 주력 업종들은 연일 구조조정이 이슈가 되고 있다. 지금같은 제조업, 기업 위기 해법을 어디서 찾아야할지 조언을 해주신다면.

▲위기 극복을 위해 국가를 개조한다는 생각으로 사회 전 분야를 개혁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선 세가지 측면의 노력이 절실하다. 우선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을 앙양시켜야 한다. 혁신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기업을 끊임없이 성장시키려는 도전정신이 기업가 정신이다. 그런데 이 정신이 실종됐다. 경제성장 주축인 기업들의 성장에 국민 대다수가 거부감을 갖고, 기업들의 노력을 업신여기는 사회분위기로는 경제활성화가 될수가 없다. 정부, 정치권, 사회 각분야가 이를 북돋아주어야 한다. 기업활동을 가로막는 다양한 규제도 과감히 바뀌어야 한다. 규제가 많으면 부정부패가 싹트게 마련이다. 지금 정부도 노력하고 있지만, 이것만이 살길이다 라는 생각으로 적극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위기 극복에 가장 문제는 입법부다. 정부와 기업의 노력에도 입법부는 여전히 뒷다리 잡는 격의 일을 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법안들이 매번 가로 막힌다. TV에 나오는 우리 정치인들 보면 마치 몇백년전 사람들로 보인다. 능력있고 참신한 사람들로 대폭 물갈이 돼야 한다. 정치권이 안바뀌면 미래가 없다.

―삼성 부회장 재임 시절 국보급 CEO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향후 어떤 행보를 이어갈까 다들 주목하고 있다.

▲이제 일흔을 훌쩍 넘었으니 사회활동은 자제할 생각이다.
지식재산위위원장은 국가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다. 후학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도울 생각이 있다.
학교 선생님들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윤종용 전 국가지식재산위원장 약력 △71세 △경북 영천 △서울대 전자공학과 △삼성전자 도쿄지점장 △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이사 △삼성전자 총괄 대표이사 사장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삼성전자 상임고문, 비상근고문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회장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한국전자공학회 회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이사장·대구경북과학기술원 이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