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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인디언을 찾아서] (7) 테쿰세 전쟁, 인디언연합군, 美에 대항 '독립전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17 17:54

수정 2015.12.17 17:54

"백인들은 이 땅을 뺏을 권리가 없다"
쇼니족 지도자 '테쿰세' 영토 양도조약 부당성 지적 1811년 테쿰세전쟁 발발
1812년 영국군과 동맹 맺어 영미전쟁으로 확대 2년여간 전쟁서 승부 못내
이후에도 저항 계속됐지만 '블랙호크 전쟁'서 패배 '인디언 격리' 빌미 제공
쇼니족 지도자 테쿰세
쇼니족 지도자 테쿰세


[아메리칸 인디언을 찾아서] (7) 테쿰세 전쟁, 인디언연합군, 美에 대항 '독립전쟁'

■인디언 연합군의 독립전쟁

쇼니족 지도자 테쿰세(1768~1813)는 1811년 시작된 테쿰세전쟁과 영미전쟁에서 인디언부족연합을 이끌고 1813년 10월 5일 온타리오 테임스 전투에서 45세로 전사할 때까지 인디언의 독립을 위해 미국에 대항해 싸웠다. 테쿰세의 동생 텐스콰타와는 인디언들에게 음주와 백인 생활방식을 배척하고 인디언 고유의 삶으로 회귀할 것을 주창했던 종교지도자였다. 텐스콰타와를 추종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테쿰세의 인디언부족연합은 큰 세력으로 성장했다. 테쿰세는 북아메리카 토착민 전체에게 속한 땅을 어떤 소수 부족이 처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미국과 각 부족 간에 맺어진 모든 조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또한 백인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모든 원주민 부족들이 한데 뭉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부족연합을 성사시키고 연맹의 지도자가 되었다.

테쿰세는 해리슨 주지사를 상대로 영토 양도조약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그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다. 두 사람은 '서북인디언전쟁'에서 청년 미국 장교와 젊은 인디언 전사로서 서로 만난 적이 있었다. 1810년 8월 12일 빈센느에서 테쿰세가 해리슨에게 한 연설은 세계적 명연설문으로 평가돼 후세 사람들에 의해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 연설의 요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쇼니족이다. 나의 선조들은 용맹스러운 전사들이었다. 그들의 자손들 역시 용감한 사람들이다. 나는 나 스스로 운명을 개척했다. 옛날에 그리고 최근까지도 이 대륙에 백인은 없었다. 이 땅은 인디언들에게 속한 땅이다. 우리는 행복한 종족이었다. 그러나 결코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 우리 땅을 잠식해오는 백인들에 의해 불행해지고 말았다. 이런 악한 일을 저지해 중단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인디언이 일치단결해 이 땅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 땅은 처음부터 각 부족이 사용하도록 모두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개인이나 부족이 땅을 팔 권리가 없다. 인디언끼리도 서로 매매할 권리가 없다. 이방인에게는 더더욱 팔 수 없다. 인디언들이 처음 이 땅을 소유했고 이 땅이 우리 것이기 때문에 백인들은 인디언에게서 이 땅을 뺏을 아무런 권리도 없다. 인디언들이 그 땅을 판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가 승인한 것이어야 한다. 근래의 거래는 옳지 않다. 그것은 백인에게 유리한 일방적인 거래이다. 인디언들은 땅을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 모든 사람을 위한 거래는 모든 사람이 관여해야 한다. 모든 인디언은 점유되지 않은 땅에 대해 동등한 권리가 있다."

테쿰세는 남부지역까지 연합의 확장을 시도했다. 비록 남부 인디언 모두를 동맹에 끌어들이지는 못했지만 크리크족 중 붉은막대 지파는 연합군으로 편입시켰다. 테쿰세는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1812년 캐나다에 있던 영국군과 동맹을 맺었다. 이로써 테쿰세전쟁으로 시작된 영토회복 전쟁은 영미전쟁으로 확대되고 남부지역에서는 뒤에 크리크전쟁으로 연장돼 나갔다. 영미전쟁에서 테쿰세가 이끄는 인디언연합군은 디트로이트 요새의 포위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큰 공을 세웠다. 1813년 미국인들은 해리슨 주지사의 지휘하에 캐나다 테임스를 침공했으며 이 전투에서 테쿰세는 전사했다.

해리슨도 테쿰세를 '흔히 볼 수 없는 천재들 중 하나'라고 높게 평가했다. 테쿰세야말로 인디언들의 생존을 위해 조직적인 저항운동을 혼신의 힘으로 지휘한 인디언의 큰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미군의 최고사령관에 올랐던 셔먼 대전사의 중간이름에 테쿰세가 포함돼 있는데, 셔먼의 아버지가 테쿰세를 흠모해 아들의 이름에 넣었다고 한다.

■테쿰세의 저주

원한에 죽어간 테쿰세는 '테쿰세의 저주'라는 유명한 전설을 남겼다. 이 저주는 테쿰세의 죽음 후 20의 배수 해에 당선되는 대통령은 암살되거나 병사한다는 내용인데, 과거를 돌아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840년 당선된 해리슨(테쿰세를 죽인 장본인)은 1841년 폐렴으로 죽었다. 1860년 당선된 링컨은 1865년에 암살당했다. 1880년에 당선된 가필드 역시 이듬해에 암살당했다. 또한 1900년 재선된 매킨리는 다음해 암살됐으며 1920년 당선된 하딩은 1923년 심장마비로 죽었다. 1940년 재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45년 뇌출혈로 죽었다. 1960년 당선된 존 F 케네디는 1963년 오즈월드에게 암살됐다. 1980년 당선된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 69일 만에 힝클리에게 저격당해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다.

■영미전쟁

테쿰세의 독립운동으로부터 촉발된 영미전쟁은 공식적으로는 1812년 6월 18일 미국이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됐다. 영국은 캐나다 식민지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오대호 주변지역을 인디언의 영토로 인정해 중립적 완충지역으로 삼고자 한 반면, 미국 측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영국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재확인하며 분쟁지역에서 인디언들이 유럽인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도록 쐐기를 박고, 내친김에 캐나다까지 미국 땅으로 편입시키려는 욕심도 가지고 있었다. 2년 넘게 지속된 이 전쟁은 무승부로 끝나고 모든 조건은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

■블랙호크 전쟁

영미전쟁 후에 이 지역에서 인디언의 저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827년에는 미시시피강 상류 오늘날 위스콘신주에서 '위네바고 전쟁'이라고 불리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충돌이 있었고 다시 5년 뒤인 1832년에는 '블랙호크 전쟁(Black Hawk War)'이라 불리는 전쟁이 발발했다. 블랙호크가 이끄는 소크 부족이 아이오와로부터 미시시피강 건너 옛 고향인 일리노이로 들어와 재정착을 시도하면서 미국인들과 충돌이 발생했다.
당연한 결과로 미국은 비교적 쉽게 소크족을 제압했다. 이 전쟁으로 미국 측의 피해는 미미했지만 소크족은 수백명이 사망했다.
블랙호크 전쟁은 곧이어 인디언 격리를 실행에 옮기게 되는 하나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철 전 한양대 겸임교수